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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Dec 09. 2020

상대적인 통찰

상대성 이론으로 깨닫는 나의 상황 그리고 타인의 상황

상대성 이론이 내 삶과는 거리가 먼 줄 알았다

나에게 아인슈타인은 익살스럽게 혀를 내민 사진과 '어린아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지 못하면 아는 것이 아니다.'라는 명언으로 나의 뇌리에 박혀있다. 사실 상대성 이론이 뭔지도 제대로 몰랐다. 알아야겠다는 마음도 없었다. 고3 때 물리 2를 선택한 한 해 동안을 제외하면 내 삶이 물리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면 알 수록 나의 삶은 과학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아니 우리의 삶은 과학과 함께 존재했다.


과학을 통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심지어 지적 쾌락까지 누릴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알지 못하면 우린 그 즐거움마저 놓치고 만다.


최근에 보게 된 영화 중에 <사랑의 모든 것 (원제: The Theory of Everything)>이라는 영화가 있다. 스티븐 호킹 박사의 생애를 다룬 영화였고 스티븐 호킹 박사는 개인적으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영화 '레 미제라블'과 '어바웃 타임'의 워킹 타이틀 필름스가 제작을 맡았다고 해서 관심이 갔었던 차였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아인슈타인의 전쟁>을 읽으니 더 흥미로웠다.


상대성 이론에 대해 이것저것 영상들을 찾아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삶에서 상대성 이론을 은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지도 않을까. 남들이 보기에는 느려 보여도 엄청난 성장 기울기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남들이 보기에는 대단해 보여도 본인이 지루해하고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을 수 있다.


시간이 상대적이라면 우리가 조급해하는 것도 상대적인 것이다. 상대적인 거라는 건 내가 그 상황을 통제 가능한 다른 상황(태도나 시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된다.


운 앞에서 겸손해지는 마음

개기일식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던 걸 반성하게 된다. 그저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볼 수 있기도 하고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이야 신기할 수밖에 없으니 오히려 호기심이 일지가 않았다. 하지만 에딩턴의 여정을 보면서 그 생각이 뒤집히는 걸 느꼈다. 우리가 살면서 개기일식을 직접 볼 수 있는 횟수는 몇 번일까? 세계 각국으로 날아다니며 이를 관측하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하다. 관측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날이 흐려 관찰을 못하면 생돈을 날린 게 된다. 그럼에도 뛰어드는 이들은 그 모든 걸 감수하겠다는 것이리라. 천문학자 에딩턴과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만남이 드라마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그리고 아인슈타인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과연 상대성 이론이 이렇게까지 알려질 수 있었을까?



아인슈타인의 포기할 수 있는 것과 포기 못하는 것

종교가 없다고 말하던 아인슈타인은 커리어를 위해 어쩔수 없이 정식적으로 유대인임을 밝혀야 했지만, 과학이 인류를 망치는 건 용납이 안되었다. 사람마다 포기할 수 있는 게 있고 그렇지 않은 중요한 가치관이 있다. 이걸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까 생각해본다. 어찌 보면 자신만의 강하고 단단한 가치관이 없기 때문에 이런저런 상황에 그저 수긍하고 받아들이고 기회에 따라 움직이는 건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사건에 대해서도 단정적으로 판단하는 건 어리석다는 생각도 이번 책을 읽으며 들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열정적으로 빠져든 것(과학, 멘토나 동료, 심지어 사랑)에는 앞뒤를 재지 않았다. 과연 우리는 누군가를 한 가지 일만으로 심판할 수 있는 걸까?


우리는 각자의 가치관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미디어나 특정 관점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시각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초집중자가 되려면 자신의 본 짓을 알아야 하는데 뭐가 본짓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나는 뭘 포기할 수 있고 무엇을 포기할 수 없는가. 그 질문에 각자가 자신에게 거짓 없는 답을 찾았으면 좋겠다. 토드 로즈의 <다크호스>에서도 남들이 이해 못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성공을 거머쥔 이들은 충족감을 따랐다. 자신만의 충족감 말이다. 초집중자가 되기 위해서는 딴짓과 본짓을 구분 해야 하듯이, 몰입이 가능하려면 자신이 무엇에 중독이 되었는지도 이해해야 한다. 뭐에 몰입할지 모르니 우리를 유혹하는 중독에게 시간을 도둑맞는다.


스트레스, 역경이라는 축복

전쟁이라는 스트레스, 경쟁상황이 없었다면 상대성이론은 나왔을까? 스티븐 호킹 박사도 루게릭병이 없었다면 그만큼 연구에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루게릭병이 자신이 이 많은 업적을 이룰 수 있게 만들었다고 말이다. 과연 우리는 나에게 다가온 역경이 나의 성장을 만들어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걸까? 현 상황에 불만을 품고 핑계대기 바쁜 건 아닐까? 요새 들어 진심으로 스트레스와 고난이 오면 감사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삶에서 고통은 디폴트라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안티프레질한 사고방식이란 생각이 든다. 고난이 나에게 찾아오지 않으면 내 발로 찾으면 된다. ‘도전’이라는 고난 말이다!


아인슈타인 같은 업적을 모든 사람이 이룰 수는 없겠지만 누구나가 자신의 히든 에셋에 대한 메타인지가 높으면 자기만의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우리 시간을 할애해야 우리는 자신만의 성공에 다다를 수 있을까. 당신은 어떤 것에 시간을 할애하고 싶은가. 시간이 상대적이라면 우리는 자신만의 필드를 개척해서 그 시간을 남들의 몇 배로 살 수 있다. 상대성 이론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게 엄청난 깨달음을 주고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모든 이들이 자기 삶의 상대성 이론을 추구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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