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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Jan 06. 2021

엄마, 나는 돌연변이 슈퍼히어로였어요

이 정도로 우리가 다를 줄이야

한동안 자기계발서와 사회과학 서적들을 탐독하던 나는 아주 강력한 ‘성장형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다른 사람들의 가능성까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러다보니 자기 가능성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다 미칠 것만 같았다.


‘아니! 자신의 히든 에셋(숨겨진 자산)을 왜 활용 못하고 있지?’


라고 말이다.


빌 설리번의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을 읽으면서 어쩌면 나는 돌연변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 모두가 그런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사실 저자의 병맛 애드립이 곳곳에 난무하다보니 나도 거기에 영향을 받은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것들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곳곳에 숨어 있었다.
 

음식취향

책에서는 superstaster라는 단어가 나온다. 맛에 대해서 타인보다 민감한 감각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데, 듣기에는 엄청 대단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Instead of an “S” on my chest, it’s more like a scarlet letter on my forehead. -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Pleased to meet me)> Meet your Tastes 중에서

1930년대에 한 화학자에 의해 수퍼 테이스터란 개념이 언급된다. 실험 중 실수로 화학 물질을 엎은 그는 동료는 견디기 힘들어하는 쓴맛에 대해 자신은 아무런 불편을 못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처럼 어떤 감각이 특별히 뛰어나다는 게 무조건 좋지만은 않다. 맥락에 따라 큰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부분은 노력으로 고쳐지는게 아니니 더더욱 문제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브로콜리나 가지를 반기지 않는 남편을 보고 어느정도는 한심하게(미안합니다...ㅋㅋ) 보고 있었다. 다 큰 어른이 채소를 못먹는다고 하다니...말이 돼?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를 돌아보니 나는 다른 버섯들은 다 너무 좋은데 ‘표고버섯’의 향만은 견딜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극복을 못한 상태다. 표고버섯을 우린 물이 들어간 국물도 단번에 알아챈다. 하지만 나는 그 외의 향이 강한 향신료는 사족을 못쓸만큼 좋아한다. 깻잎, 고수, 인도 커리, 동남아 음식, 그 어떤 향신료도 싫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표고버섯만 빼고... 그리고 다른 미식가 친구 역시 표고의 향이 힘들다고 한 말에 왠지 모를 동질감과 안도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표고버섯은 넘을 수 없는 산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겠지라는(다 큰 어른이니까) 도전 정신을 불러 일으킨 식재료였다. 그런데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니 평생 극복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전 정신이 강한 나조차도 표고는 힘들다고 했는데 내가 남편의 편식을 너무 뭐라고 한건 아닌지 반성이 되었다. 아이들 앞이라고 7살 아이가 억지로 채소 먹는 모습보여주듯 열심히 먹는 모습을 떠올리니 짠하기까지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영양의 비밀>도 생각이 났다. 식물들 역시 살아남기 위해 여러가지 장치를 스스로 만들어 낸다. 천적들이 자신을 먹게 만들어 씨앗을 널리 퍼트리거나, 또는 자신을 못먹게 만들기 위한 독특한 향을 뿜어내거나 말이다.

소화가 잘 되는 우유가 시중에 판매되기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은 걸로 기억한다. 나는 우유를 소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유를 물처럼 마시기도 한다. 근데 남편은 안된다. 우리 딸 아이들은 다행이도 우유를 소화시킬수있다. 나는 우리 아빠도 우유를 소화를 못시켜서 남자는 여자보다 장이 약한 걸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락토스를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돌연변이라니...그렇게 따지면 나도 돌연변이고 우리 아이들도 돌연변이다. 우리 남편만 우유를 소화 못시켜 안쓰럽고 이상하게 봤었는데 내가 특이했던거다. 맛난 우유(?)를 소화시킬수있다는 사실이 나는 미식을 위한 모든 유전자가 준비된 사람인

것만 같은 생각마저 든다. 향신료에 나와는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는 남편에게 좀 더 따뜻하게 대해줘야겠다는 마음도 함께.


