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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Dec 04. 2020

미식 인류에서 유기화학자인 식물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음식은 문화이자, 환경이자, 미생물과의 관계다.

나에게 음식은 연료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항상 나는 맛있는 음식도 좋았지만  문화가 좋았고  재료에 관심이 갔고, 음식이 가지는 힘을 믿었다. 그래서 오픈다이닝 공간을 열게  것도 그런 이유가 컸다.

음식하면 맛도 중요하지만 영양도 빼놓을  없다. 그렇다고 영양만 있는 죽이나 링겔로   있냐하면 그것 또한 아니다.

나는 맛도 있고 만들기도 쉽고 영양도 있는 그런 음식들을 찾아헤맸다. 그렇다고 정크푸드를 전혀 안먹거나 채식주의자인것도 아니다. 프렌치프라이는  케찹에 찍어 먹었고, 건강한 (?) 치즈버거는 이미 치즈버거가 아님을 알고 있다. 콜라를 즐겨 마시지는 않지만 콜라가 없는 치킨, 피자, 버거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면서 동시에 건강한 식사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나는 단지 행복하게 먹고 행복하게 소비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삶의 전반에는 음식과 공간이  차지를 한다는  오늘도 다시금 깨닫는다.


어린 아이 둘을 키우다보니 건강에 대한 생각이 한층 더 강해졌다.


건강, 영양, 문화, 환경은 공존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프레드 프로벤자 교수님의 <영양의 비밀>은 아직 초반만 읽고 있는데도 깊이가 어마어마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단순히 음식을 영양학적으로 칼로리로 따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맛있으면 장땡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이 책은 철학책으로 분류해야 맞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동물에게 배우는 최상의 건강관리 비법’이라는 부제이지만 나에게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인생책이 될 것만 같다. 건강관리는 어르신들만 챙기는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삶이 장기전이라면 가장 건강할 때부터 우리는 건강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왜 10년 또는 몇 년은 기본으로 타는 자동차는 엔진이나 부품관리에 힘쓰면서 80~100년을 써야하는 우리 몸에 대한 이해도는 낮은채로 살아가는 걸까?


우리 몸은 부품을 대체할 수도 없고 더 정교하고 놀라운 유기체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살이 쪘을 때만 바짝 다이어트를 하거나 건강식품에 의존하는 게 아닌, 제대로된 건강관리가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건강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해서 처음에 목차 스키밍을 했었는데 사실 목차 스키밍이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이 책은 긴 서사를 가진 역사서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흐름에 맡겨서 곱씹어야 할 책이다. 총 4부로 나눠진 이 책의 첫 파트는 ‘변화의 성찬’이다.


나는 염소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염소, 쥐, 일본 할미꽃에 대해 관심이 가게 된 적이 내 인생이 있었을까 싶다. 염소는 최근에 어린왕자 원서를 다시 읽으면서 염소가 바오밥 나무의 어린 순을 먹는다는 걸 떠올리며 염소의 먹성에 대해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는 인간 외의 동물은 어리석다고 생각하곤한다. 그리고 식물은 더더욱 그렇다.


염소들을 ‘이동식 가지치기 기계’라고 표현한 점이 너무나도 인상깊었다. 그들은 그저 먹이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모습에서 놀라운 자연의 모습을 보게 된다. 어린 관목의 가지가 오래된 나무의 가지보다 맛있을텐데 왜 이 염소들은 그걸 먹지 않았을까? 그게 그 나무들, 식물들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시스템이 작동한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우리는 식물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사고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광합성을 하고 숨을 쉬며 방어를 위한 전기 신호를 보낸다. 우리의 판단으로 아직 식물을 이해하지 못한 것뿐이지 식물은 지능이 없는게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이 책에는 가득하다.


이 책의 저자가 하는 말들 하나하나에 통찰이 꽉꽉 담겨있어 후루룩 읽기가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그 같은 —평균이 아니라 — 예외가 이 연구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임을 깨달았다. - p. 38 <영양의 비밀>


당시의 나는 식물학적으로 훨씬 다양한 먹이가 보장되는 로키산맥의 야생 염소를 연구하는 쪽을 선호했을 테지만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연구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거라고 종종 생각한다. - p. 39


식물은 초식동물, 잡식동물, 육식동물이 대지와 맺는 관계를 얘기해 준다. 식물은 땅속에, 땅위에 사는 초식동물과 잡식동물과 육식동물을 흙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한다. 땅은 단순히 흙과 식물과 동물의 그물망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태양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식물을 통해 땅속, 땅위에 사는 동물에게 흘러 들어가는 통로이기도 하다. (...) 식물은 ‘만찬의 주최자(the founder of the feast)’이기도 하다. 따라서 동물의 먹이 활동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식물이 차지하는 역할을 생각하지 않고는 어떤 영양학적 지혜도 논할 수 없다.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는 식물이 어떻게 동물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자신을 유지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p. 49


내 오랜 친구 일본할미꽃은 유기화학자다. -p. 49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붙잡아 둔 에너지(탄수화물)의 30퍼센트 정도를 토양 속으로 내놓는다. 그런 과정을 통해 조류(해조류), 박테리아, 균류, 원생동물, 진드기, 소형 절지동물, 선충류, 지렁이, 노래기, 개미, 그 밖의 여러 곤충과 공생관계를 형성한다. -p. 55


심지어 식물은 giver다. 애덤 그랜트의 <기브 앤 테이크>도 생각이 난다.


식물은 공기 속의 휘발성 화합물의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세포 조직에서 그 ‘맛’을 볼 수도 있다. 어떤 식물은 애벌레의 공격을 받으면 휘발성 화합물을 분비해 기생말벌이나 잠자리 같은 포식 곤충을 ‘경호원’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면 그들이 그 식물을 먹고 있는 애벌레를 맛있게 먹어 치운다. -p.56


나는 염소들에게서 먹이 활동을 배웠고, 블랙브러시는 나에게 식물이 미국 남서부 사막의 가혹한 환경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자원이 부족하면 식물은 자신의 조직이 먹히는 것을 막기 위해 이차화합물을 만드는 데 힘을 기울인다. p. 57


사람도 자원이 부족할 때(스트레스를 받을 때) 색다른 걸 발휘하지 않나? 오히려 스트레스가 우리를 성장시키는 게 맞다는 생각이 더욱 단단해진다.


식물 가운데 어떤 개체는 성장과 번식보다 방어에 더 많은 자원을 할당하는 경향이 있다. -p.59


식물 개체에 따라 다른 것처럼 성장, 번식, 방어에 자원할당하는 것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느낀다. 환경에 따라, 운에 따라, 마음가짐에 따라 그 어떤 영향에서든 같은 환경이라고 해서 같은 사람은 없다.


이렇게 이 책은 한 챕터 안에서 이렇게 엄청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빨리 읽어버린다면 소화불량에 걸릴 정도다. 지금 느끼는 이 감동을 기록해둬야 훗날의 나에게 미안하지 않을거 같아 이렇게 적어본다. 생존을 위한 영양소가 다 들어있는 알약이 개발된다하더라도 맛이 주는 행복감을 포기 못한다는 분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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