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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Apr 04. 2016

흙이라는 안도감

게으르고 차가운 도시 여자의 흙흙흙

집에서 나는 식물을 일절 키우지 않는다. 

그 이유 중 가장 큰 하나는 벌레가 스멀스멀 나올 것 같다는 공포감 때문이다. 물론 나도 밝은 햇살을 받으며 룰루랄라 식물에 물을 주는 것으로 힐링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다. 하지만 벌레에 대한 공포로 음식물쓰레기마저 극단적으로 만들지 않으려 기를 쓰는 나에게 화분을 들여놓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심플한 삶을 살고 싶어 집 안도 되도록 물건을 적게 놓고 살고자 하는 나에게 과한 인테리어는 자극이 너무 강하다. 바깥의 화려한 간판들 때문에 피곤해진 내 눈을 쉬게 해주는 건 흰색 침구와 하얀 벽 그리고 흰 바닥. 그런 공간에 녹색 식물 한 두 개쯤 있으면 좋으련만 벌레라는 강적 때문에 여전히 쉽게 마음먹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내게 '집 밖'에서 직접 뭔가를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건 구청에서 관리하는 텃밭 참여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추첨제니까 올해에는 안되더라도 두세 번 떨어지다 보면 한 번은 당첨되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넣었는데 덜컥 당첨되어 버렸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미적대기보다는 예상대로 척척 진행되는 걸 좋아하는 내게는 꽤 마음에 드는 상황이었다. 


사실 꽃을 기르거나 식물을 기르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내가 왜 흙에 갑자기 관심을 가지게 되었냐 하면 '불안감'때문이었다. 


아직 회사를 다니던 작년 1월경 나는 불현듯 나무가 많은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딱히 식물을 좋아했던 것도 아닌데 회사에서 느끼던 답답함과 불안감들 때문에 항상 회사에서는 산소결핍과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숨이 막혔고 그 답답함을 주말에 산에 가는 것으로 풀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너무 상쾌했다. 산에 가면 시원한 공기가 나를 숨통 트이게 해줬고 이 날을 위해서 회사에서의 5일을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산 타는 것은 어르신들만의 취미라고 시시해했던 내가 산을 좋아하게 된 건 순전히 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두세 달을 산을 타고 조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하고 나서는 원래 게으르고 집순이인 나는 다시 산에 가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숲에서 텃밭, 흙으로 마음이 옮겨간 것은 내 최대의 관심사인 '먹거리'때문이었다. 나는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데 어느 날 내가 먹고 있는 식자재에 대한 의심이 생긴 것이다. 이게 과연 이 가격이 합당한가? 이 가격을 내고 먹으면서도 내 몸에 좋은 건지 누가 보장해주지? 장을 보고 나서 남은 채소들이 냉장고에서 썩어가고 그게 음식물쓰레기봉투에 들어가는 게 참을 수 없었다. 흙에 묻어버리면 그게 시간이 지나 비료가 되어서 또 다른 식물의 영양소가 되어 무럭무럭 자랄 텐데 그 순환을 나는 보지 못하고 있구나. 그냥 흙으로 돌려보내면 되는데 나는 이 음식물을 땅에 돌려줄 '땅 한 뼘'조차 없구나.... 이래서 요새 일본 젊은이들은 귀농을 하고 우리나라 청년들도 제주도로 이민 가고 싶어 하는 걸까. 나는 모든 걸 던지고 제주도까지 갈 용기는 없었지만 구청에 텃밭 신청서를 낼 용기까지는 있었다. 그리고 그 용기 덕에 8 개월간뿐인 무료 대여 토지지만 1.8평짜리 '내 땅'이 생겼다. 


개장하자마자 달려가니 어르신 두 분이서 땅을 파고 계시길래 얼굴에 철판 깔고 뭐하면 되는지 다짜고짜 물어보았다. 비료를 10kg 사서 뿌려주고 삽으로 깊숙이 흙을 뒤집어엎은 다음 물을 뿌려주면 된단다. 그리고 1~2주 땅을 쉬게 해 준 다음 모종을 심으면 된다고 하셨다. 1.8평이 작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삽질하다가 이 크기가 딱 적당하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농민분들에게 존경심이 샘솟았고 이번 텃밭을 계기로 귀농에 대한 환상이 뿌리 뽑힐 수도 있겠다는 겁도 살짝 났다.


내가 심고 싶은 것은 바질, 토마토, 가지, 대파, 샐러드 채소류, 감자, 땅콩, 풋콩(에다마메), 시금치, 부추 등등인데 과연 잘 자랄 수 있을까. 아직 모종을 언제 심어야 하는지, 키울 수는 있는 건지 기본 지식 제로 상태다. 사실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라 해도 무방하다. 이번 주 토요일에 텃밭에서 파는 모종들을 사서 심으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의욕만 앞서다가 지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내가 최근에 깨달은 방법이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약간은 대충대충하기. 


겁도 없이 시작하다가 후회하고 귀찮아하고, 하지만 때려치울 수도 없는 상황에 눈물을 머금고 사서 고생하는 이야기. 이게 바로 게으르고 차가운 도시 여자의 흙흙흙의 시작이다. 


이래서 흙흙흙...








- '게으르고 차가운 도시 여자의 흙흙흙'은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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