도덕도 심지어 입맛과 비슷하다

요새 <바른 마음>을 읽으면서 도덕과 입맛의 흥미로운 공통점을 알게 되었다. 도덕적인 판단도 미뢰(taste bud), 즉 맛봉우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다른 것과 같이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닐까. <바른 마음>에서 미뢰 얘기를 발견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입맛도 이렇게 다른데 도덕적인 신념이야 말로 더더욱 바뀌기도 어렵고, 바꾸려고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개그 코드

소울메이트를 꿈꿔온 나에게 어쩌면 남편과의 다툼은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울메이트를 믿는 커플은, 함께 시간을 ‘성장의 기회를 가진 여행’으로 보는 커플보다 더 많이 싸우는 것으로 연구에도 밝혀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실망하기엔 이르다. 나는 처음에는 소울메이트의 존재를 믿고 사랑에 빠졌고, 그리고 그 믿음으로 어려운 역경(?)도 이겨냈다. 그리고 이제는 소울메이트를 꿈꾸는 게 관계에 도움이 안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지금부터라도 현명하게 남편과 성장의 기회를 즐기는 여행을 한다는 마음으로 앞으로를 살아가면 된다. 오늘 글에서 남편에게 여러 번 사과하는 것 같다. 소울메이트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연인과의 싸움 후 용서를 덜 받는 걸로 나타났다니...남편몬...지금까지 잘 용서 안해줘서(?) 미안했어...


이렇게 완벽한 기대는 더욱 많은 문제와 갈등을 만들어 낸다는 걸 알 수 있다. 본문에서 언급된 것처럼 우리는 관계에서 정원사가 되어야 한다. 건강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을 기울이고 살펴주고 사랑을 줄 그런 정원사말이다. 그런 남편과 나를 이어주었던 단 하나의 공통점인 ‘개그 코드’를 다시 상기하면서 건강한 관계를 위한 정원사로 거듭나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나’라는 복잡계 그리고 우리의 가능성

이 책은 우리가 우리일 수 밖에 없고 변하기 힘든 이유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가능성을 말해준다. 우리의 행동과 성격은 유전자, 미생물, 호르몬, 신경전달 물질, 환경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에서 만들어졌다. ‘나’라는 인간 자체가 엄청난 ‘복잡계’라는 얘기다.


나라는 인간의 한계를 무시하는 한 그 한계를 깰 수는 없다. 오히려 한계를 인식하고 바로 보는 것이 올바른 전략을 짤 수 있다. 우리가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고 시스템1과 시스템2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우리의 인지편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걸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지혜를 얻은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운명의 과학> 또한 생각이 났다. 하지만 그 책도 우리의 한계에 대해서만 말하는 회의적인 시각의 책이 아니다. DNA, 후생유전학, 마이크로 바이옴, 두뇌 등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지금의 나와 과학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기적 유전자>는 아직 초반밖에 못봤지만 <나를 나답게 만든 것들>을 통해 더 따뜻하게 연민을 가지고 우리 인간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속 <엑스맨> 시리즈에서도 인간이 돌연변이를 공격하는 이유는 ‘두려워서’다. 우리는 모르는 존재에 대해 혐오와 공포감을 느낀다. 하지만 제대로 알게 된다면 공포는 연민과 이해로 바뀔 수 있다.  


The vast majority of nature if red in tooth and claw, with no regard for the welfare of others. But some species have flipped this logic on its head. (...) Helping people regardless of their genetic equivalency to us is the ultimate rebellion against selfish genes. By defying the primitive urges of me, me, me, we can flip off the selfish genes and live a life of human nurture, rather than human nature. I think we’re all up to the challenge. -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중에서


저자의 마지막 말처럼 모두가 우리의 도전에 달려있다. 이 책은 한계를 알고 제대로 인지한다는 것의 놀라움을 여러 번 느끼게 해주는 책이라 할수있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인류,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메타인지를 높여야 하는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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