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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Oct 24. 2020

긍정적인 중독을 위하여

나의 ‘중독의 역사’ 탐색기

우리는 흔히 쾌락, 중독은 모두 나쁘다고 생각한다. 일단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그렇다. 나부터도 이 단어들을 듣자마자 떠오른 건 담배, 게임, 마약 등이었다. 그래서 처음 이 책 제목을 접했을 때 ‘아... 대충 뭔 얘기를 할지 알겠다. SNS 뭐 이런 것도 중독이니 조심하라는 거겠지?’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건 이 책은 중독과 쾌락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우리 삶 속에 녹아있는지였다. 그리고 중독이 나쁘고 기피해야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주며 나의 고정관념을 산산이 부셔주었다. 이 책은 후루룩 읽어버리면 안 되는 책이다. 챕터당 글 하나는 기본으로 써야 하는, ‘꼭꼭 씹어먹어야 남는’ 미친 책이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쾌락이 모두 나쁘거나 중독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쾌락은 유익하고 사회적으로 건설적이었다.(...) 쾌락의 확대 과정은 1,000년 전에 사람들이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얻듯이 자연에서 쾌락을 발견하고 가꾸고 교환하고 혼합하고 정제하고 상품화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어 사람들은 운수 게임같이 자연에서는 찾을 수 없는 쾌락을 만들어 퍼트렸고, 사회적 제약의 위험을 최소화하고 적은 비용으로 새로운 쾌락을 누릴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대개는 익명의 도시 환경을 조성해나갔다. - 데이비드 T. 코트 라이트  <중독의 시대> p.25


이렇게 중독과 쾌락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일단 떨쳐내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과연 나에게 취약한 부분, 내가 중독되기 쉬운 요소들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내가 취약한 부분을 안다면 내가 그걸 피하기도 쉬울 테고 나에게 적합한 환경 세팅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나의 중독의 역사 탐색기 1. 게임


초등학교 1학년쯤 아니면 훨씬 더 어릴 때였나, 일본에 살던 시절 나는 친척집에 갔다가 언니 오빠들이 하던 ‘스트리트 파이터’를 보고 눈이 뒤집혔었다. 아니 이런 게 세상에 존재한단 말인가. 그렇게 나는 게임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우리 집은 당시 그런 걸 살 형편이 안되었고 대신 아버지께서 구해다 주신 픽셀 게임 같은 걸로만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깨달았다. 기회만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반드시 하고야 말겠다는 나의 의지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 3학년 때 한국에 오게 된 나는 잠시 게임이라는 존재를 잊은 듯 보였다. 한국어를 배워야 했고 나쁜 친구와 어울리지 말라며 피아노 학원에 강제로 다니게 된 나에게 집에서 게임을 할 기회란 그다지 없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나서는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화교학교에 다니느라 나는 게임 자체를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점차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어린 나는 포켓몬스터 게임을 알게 된다. 그 당시에 포켓몬뿐만이 아니라 어릴 때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슈퍼마리오, 동키콩, 알라딘 게임, 버블버블, 짱구는 못 말려 게임 등 내가 하고 싶은 게임들을 계속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의 사고 회로에서 어떤 괴리감이 감지된 사건이 있었다. 그날도 나는 신나게 알라딘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는 게임을 더럽게 못했지만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고 싶은 욕구만은 강력했다. 그 게임은 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4개 그림으로 이루어진 암호가 나온다. 그러니까 그 암호만 알면 그 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어린 나는 4x4x4x4의 경우의 수를 모조리 공책에 적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 같지만 나는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서 느끼는 만족보다 다른 스테이지가 ‘어떻게 생겼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깍두기공책에 하나하나 적어보며 암호가 틀리면 줄을 좍좍 긋는 일상을 반복했다.


며칠이 걸렸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렇게 나는 알라딘 게임의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모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만족과 동시에 허무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약간 무서워졌다. 왜냐하면 내가 이것보다 더 심하게 중독적인 게임에 빠졌을 때 나의 시간은 어디로 가는 걸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장실 가는 것도 시간이 아까워 옆에 요강을 놓고 게임에 몰입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게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던 거 같은데 그때 마음먹었다. 나는 게임을 멀리해야겠다고.



나의 중독의 역사 탐색기 2. 영상매체


사실 나는 영상 덕후다. 매스미디어 키드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에는 세일러문을 좋아했고 다 보지는 못했어도 웬만한 애니메이션은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 영상뿐만이 아니라 만화책도 좋아했다. 일본에서부터 한국에 와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문화에 더욱 빠졌다. 그 당시 일본 드라마나 쇼프로가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었다. 중고등학교 때 일본문화에 대해 친구들과 수다 떨며 놀던 게 기억이 난다.


대학교에 가서는 영화에 빠지게 되었다. 일반 상업영화뿐만이 아니라 인디영화들을 보러 광화문에 가곤 했다. 시네큐브나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안나는 예술영화관들을 전전했다. 그렇게 나는 영화 팸플릿들을 모으고 영화를 보고 감상에 젖어 뒤늦은 사춘기 같은 대학생활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궁금했던 건 사람들의 감정과 다양한 경험이었던 듯하다. 그러다 보니 영화라는 영상매체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모든 스토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나는 '정보와 서사' 중독이었다.  (서사 관련 글_ '하나의 거대한 서사가 던져주는 질문들')



, 우렁쉥이가 되고 싶니?

