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이렇게 리얼하게 느껴질 줄은...
미국 대선에 대해 관심도 없던 나조차도 이제는 모르고 있으면 큰일 나겠다 싶었다. 알면 알수록 무지함을 깨닫는다고 했던가. 미국 경제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소시민인 나에게는 별로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에게 니킥을 날리고 싶어 졌다. 우리는 모두 이어져 있다. 그러니 모르고 있다간 거대한 폭풍에 휩쓸릴 수도 있다.
국민들의 촛불시위로 대통령이 바뀌고, 이번에는 팬데믹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시야가 크게 바뀌게 되었다. 서구 강국들은 항상 이성적인 판단만을 할 거라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들도 똑같은 인간이었다. 시스템 1(자동 시스템)과 시스템 2(숙고 시스템)를 가진 인간 말이다. 어디에나 비이성적인 사람들은 존재했고 문화적, 환경적 차이로 인해 그들의 서사는 더더욱 세분화되고 있었다.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를 읽으면서 우리 모두를 이어 줄 수 있는 서사를 가진다면 그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느꼈는데 <테크 심리학> 분노 편을 읽으면서 우리가 직면한 분노의 방향에 대해 고심하게 되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희망도 생겼지만 분노와 불안을 느끼는 이도 많아졌다. 2013년에 시위대가 구글 직원 전용 버스를 공격한 사건 역시 그 분노 표출의 일부로 볼 수 있다. 트럼프가 당선될 리 없다고 비웃던 사람들은 샤이 트럼프들의 존재에 경악을 금치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드러나지 않았던 분노가 수면 위로 떠오른 극히 일부를 보여준 사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셜 미디어의 시대인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신의 격분과 증오, 분노, 분개를 표현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데에 별로 제한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감정이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거쳐 표현되다 보니 즉각적으로 눈에 띄기는 하지만, 변화를 촉발하는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 - 테크 심리학 p. 436
심지어 ‘Black Lives Matter’에서도 본질적인 흑인 생명 존중과는 벗어난 방화, 약탈 등의 문제들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갈 곳을 잃은 듯한 분노를 건강하게 극복해내는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
그런 의미에서 요새 좀처럼 읽지 않았던 소설을 펼치게 된 건 우연이 아닌 것만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대통령이 사라졌다>를 원서로 읽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 생생한 이야기를 원서 느낌 그대로 접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읽는 것도 느려서 진도가 잘 안 나가고 있지만 영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 직관적인 대화 투가 더욱 현장감을 높여주다 보니 읽으면서 심장이 쫄깃쫄깃하다.
<The President is Missing>을 읽으면서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압박감이 얼마나 클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모든 정보를 국가보안상 밝힐 수 없는 상황임에도 상대를 설득해야 하고, 반대 세력의 맹비난을 막아내야 한다. 단순히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잘못하면 욕하기 바빴지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어떤 중압감 속에 매 순간 선택을 내리고 있는지 생각한 적이 없다는 걸 이 소설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저 단순 픽션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없는 이유는 이 책의 공동저자가 빌 클링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든 경험, 그리고 감정들을 녹여냈을 거라 생각하니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나 리얼해서 소설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나는 미국과는 동떨어진 나라의 한 국민으로 9.11 테러나 요새 문제들을 바라봤었지만 이제는 남일이 아니게 느껴졌다. 그리고 VR기기가 필요 없을 정도로 리얼하게 대통령 체험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건 나뿐만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협상 능력이라는 게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구나를 느끼면서 이렇게 몰입하면서 읽은 소설이 있었나 싶었다.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이 나는 책들이 여러 권 있었다.
<바른 마음>,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테크 심리학>, <최고의 설득>,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중독의 시대>, <더히스토리 오브 퓨쳐>였다.
이 소설이 단순히 오락거리의 이상의 서사를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만은 분명했다. 스토리에 눈이 멀어 놓칠 수도 있을 큼직큼직한 질문들이 나의 마음에 꽂힌다.
우리는 어떤 리더를 뽑았나
그들은 어떤 리더가 되어야만 하는가
우리는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내가 할 수 있는 행동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건강하게 해소할 방법을 우리는 고민하고 있는 걸까
테러가 그들만의 문제일까
내가 마주 보지 않으려 했던 진실은 무엇일까
하나하나 곱씹어보며 이 소설을 즐겨보려고 한다. 이런 게 독서의 참 재미가 아닌가 싶다.
P.S.
<대통령이 사라졌다>가 TV 드라마로도 나온다니 더더욱 기대된다. 그런데 자료를 찾다가 보니... 아니 여성 대통령이 캐스팅된 건가? 어라?? 그리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욘두도 나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