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해결책이 보인다
나는 다 큰 어른들이 편을 갈라 싸우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가던 사람 중 하나였다. 늘 호기심이 많던 나는 다들 각자가 다른 걸 추구하면서도 좋은 방향으로 힘을 합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늘 가져왔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너무 순진무구한 생각이라고 비웃듯, 세계는 더욱더 작은 조각들로 분열되고 있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교육받기 시작하면서 귀가 따갑게 들은 말이다. 정치가 인간의 이런 속성을 악용해 사회를 둘로 갈라놓았다. 정치의 조작이 더욱 쉬워지고 정치와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된 것은 분명하다. 그 결과로 진영의 문턱이 더욱 높아진다. 소속감이 곧 정체성이란 신화가 우리를 기만하고, 그 결과로 진영 간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혼자있고 싶어 하는 속성도 있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독립적 개인이고 싶은 때도 있기 마련이다. -p. 9 <패거리 심리학> 중에서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개인의 속성도 알겠고 그럼에도 소속되어 안정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도 알겠다. 인간의 외로움때문에 이 모든 것들이 더 과열되기도 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나는 해결책을 찾고 싶었다. 과도하게 분열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우리는 공동의 목표를 이루어낼 수 있을까. 결국 모두 다 잘 살고 싶은 것뿐인데 말이다.
나는 기존에 구사 가능한 일어, 중국어 외에도 실력을 올리고 싶은 언어들이 많아서 언어 씹어먹기를 만들게 되었다. 인터뷰 가능할 정도의 유창한 영어, 스페인어, 그리고 독일어까지. 왜 이렇게 욕심이 많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언어 공부에서 공통된 줄기를 발견했다. 결국 언어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상대에게 전하기 위해, 즉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배운다. 그저 원어민이 되겠다, 여행 가서 불편 없이 의사소통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애매한 목표는 절대 언어 실력을 높이지 못한다. 언어 공부를 막연하게만 하고 있으면서 실력이 안느는 이들에게 이 질문들을 던지고 싶다.
"당신은 왜 그 언어를 배우시나요?"
무슨 ‘말’이 하고 싶어 그 언어를 배우나요?
라고 말이다.
언어로 표현된 지식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이해하며 자신을 미래에 투영하고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기 위해 존재한다. 결국 언어로 표현된 지식은 ‘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 <패거리 심리학> 중에서
우리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대한민국 내에서조차 여러 진영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다. 건강한 토론이 아닌 그저 상대방을 비방하기 위한 물어뜯기로 우리의 삶은 나아지고 있는 걸까?
고정관념이 너무나도 강하게 박히면 그게 고정관념인지조차 잊을 때가 있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보며 우리와는 멀리 떨어진 이야기라 생각할 수도 있다. 외국에서 살 때만 경험할 수 있는 인종차별에 대해 우리는 정말 관련이 없는 걸까?
우리가 사회적 타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이야기들은 고정관념이거나, 특정한 사회적 집단에 소속된 사람의 특징에 대한 추정이다. (...) 우리가 사회적 집단에 짝짓는 연상이 위의 예보다 훨씬 더 유해한 경우가 많다. 예컨대 어떤 인종을 폭력이나 게으름과 짝짓는다고 생각해보라.- p.82 <패거리 심리학> 중에서
우리나라는 정말 오랫동안 단일민족을 유지해온 나라라 다양한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아직 익숙지 않은듯하다. 하지만 인터넷 강국인 한국이 아직까지도 그런 편협한 사고에 묻혀있다면 그건 과연 누구 탓일까?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다. 조선족에게도, 흑인에게도, 백인에게도, 동남아 사람에게도, 일본인에게도, 중국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모델 한현민을 우리는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현민 외의 한국에서만 자란 다문화가정 아이에게 어떤 시선을 보내고 있나? 편견에 사고 잡혀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중국에는 56개의 민족이 있다. 그중 하나의 민족인 조선족에 대해 우리는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는 걸까. 코미디 방송에서 만들어낸 이미지들을 무의식 중에 웃으며 소비하고 있진 않은가? 샘 오취리가 블랙 페이스에 대해서 불쾌감을 드러낸 것 역시 표현 방식의 문제는 될 수 있지만 마녀사냥을 해도 될 만한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샘오취리는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다. 외국에서 누군가가 동양인을 비하하는 눈 찢는 손동작을 하면 우리가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르듯 말이다.
우리는 배타적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분노를 풀 대상을 찾아 헤맨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얻어걸리면 득달같이 달려든다. 그런 마녀사냥이 과연 우리의 시간을 쏟으면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일까?
잠시 이야기를 다른 쪽으로 옮겨오고자 한다. 삼천포로 빠지는 듯 하지만 조금만 참고 읽어주시기 바란다. 내가 남편과 만나게 된 계기를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나와 남편은 일본 개그(오와라이) 온라인 카페의 오프 정모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는 한 분야의 덕후였다. 결국 웃음이라는 코드에 이끌려 우리는 이어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결혼 이후에는 더 이상 일본 개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만날 때는 공동의 취미로 가까워졌지만 그 이후에는 서로에게 안심이 되었는지 더 이상 이 주제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공통분모이긴 하다.