그런 나에게 찬물을 끼얹어 준 게 <일취월장>의 ‘우렁쉥이’ 이야기였다.

멍게라고도 불리는 우렁쉥이는 어릴 적 바다를 자유로이 헤엄치며 자신이 뿌리를 내리고 살 만큼 영양분이 풍부한 장소를 찾아다닌다. 적합한 장소를 찾으면(...) 자신의 뇌를 흡수해버리는 것이다. 뇌는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처럼 말이다.(...) 더는 움직일 필요가 없어진 우렁쉥이가 뇌를 흡수해버렸듯이, 뇌는 신체의 움직임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 일취월장 p.278

이 부분이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무서웠다. 내가 돈을 많이 벌면 맛있는 음식과 내가 좋아하는 스토리들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을 것 같았다. 그러고 난 다음에 내가 결국 되고 싶은 게 우렁쉥이인 걸까? 나는 우렁쉥이가 아닌 무엇이 되고 싶을까 고민을 거듭했을 때 내가 원하던 것은 결국 성장형 사고방식의 동료들과 프로젝트들을 하고 문제 해결과 동시에 수익을 내는 크루를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블 영화는 아이언맨도 아니고(물론 처음에는 가장 좋아했지만 _관련 글 : '히어로물과 일론 머스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의 중독의 역사 탐색기 3. 정보 


그렇게 나의 욕망을 깨닫게 된 나는 다양한 정보를 엄청나게 탐색했다. 그리고 모으고 분류하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다양한 다큐를 보고 스타트업 관련 소식들을 보면서 점점 더 조급함을 느꼈다. 이렇게 빠른 변화에 내가 따라갈 수가 없겠다는 생각에 더욱 초초해졌다.


그러다가 좋은 양서를 추천해주는 분들을 만났다. 책을 원래도 좋아하는 축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들이 다 모조리 깨진 순간이었다. 나는 제대로 독서를 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제대로 글을 쓰고 있지 않았다. 나는 제대로 실행을 하고 있지 않았다. 열심히 사는 것 같았는데 내 삶이 변하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실행'을 하지 않고 정보를 모으기만 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중독의 역사 탐색기 4. 실행


그걸 알게 된 순간 제대로 다시 시작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책에서 알게 된 건 무조건 어떻게 하면 적용할까부터 생각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을 시작으로 습관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그걸로 새벽 기상과 매일 달리기 습관을 들였다. <완벽한 공부법>과 습관에 관한 책들을 읽고 언어 공부에도 적용해야겠다 생각을 해서 <언어 씹어먹기> 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리더십에 관한 책들을 읽고 적용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그룹장인데 하루라도 빼먹으면 쪽팔리니까 매일 아주 작게라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이젠 내가 원하는 걸 습관화시키는 게 수월해졌다.


이제는 실행 없는 삶이 무서워진다. 이게 나에게는 중독이 아닐까. 글쓰기가 없는 삶이 지금의 나에게 상상이 가지 않듯이 이런 중독은 나의 삶을 성장으로 가득 채우지 않을까?


나 역시도 매일 미친 듯이 노력만 하지 않는다. <언제 할 것인가>, <에센셜리즘>와 같은 책을 통해 휴식과 놀이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벽시간에 중요한 일들을 끝내며 시간을 버는 걸 즐긴다. 그리고 오후에 뇌를 다시 깨우기 위해 나의 스토리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한다. 사실 중요한 것은 가변적 보상이다. <초집중>에서 니르 이얄이 말했듯 본 짓에 집중하기 위해서 우리는 일정표를 만들고 검토를 할 때는 훈련소 교관이 아니라 호기심 많은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지속 가능하다.


나는 습관(언어 공부, 운동, 수면)으로 시작해서, 리더십, 시간관리, 마케팅(브랜딩), 창의력, 글쓰기, 스피치, 비즈니스, 스토리, 음악, 식문화까지 관심의 영역이 넓혀지고 있다. 이 모든 게 하나의 큰 줄기에서 뻗어나간다는 걸 알기에 정신없게 느껴지지 않는다. 발산과 수렴을 반복하는 느낌이랄까? 아이언맨의 토니 스탁이 자비스를 이용해 수월하게 정보에 접근하고 수트개발을 해내듯 말이다.


내가 알고 있던 게 뒤집히고 또 새롭게 쌓이면서 또 다른 공통점들을 발견할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낀다. 이런 즐거움이 내가 더 이상 게임과 SNS, 그 외 영상매체들보다 실행에 중독된 이유다.



자기 성장이라는 중독


부정적인 요소가 가득한 쾌락 중독들에 빠지는 사람들은 어쩌면 더 깊고 짜릿한 즐거움을 계속 갈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배움에서 사고의 확장을 경험하고 실력이 생겨 인정받고(사실 인정 욕구도 중독이라고 생각한다) 싶다는 목마름이 누구보다 강한 건지도 모른다.


모든 이들이 폴리매스의 삶을 살며 자기 성장의 중독으로 가길 바라는 건 나의 이상적인 바람인 걸까? 나는 아직도 이런 이들이 많아지길 기대하며 오늘도 나의 성장을 위해 몰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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