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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Aug 30. 2020

다 안다고 자만하는 순간

 무지도 자만도 우리를 재앙으로 몰고 갈 것임에는 확실하다

나는 불안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니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최신 정보들을 최대한 접하지 않으려 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미세먼지에 대한 걱정이 극에 달했을 때 나는 스트레스받기보다 정보에서 멀어지는 걸 선택했다. 미세먼지에 대한 정보를 알면 알 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더 많은 불안과 더 많은 소비를 조장하는 정보에 휘둘릴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자 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아이와 함께 힘껏 놀아주고 지금 이 순간을 중시하자고 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지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남들에게 피해를 안 주고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지켜야 할 것들은 최선을 다해 지켰다. 나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괜히 불안해하기보다 이 상황이 앞으로 1~2년 아니 그보다도 더 지속될 수 있음을 기본 전제로 깔고 모든 계획을 세우자고 말이다.


죠스가 온다! 하지만 우린 바다에 안 가니까 괜찮겠지?

이런 마인드가 맞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대유행병의 시대>의 저자 마크 호닉스바움은 초반부터 확 집중시키는 예시들로 우리의 무지함과 자만심에 일침을 날린다.

뉴저지에서 상어가 사람을 공격한 사건은 언뜻 보면 2014년 서아프리카를 집어삼킨 에볼라 바이러스의 유행이나 이듬해 브라질에서 터져 나온 지카 바이러스의 유행과 관련성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이 세 가지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 (...) 병원 원인을 찾을 때 폭넓은 생태학적 통찰 대신 특정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어떤 위험한 결과가 초래되는지 볼 수 있다. (...) 이 책에서 소개할 유행병은 첫 발생에 환경, 사회, 문화적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주는지도 명확히 보여준다.(...) 나는 병이 생기는 경우 대부분은 생태계의 평형 상태가 깨지거나 환경이 병원균의 지속적 생존이 가능한 곳으로 변형된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 <대유행병의 시대> 서문. 상어와 포식자들 중에서

처음 시작을 죠스를 통해, 그리고 더 큰 맥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덕분에 어려운 책이라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엄청나게 몰입이 되었다.


진한 보라색 꽃인  헬리오트로프 heliotrope


푸른색 장미는 비극을 나타낸다? The Blue Death

1918년에 독감 환자들에게서 나타난 청색증이 유독 심각해 보라색을 띨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에 영국 왕립 미술원 소속 화가 한 사람이 의뢰를 받고 말기 환자를 그렸다. 화가는 최고조에 이른 청색증을 보고 영국의 정원사들이 좋아하는 진한 보라색 꽃의 이름을 따 "헬리오트로프 청색증"이라고 칭했다. 문학적이면서도 로맨틱하게 칭했지만 사실은 엄청난 공포로 다가오는 내용이다. 우리 혈관에 흐르는 혈액은 산소가 있어야 붉은색을 띤다. 그리고 폐가 더 이상 산소를 혈액에 효율적으로 공급하지 못해 환자가 호흡곤란을 겪을 때 얼굴과 입술, 귀 부위가 청색과 자주색이 섞인 탁한 빛으로 변한다. 적어도 나에게 독감은 암이나 백혈병에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시시한 걸로 각인되고 있었다. 좀만 쉬거나 약을 먹거나 백신을 맞으면 낫는 질환으로 말이다. 하지만 호흡기를 통해 전염되는 바이러스가 얼마나 강력하고 무서운건지 <대유행병의 시대>를 읽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크게 반성하게 되었다. 이미 알고 있다고 확신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실들을 간과하고 있는 걸까.


면역력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극히 일부가 아닌가. 그리고 전문가가 말해주는 일부 시각만 우리는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서문에서도 밝힌 것처럼 폭넓은 시야로 이 문제를 바라보지 못하면 우리는 더 큰 실수를 범하게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백신이 개발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마스크만 쓰고 다니면 되는 게 아니란 얘기다.


프로젝트 X도 아니고 질병 X라니

지금 우리에게 다가온 공포가 가끔 믿기지가 않는다. 사실 영화 같고 현실이 아닌 거 같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현실 속 이야기다. 나는 재난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괜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게 싫기도 하고 결국 문제는 해결되고 주인공만 살아남는다는 결말이 솔직히 뭐가 재미있는지 모르겠다는 주의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은 결말이 배드 엔딩이 될 수 있는 블록버스터다.

이로 인해 코로나 바이러스는 "신데렐라"나 다름없는, 크게 관심을 둘 필요가 없는 바이러스로 여겨졌고 커리어를 확실히 쌓고자 하는 야망 넘치는 젊은 미생물학자라면 연구 주제로 그쪽은 피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 <대유행병의 시대> p.526

그래도 이 대유행병의 심각성에 대해 경각심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는 데에 너무나도 감사했다. 그리고 각 분야에서 어떻게 이 문제를 접근하고 있고 어떻게 실패했는지도(그리고 지금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어떻게 실패하게 될지까지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큰 그림을 우리는 항상 가지고 가야 한다. 단순히 미디어가 주는 공포에 휘둘리기보다 제대로 된 정보를 알고 찾을 의무가 있다.


대유행병이라니 난 그저 언젠가는 끝나겠지 싶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가 다 안다고 이미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 그 마음이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비즈니스에서 CEO가 내가 다 안다고 과신하면 그 기업은 망한다. 계속 새로운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그러니 이번 코로나 사태도 비즈니스 마인드로 접근해야 한다.


투명한 공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디가 발생지니 그곳 사람들을 혐오하거나 어떤 집단을 마녀 사냥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건 전 세계적인 협력이 필요한 일이다.


일반의사들도 독감을 업신여겼었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 지원금들이 지속적이지 않고 유행이 끝나면 바로 줄어드는 것만 봐도  문제임을   있다.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일시적인 과도한 지원  지원이  끊기는 악순환만은 없애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국민 교양서다. 아무리 바빠도 적어도 서문과 챕터 1 푸른 죽음, 챕터 10 질병 X, 에필로그는   세계 사람들 모두가 읽었으면 좋겠다. 의료진들의 노고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무모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마녀 사냥하는 데에 시간을 소비할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들을 설득시키고 위험한 일을 하지 않도록 넛지를 넣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불안은  커져만 가고 외로움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들만이 위험한 행동을 피할  있다.  책을 읽고 처음으로 학교  배웠던 생물이 다시 궁금해졌다. 교양 과목이었지만 원서였고 어렵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바이러스와 세균의 차이, DNA, RNA, 단백질, 항체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훌륭한 과학자들은 변칙과 불확실성을 반긴다. 과학적 지식은 그렇게 발전한다. - <대유행병의 시대> p. 57


이 책을 나 나름대로 잘 소화해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걸 전달할지가 나의 새로운 도전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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