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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Dec 26. 2020

마음에 필요한 약은 따로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잘’ 선택했으면 좋겠다

불안에 쉽게 노출되는 사람이 존재하는 걸까.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크리스텔 프티콜랭의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책의 표지를 보자마자 내 얘기구나 싶어 바로 집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나에게 ‘마음’은 내 삶에서 간과할 수 없는 주제였다.


미디어

내가 상담을 비교적 일찍 접한 건 미디어의 영향이 컸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우연히 케이블 방송에서 <앨리 맥빌>이라는 법정 로맨틱 코메디물을 알게 되었다.

영화 ‘미녀 삼총사 루시 리우도 나왔고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젊은 시절도   있고( 당시에는 로다주를  몰랐지만) 엄청 재미있게 봤었던 드라마였다.  미드가 나에게 상담에 대한 높은 벽을 허물어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이한 성격의 주인공 앨리가 소파에 누워 카운슬링을 받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게 나에게는 엄청 ‘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상담이란  별게 아니구나를 느끼며 청소년기를 지냈다.   

그렇게 나는 심리테스트를 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언젠가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약 vs 상담

그렇게 상담에 대한 마음의 벽은 낮았던 나도 정신과에 대한 편견은 가지고 있었다. 요새 들어서는 오히려 그런 편견이 많이 사라진 편이었지만 내가 처음 상담을 받았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이 슬퍼하실까 봐 상담받으러 다닌단 말도 못 했다. 부담되는 상담비를 어떻게 할까 하다가 다른 핑계를 대며 용돈을 올려달라고 했었다. 그 당시 부모님은 나의 상황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계셨다. 모른 척하시던 것뿐이었다.


어쨌든 대학생에게 검사비는 큰 부담이었지만 나는 상담을 받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살기 위해 상담을 받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렇게 처음 지겨운 검사들을 지나 의사 선생님과의 면담이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첫날에 나에게 약을 처방했다. 그리고 먹어도 좋고 안 먹어도 좋다는 식의 말씀을 하셨다. 아니면 내 기억이 정확치 않았을 수도 있다. 그저 ‘가볍게’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약 처방을 받은 것만은 뚜렷하게 기억한다.


어쨌든 집에 돌아와서 약봉지를 열어보며 나는 울었다. 정말 힘든데 이 약을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엄청나게 되었다. 이걸 먹는 게  ‘발광하는 동물에게 마취총을 쏴서 진정시키는 이미지’와 동일시되었다. 나는 먹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나는 힘들어도 약을 먹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다음 면담 때 의사 선생님께 ‘약을 안먹었고 앞으로도 안먹고 싶다’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온화한 미소로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의사선생님께 전날 꾼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상한 꿈이야기에 대해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의사선생님은 나에게 ‘생각보다 빨리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의미를 그 당시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로렌 슬레이터의 <블루 드림스>를 읽으며 그 당시 나의 선택에 어느 정도 안도하는 내가 있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신과 약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약 복용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고통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평생 정신과 약을 먹지 않은 성인 환자의 우울증은 23%가 1개월 내 치료 없이 완화된다. 기간을 6개월로 늘리면 67%, 1년의 경우는 85%가 우울증에서 벗어난다. 반면 약을 먹은 환자의 병은 점점 심해질 뿐이어서, 우울증 증상이 발현하는 간격은 갈수록 좁아진다. 항우울제로 “회복”했다가 약을 끊은 우울증 환자의 상황은 특히 참담하다. 무수한 연구가 항우울제를 먹다가 끊을 경우 18개월 안에 우울증이 재발할 확률이 50~70%라고 증명한다. - <블루 드림스> p. 255


항우울제가 나온 후 우울증 발병률은 1,000배로 뛰었다는 이야기만으로 항우울제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갖는다는건 너무 성급하다. 하지만 부작용이 십여년 전과는 달리 요새는 어느 정도 안심할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부작용에 대한 이런 사실을 알게 되니 많이 혼란스러웠다.  

상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치료를 하는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 굳이 심리치료사의 도움 없이도 대화요법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연구로 확증된 사실이다. 7년을 공부해 학위를 딴 사람에게는 듣기 힘든 말일 수 있다. 첫째 글자는 ‘박’이요, 둘째 글자는 ‘사’인 두 글자의 타이틀을 얻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을까. 하지만 치료사의 경험과 치료 결과의 상관관계가 0.01이라는 확실한 연구 결과가 있다. 0.01은 결국 0이다. 둘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고 이 사실은 수없이 증명됐다. 이웃에 사는 빌이나 조 이모를 찾아가나 프로이트처럼 생긴 치료사에게 거금을 갖다 바치나 결과는 비슷할 것이다. - p. 298 <블루 드림스>


이 글을 쓴 저자 본인이 심리학자이자 35년 간 정신과 약을 먹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고백이 더욱 놀랍고도 용기있게 느껴진다. 자신을 까고 본인이 몸담은 업에서 반성적 사고를 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다시 나의 상담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그렇게 나는 그 다음부터 미술상담치료를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림을 그린 적은 한참 후에 한 번 정도밖에 없었고 거의 대화만 50분간했다. 나에게 매 주 50분은 너무 짧게 느껴졌고 부족했다. 그리고 1주일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1주일에 한 번 상담을 가지 못하면 그 일주일을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그런 내가 서서히 2주에 한번, 1달에 한번만 상담을 해도 괜찮아졌다. 그렇게 되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다.



