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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Sep 12. 2020

MBTI고 나발이고

나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내가 요새 들어 소설을 잘 읽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감정 이입이 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보통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역경을 헤쳐나갈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이 너무 험난하기 때문에(험난할수록 몰입도와 재미는 배가 되지만) 읽으면서 괴로워진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님에도 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어 읽는 내내 힘들었다. 재미있는데 넘기기 너무 힘들다고나 할까. 뒤는 궁금한데 읽기가 너무 힘든 양가감정이 나를 덮쳤다. 지금도 이 책에 대해 글을 쓰려니 다시 감정이 올라온다.


<성격을 팝니다>의 저자 메르베 엠레는 영문학 박사답게 매우 흡입력 있는 글을 쏟아낸다. 사실 소설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재미있고 몰입도가 높다. 이게 실화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그 많은 이야기들이 얽히고 우연들이 마치 소설가가 배치해놓은 복선들 마냥 곳곳에서 터진다. 그중 한 가지의 우연도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 책 역시 탄생하지 않았을 테고 우리 삶 속에 MBTI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 확신이 설만큼 말이다.



소속감, 상대를 알고 있다는 안도감

사실 나는 MBTI 무용론자 중 한 명이었다.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걸 좋아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검사유형들이 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혈액형이나 별자리, 심지어 타로 같은 느낌으로 생각했었다. 물론 나도 검사들을 받아본 적은 있다. 재미로 본 적도 있고 상담 전에 반드시 봐야 한다고 해서 귀찮아하면서 꾸역꾸역 체크했었다. 그렇기에 예전 나의 유형이 뭐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런 류보다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의 스트렝스 파인더에 대해서는 맹신까지는 아니더라도 효용성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MBTI보다는 강점 혁명이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어떤 유형으로 분류해서 안심하고 싶은 거였다. 상대를 어떤 유형 안에 넣고 이해했다 안심하고, 또 비슷한 유형의 사람을 보고 소속감과 안도감을 느끼고 싶은 거였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테크 심리학>​을 읽게 된 게 어쩌면 더 깊은 이해를 준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예전에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과 <다크호스>​를 읽으며 느꼈던 감동들이 더욱 배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개개인은 성격유형과 같은 것들로 우리를 제대로 나눌 수 없고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다. 자신에 대한 메타인지를 올리는 방법은 자신만이 알 수 있다. 유형분석으로 나누려는 접근은 자신의 성장 가능성에 한계를 주는 것과도 같다. 그리고 강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알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할 수도 있다.


내가 누군지 나조차도 알지 못한다는 것은 불안함을 야기한다. 그걸 아주 쉽고 매력적으로 만들어낸 게 MBTI다. 우리는 뭐든 쉽게 판단 내리고 쉽게 결론짓기를 원한다. 그런 재미를 느끼기에 MBTI는 아주 적합한 도구였다. 하지만 이사벨과 캐서린이 이걸 만들려고 했던 근본적인 뿌리에 대해 다시 떠올려 보면 지금 현상에 대해 씁쓸함만이 남는다.


커리어에 대한 목마름

이 책은 MBTI가 어떻게 탄생했고 현재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소설 같은 역사에 대해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런 류의 성격유형분석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독자에게 줄 수 있다는 점은 대단히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부분’에 꽂혀서 MBTI에 대해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깊은 사유 속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아이를 여러 번 유산한 끝에 나를 가진 엄마, 그리고 현재 어린 두 딸아이를 키우는 나, 그리고 아이를 가졌거나 아이 갖기를 고민하는 주변에 수많은 여성들이 오버랩되었다. 나는 결혼하기 전부터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그와 동시에 아이 셋의 엄마가 되고 싶었던 모순적인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걸로 인해 처음으로 커리어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는 더 지속 가능한 꿈을 꾸게 되어 좋은 영향을 끼쳤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감정은 모든 혼돈을 한 군데로 모아놓은 듯했다. 아이를 일단 건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마음과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사랑받는 아내로 집안을 화목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복합적인 과제들로 매일매일이 전투 같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은 나의 자아가 괴로움에 소리쳤지만 그 영향이 아이나 남편에게 갈 것을 염려해 나 자신을 꾹꾹 눌렀다. 그렇게 나는 글쓰기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의 고통이 결과적으로는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지만 지금도 나에게 글쓰기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하면 사실 조금 무섭다. 그 시기를 나는 견딜 수 없었거나 나는 무너져 내렸을 게 분명했으니까.


초반에는 이런 고통이 분노로 표출이 되었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이 당연하다는 듯 반응하는 모든 대상에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글로 혼자서 삭힐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글쓰기와 독서에서 나를 찾아가던 중, 자기 계발이라는 영역에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분노를 글로 단순히 세상에 던진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회 탓을 하던 내가 나의 문제로 시선을 돌린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하나둘씩 변하게 되었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걸음들을 하나둘씩 실행해나갔다. <언어 씹어먹기>​라는 온라인 모임을 만들어 ‘습관’의 강력함을 함께 느꼈다. 리더십이라는 것에 관심도 없던 내가, 단순히 독서만 하던 내가 책에서 읽은 것들을 실제로 적용하면서 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운동과 언어의 상관관계