내가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말은 우리에게 공통된 '스토리', '재미 요소'가 개입될 때 완전한 타인임에도 가까워진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픽션, 웃음, 스토리를 통해서 생각을 더 확장할 수 있다. 대화가 통하지 않았던 사람과도 이해를 할 수 있는 접점 역시 생긴다. 스토리를 통해 선악 구분이 아니라 더 큰 공동체를 꿈꿀 수 있다.
우리는 날 때부터 예술가이자 스토리텔러다. 우리가 그걸 하길 멈춘 거지, 여전히 우리에게는 스토리텔러로써의 피가 끓고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열광하고, 아무리 바빠도 마블 영화는 보며,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 수상에 온 국민이 열광했듯 말이다. 스토리텔링 능력은 지금부터라도 갈고닦을 수 있다. 뛰어난 이야기꾼이 사회적 동반자로 선호된 필리핀 아그타족의 예처럼 사실 뛰어난 이야기꾼이 우리의 현대사회에서도 돈을 잘 번다. 이야기는 곧 마케팅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닥불 주변에서 허구적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을 것이다. 지금은 웹에서 이야기를 꾸미고 있다. - p.88 <패거리 심리학> 중에서
추가로 책 속 멧돼지와 바다소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감동적이었다. 이 이야기에 대해 처음 들어보신 분은 꼭 <패거리 심리학> 책을 읽어보시고 직접 그
감동을 느끼시길 바란다.
우정에는 경험의 공유가 수반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같은 것에 웃고, 같은 것을 혐오하며, 같은 것에 집중하거나 지루해한다. - p.107 <패거리 심리학> 중에서
이게 내가 영화와 모든 미디어를 사랑하는 이유다. 모두를 이을 수 있는 강력한 매개체라는 걸 깨닫고 내가 하게 된 시도 역시 소설 쓰기였다. 올해 5월에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 소설을 냈다. A4 50페이지 분량의 픽션을 한 달 동안 쓴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실감했다. 서평이나 에세이와는 또 다른 경험이라 신선했다. 나는 매일 3~5페이지를 글을 쓰고 그러고 나서 완성된 초고를 다듬고 또 다듬었다. 헤밍웨이의 말처럼 모든 초고는 쓰레기니까 다듬을 수록 좋은 글이 나올 거라는 생각에 퇴고하고 또 퇴고했다. 나중에는 약간 토할 거 같은 기분도 느꼈다.
내가 소설 공모전에 응모한 이유는 나의 이야기를, 내가 심장 뛰며 열광하던 스토리들처럼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간접 경험일지라도 사람들과 나의 감정들을 공유하고 싶었다.
밤잠의 꿈처럼, 픽션을 읽는 것도 우리가 미래의 가능한 모습을 상상하고, 세상을 대리로 경험하는 한 방법일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픽션은 간접 경험에 불과하더라도 실질적인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p.92 <패거리 심리학> 중에서
나의 소설 쓰기는 이번 한 번으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쓸 것이고 도전할 것이다. 나의 이 도전이 10년 후, 30년 후에는 빛을 바랄지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나는 나의 충족감을 위해 다크호스가 되려는 것뿐이다.
평가는 어떤 사건이나 상황의 의미에 대해 당신이 자신에게 말하는 짤막한 이야기이다. 달리 말하면, 어떤 사건의 중대성이나 참신성에 대한 당신의 해석이고, 그 사건이 당신 목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당신의 해석을 뜻한다. (...) 육아가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은 확실하다. 교육도 영향을 미친다. 성격과 세계관의 많은 부분이 그렇듯이 평가도 상당히 사회적으로 결정된다. (...) 평가가 바뀌면, 그 결과로 감정에도 변화가 생긴다. 당신 자신의 내면을 유심히 관찰하면 그런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싸움은 두 다른 평가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충돌의 원인을 철저히 논의함으로써 사회적 타자의 평가를 이해하면 분노가 눈 녹듯 사라진다.- p. 93 <패거리 심리학> 중에서
상대의 평가를 이해하면 분노는 사라진다. 우리는 살면서 한 줌의 사람만을 지극히 사적인 나만의 영역에 초대한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더욱더 고립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가치관이 변하기도 하고, 경제적, 신체적 차이가 발생하기도 하고 점점 멀어진다. 하지만 고립된 영역을 더 넓힐 수도 있다. 우리가 타인의 평가를 이해한다면 말이다.
우리는 뭔가에 푹 빠지면 그것을 보지 못한다. (...) 태어나는 순간부터 물을 만나고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문화를 만난다고.(...) 시간을 긴 호흡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인간의 행동 방식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볼 수 있다.- p. 98 <패거리 심리학> 중에서
인생을 길게 보면 더 큰 가능성이 존재한다. 우린 모든 걸 너무 좁은 시야로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패거리 심리학>을 읽어면서 벅찬 감정을 느꼈다.긴 호흡으로 생각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구체적인 고민들을 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책 속 메시지 하나로 이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가장 건강한 벌통은 가장 다양한 벌들이 공존하는 벌통이다” 강점과 성향이 다양한 개체가 모일 때 적응력이 뛰어나고 제대로 기능하는 집단이 가능하다. - p.59 <패거리 심리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