<블루 드림스>를 읽으면서 나는 상담했던 때를 다시 떠올린다. 상담사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나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주고 거의 6년간 나와 깊은 대화를 나눈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철학이 그를 불편하게 했던걸까. 어느 날은 나에게 아주 큰 상처가 될 말을 상담사 선생님이 나에게 했다.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그 때 다시 한번 느꼈다. ‘아... 이 사람도 나를 상담하고 나서 또다시 다른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는 똑같은 사람이구나’라고 말이다. 상담사는 업무 외에도 개인적으로 상담을 받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대나무숲이 된 만큼 전문가로서의 고통의 무게도 크리라 생각된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따뜻함’이 중요하지, 누구에게 상담을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부분은 사실 좀 충격적인 이야기다. 연구 결과로도 확증이 되었다고 하니 더더욱 그렇다. 나의 6년은 의미가 없었던 걸까?


상담보다 좋았던 것 2가지

상담을 받지 않은지 3년 정도가 지났다. 지금 나에게 그 당시 상담이 도움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아래 2가지를 병행했더라면 더욱 더 빨리 괜찮아졌을거라 확신한다. 바로 매일 새벽달리기와 글쓰기다. 글쓰기는 상담받기 전부터 하고 있긴 했지만 더 빡세게(?) 썼어야 했다. 쓸 기분이 날 때만 쓰는 게 아니라 매일 감정을 기록하는거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고 나 자신을 내가 위로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글쓰기가 도움이 될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가끔씩 쓰지 않았을텐데 참 아쉽다.


또 한가지는 달리기다. 내가 다른 운동보다 달리기를 적극 추천하는 이유는 매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필라테스, 요가, 발레 등 좋아보이는 운동들도 주3회씩 했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운동을 일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돈을 내야하고, 모든 일을 끝낸 후 ‘여유있을 때’ 하는 식으로 일과에 포함한게 문제였다. 운동은 식사나 잠처럼 결핍되면 큰일나는 걸로 여겼어야 했다. 특히 정신적으로 힘들때는 더더욱 운동을 빡세게 했어야 했었다.


지금도 의문인건 ‘왜 의사 선생님도, 상담 선생님도 운동에 대해서 그렇게 강조하지 않았을까’였다. 아마 그 분들도 잘 몰라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분들도 <움직임의 힘>같은 책을 읽었더라면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내가 만약 전문의였다면 상담과 더불어 운동은 반드시 해야하는거라고 강조, 또 강조했을텐데 말이다. (매일 운동한거를 매번 다음 상담 때까지 숙제로 해오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건 아닐까 싶을만큼)

마음의 힘, 믿음의 힘

로렌 슬레이터의 <블루 드림스>를 읽으며 플라세보, 노세보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엄마가 왜 그렇게 건강 정보를 알게 되는 족족 좋다고 하셨는지까지 말이다. 우리 엄마는 어쩌면 플라세보에 아주 민감한 분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거의 확신 상태다(ㅋㅋㅋ). 이게 몸에 좋다고 생각하고 시도하면 그게 무엇이든 엄마에게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나는 그게 부담스러웠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그걸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건강에 대한 정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믿지 않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영양의 비밀>, <당신은 뇌를 고칠수있다>와 같은 책을 읽으며 더 그런 생각이 더욱 단단해짐을 느낀다. 내 건강은 내가 알아야 한다. 나에게 맞는다고 우리 부모님께도 효과있는 건 아니다. 우리 몸은 각자가 유일무이한 복잡계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 자신이다. 아니, 잘 ‘알아야’ 하는 건 나 자신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합한 표현이 되겠다.


정신건강에 대한 책을 읽으며 몸에 대해서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이고 우리가 모르는 것들은 아직도 많다. 모르고 편견에 사로잡히거나 주위 사람말만 듣고 쉽게 판단내리기에는 나의 몸은 너무 소중하다. 우리 마음에 필요한 약은 어쩌면 전문가에게도 물어봐야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더 잘 알아봐야 하는 건 아닐까 싶다. 부작용을 감당하는 것도 내 몫이다. 이 책은 정신질환 약을 무조건 먹으면 안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책이 전혀 아니다. 무엇을 알고 무엇을 감당해야할지 누구보다 ‘나 자신’이 제대로 알아야함을 깨우쳐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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