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젊음이 영원할거라 착각하며 시간을 길에 버린다
나의 여러 가지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이른 나이부터 불안이 많았던 성격도 한몫했겠지만 지금은 이런 점이 나를 성장시켰다고 확신한다. 나는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나도 ‘애틋’하다. 그저 그런 일들에 허비하며 지내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허비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도 지나고 보니 다른 걸 했어야 했다며 후회하는 삶이야 말로 비참하다.
그래서인지 모른다. 내가 후회하지 않을 일들만으로 나의 하루를 가득 채워야지 마음 먹게 된건.
궁금한 것도 많아서 나의 하루는 언제나 시간 부족에 쫓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급함 대신 즐거운 짜릿함으로 그 시간을 알차게 쓰고 있다.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나의 사고를 확장하고 있고 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 오늘도 후회없는 ‘실행’을 한다.
그런 나에게 <나이듦에 관하여(원제: Elderhood)>는 온전히 내 선택이었다면 펼치지 않았을 책이었다. 나의 젊음은 아직 창창하다 생각했고 지금부터 노년을 걱정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인생 곳곳에는 ‘나이듦’에 대해 다분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내가 존재했다.
내 기억 속에서 할머니는 누구 편을 드는 법이 없으셨다. 황희 정승 같은 분이 우리 할머니셨다. 나는 우리 할머니를 ‘귀엽다’고 표현했었다. 동화 속 귀여운 할머니 캐릭터처럼 우리 할머니도 귀엽게 느껴졌다. 그 때부터 어렴풋이 느꼈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그대로 얼굴로 드러나는구나’하고 말이다. 얼굴이 고운 어르신들을 보면 느낀다. 그 어떤 풍파를 거쳐왔건 간에 중요한 건 그걸 어떻게 느끼고 대해왔느냐는 거였다.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나는 할머니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염습을 할 때 느꼈다. 그 어떤 사람이건 똑같이 죽음을 맞이하는구나라고 말이다. 얼마전까지 살아있던 사람이라고 믿겨지지 않을만큼 장례사는 우리 할머니를 물건처럼 단단하게 동여맸다. 그게 20대 중반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부모님의 은퇴는 나에게 또다른 시야의 확장을 가져다주었다. 덕분에 나는 내 은퇴 후의 삶을 리얼하게 상상해보게 되었다. 부모님 관련 글에서도 여러번 언급했었다시피 부모님의 은퇴는 꽤나 만족스러운 은퇴의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이상을 원했다. 어떤 게 내 삶에서 부족한지 끊임없이 질문했다. 내가 지금의 아빠, 엄마라면? 나는 무엇이 가장 아쉬울까?
한두달 정도 알바를 한 적이 있었다. 어린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짧은 시간동안 할 수 있는 알바라면 집 근처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할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같은 건물에 ‘간병협회’라는 간판을 보게 되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들어갔다가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세계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환자 가족은 간병할 사람이 필요하다(되도록 싼값에). 간병인은 수월한 환자를 원한다(되도록 비싼 값에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그리고 간병협회라는 요상한 기관은 간병인 유치를 목적으로 회비를 받는다. 협회라고는 하지만 개인 운영이다. 하루 이틀이면 누구나 간병 교육이 끝난다. 그리고 바로 현장에 보내진다. 간병협회에서도 까다로운 환자는 간병인(회원) 보호 차원에서 안받는다. 대놓고 안받는다 하지 않고 사람이 부족하니 다른데 알아보라는 식으로 돌려 말한다.
이런 요상한 시스템을 보면서 나는 마음먹게 된다. 이 더러운 판을 뜯어 고치던지 우리 가족들은 절대 아프지 말던지, 내가 돈을 엄청 많이 벌든지. 사실 돈을 많이 번다하더라도 매일 10만원이 기본인 간병비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제일 중요한건 나부터 건강한거다.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의 건강은 내가 책임져야겠다는 무거운 사명감도 얻었다. 그렇게 <영양의 비밀>,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 <대유행병의 시대>와 같은 책들은 나에게 필독서가 되었다.
나이듦에 대해 재정의한 이런 책을 접할 수 있다는 건 우리에게 크나큰 축복이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런 시각으로 노년을 바라보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오늘날 우리는 평균 수명 80세를 넘어 100세 시대를 바라본다. 공연 시간이 늘어난 만큼 에피소드도 많이 추가되고 마지막 3부까지 무대에 올리는 게 당연한 것이 되었다.(...) 이 3부 무대는 1부나 2부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인생은 드라마와 같다는 말처럼, 그 동안의 모든 노고가 치하되고 강등이 해소되고 동요가 가라앉는 대단원이다. (...)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인생 3막은 길고도 다채로운 무대가 될 것이다. 주인공인 우리들 각자에게 이번 무대가 어떻게 느껴질지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태도에 달려 있다. 부정적 선입견만 가득한 기존 통념의 틀을 깨부수고 한층 밝아진 눈으로 세상을 조망하면 새로운 선택지가 우리 앞에 펼쳐진다. - <나이듦에 관하여> p.25, p.27 중에서
이런 시선으로 우리의 노년을 바라볼 기회가 생긴 것에 감사한다. 나이듦은 죽음과 연관되고, 생각하기 싫은 요소가 아니다. 지금부터 마주해야할 중요한 부분이다.
미래라고 하면 너무나도 거창하고, 은퇴 후의 삶이라고 하면 막연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막연함때문에 우리의 ‘현재’를 모호하고 애매하게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당장 내일 노인이 된다면 지금의 건강한 이 두 다리를 의자에 앉아있는데에만 쓰지 않을게 확실하다. 단 하루만이라도 휠체어 생활을 해본 사람은 두 다리가 멀쩡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는 것을 안다. 눈이 침침하지 않음에 감사하고 뭘 먹든 소화가 되고 뭐든 씹을 수 있는 치아에 감사를 표하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들지도 모른다.
할머니와의 헤어짐, 그리고 부모님의 흘러가는 시간, 팔딱팔딱 뛰는 생명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는 어린 두 아이의 웃음소리, 이런 것들을 떠올리다보면 나의 삶에 대한 애틋함이 몰려온다. 지금 이 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진다.
내 삶의 마지막에 후회없이 살았노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는 말은 이미 식상할지도 모른다. 그냥 나는 ‘나’라는 연료를 완전 연소하고 싶다. 그리고 그로인해 보게될 아름다운 빛과 따뜻한 온기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껏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