매일 언어 공부를 조금씩이라도 하는 걸 어려워하는 팀원들을 위해 시작한 ‘습관’에 대한 공부는 ‘운동’에 대한 이해로 이어졌다. 운동과 언어 공부는 같은 맥락이었다. 주 3일보다 주 7일이 더 쉬운 선택이었다. 습관이라는 것은 ‘자동 시스템’이다. 습관 만들기가 어렵다고 지레 포기할 게 아니라, 일단 습관을 만들어 놓으면 오히려 에너지는 0에 가까운 상태로 지속하면서 다른 중요한 일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에게 ‘자동 시스템’에 대한 이해는 유레카를 외치는 것만큼 놀라운 발견이었다.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을 읽은 사람이 그렇게 많은 데도 습관 형성하기가 어렵다는 이들이 많은 게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웬디 우드의 <해빗>을 읽지 않았다면 습관이 얼마나 만들기 어려운지 그리고 일단 만들면 얼마나 강력한지를 이해할 수 없겠구나를 알게 된 날 전율이 일었다. 이걸 어서 <언씹> 멤버 분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설득과 리더십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이해시킨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조직, 팀빌딩, 리더십, 설득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그저 ‘아... 그렇구나. 대단하다’라고 넘어갔을 책 속 내용들도 나의 실제 상황에 적용하려니까 너무나도 생생하게 와 닿았다. 배운 걸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는 건 독서와 글쓰기를 더 깊이 있게 만든다. 나는 그렇게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 <최고의 설득> 같은 양서들을 씹어먹으며 내가 믿는 것들에 근거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서와 글쓰기를 하면서도 삶이 변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을 했다. 배운 것들을 삶에 적용하고 실행을 하지 않아서였다. 그렇다면 실행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1~2시간 토론이 아니라 배운 것을 5~10분간 짧게 스피치 하는 형태로 사람들과 나누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처음 라이브톡을 시작한 건 함께 습관을 씹어먹고 있는 분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서였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오픈 채팅방에서 다수의 모임을 경험해본 결과 얼굴도 모르고 익명이면 그저 인공지능과 대화 나누는 것 같은 공허함이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가벼운 자기소개와 최근 관심사를 10분간만 말하는 걸로 시작했던 모닝 라이브톡이 차차 모닝 10분 스피치의 장으로 변해갔다. 매주 같은 요일에 스피치를 하는 사람이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쌓아갔다. 타인의 시간을 10분이라도 그 순간만큼은 사는 게 된다. 그러니 주절주절 준비가 안된 채로 말하면 모두에게 손해였다. 그렇게 주 7일 주말 오전까지도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며 라이브톡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렇게 <언어 씹어먹기> 모닝 라이브톡 스피치는 70회​가 넘게 진행되었다. 2달 넘게 이걸 지속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글쓰기를 넘어 설득력 있는 스피치의 중요성을 말이다.


스피치, 그리고 스토리텔링

며칠 전 체인지 그라운드에 올라간 나의 스피치 영상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스쳤다. 누군가는 내가 유튜브에서 스피치 하는 것을 처음 봤을 테고 그저 수많은 일반인 스피치 중 하나로 잊힐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지금까지의 모든 시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하나의 사건이었고 또 어떻게 보면 특별했지만 또 어떻게 보면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았다. 나에게는 그게 시작에 불과했고 더 큰 가능성의 작은 시발탄이었다.


<성격을 팝니다>에서 이사벨이 묵묵히 자신의 커리어를 지켜갈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살아오면서 느꼈던 서러움과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그 통한을 더 큰 꿈 실현을 위해 쏟아낸 모습에 슬프고도 괴로웠다. 좀 더 수월하게 그녀가 행복에 다다를 수는 없었을까. 하지만 이런 생각들도 다 의미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묵묵히 자신이 믿는 일에 몰입을 하는 초집중자​의 모습을 이사벨을 통해 보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어려운 분야의 책도 아닌 이 소설 같은 실화를 엮어낸 이 이야기를 읽어나가기가 너무나도 괴로웠다. 그런 고통을 느끼고 있을 수많은 육아를 하는 여성들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나를 스쳤다. 어떤 이는 그걸 극복하고 어떤 이는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했을 것이다. 극복하고 성공을 거머쥔 여성이라고 해서 완전히 모든 걸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길을 개척하기 위해 trade-off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속으로 삭혔을 게 눈에 선했다.


그렇기에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선택을 하는 분들도 너무나도 이해가 가고, 그럼에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 어떤 선택을 하는 모든 여성들의 괴로움이 나는 아우성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덮고 나서도 이렇게 나의 마음을 괴롭히는 무언가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일 테다.


나는 그 어떤 대상을 비방하려거나 위로를 받으려고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분노는 나를 이미 스쳐 지나갔고 나에게 남은 건 내가 해나가야 하는 일들이다. 내가 하려는 일, 해야 하는 일에 대한 마음이 더 단단해짐을 느낀다. 내가 해내야 한다. 혼자 할 수 없는 건 자명한 일이니 내가 실력을 키워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금융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밀레니얼의 돈 공부>라는 이름으로 지현 님과 팟캐스트를 시작했고, 수많은 시간도둑들이 엄마들의 시간만은 빼앗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지영 님과 <시간을 버는 CEO>팟캐스트도 시작했다. 나에게는 수많은 시도들이 나의 확실한 투자다. 그저 남들이 만들어놓은 콘텐츠를 소비만 하던 시절은 지났다. 생산자가 되어야 함을 절실히 느꼈고 그래야 아웃풋이 나를 성장시킨다.


오픈 다이닝 공간을 열고, 자기 계발 모임을 유지하고, 팟캐스트를 시작하고,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나는 더 많은 일을 제로에 가까운 에너지로 해내기 위해 오늘도 습관화시킨다. 포뭅(Four hours movement)이라는 형태의 사이드 프로젝트가 준혁님과 어떤 형태로 완성되어갈지 너무나도 기대가 된다.


이사벨이 어머니와 함께 만든 그들의 발명품이 지금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책을 읽은 모든 사람들이 각자 다른 형태로 이 책을 기억하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나의 비전을 더욱 다지는 강력한 자극제가 된 것임에는 틀림없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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