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의 대화에서도 효율성?!
지난번 통화에서 좌절을 겪고 나서 좀 더 괜찮은 시간대를 골라 통화를 시도해보았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꽤 괜찮은 타이밍이었다. 다짜고짜 물어보기가 좀 쑥스러워 오늘 기사화된 전기차 테슬라의 보급형 모델에 관한 이야기로 말문을 터봤다.
평소에도 전기차나 전기오토바이에 관심이 많으셨던 아버지는 이것저것 많이 얘기해주셨다. 얼마나 관심이 많으셨냐 하면 퇴직 전까지 빨간 전기오토바이로 출근하실 정도였으니까. 테슬라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오래 얘기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20분간 아버지만 말씀을 하고 계셨고 나는 좀처럼 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자연스럽게 물어볼 타이밍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면허도 없는 애가 무슨 전기차냐고 하시며 부모님 두 분이서 나에게 합동 공격을 퍼부으셨다. 나는 지지 않고 이제 무인 자동차가 상용화될 시대라며, 나는 의도하진 않았지만 미래를 예견하고 운전면허를 따지 않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아버지와 하던 대화가 자연스레 두 분과의 대화로 오버랩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어머니하고만 대화하고 있었다.
아차. 나는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아버지는 대화에서 치고 빠지기가 대단히 자연스러운 분이셨다. 중요한 용건이 아니면 항상 '엄마 바꿔줄까?'라며 바통을 넘기는 건 대수고 '다른 용건은 없니?'라며 전화를 급하게 마무리 짓는데 선수셨다. 나는 아버지와 대화를 한 것이 아니라 20분이라는 시간 동안 아버지의 테슬라/전기자동차 강의만 들은 꼴이었다.
아버지와 제대로 대화를 하려고 열린 마음만 먹으면 일사천리로 내가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너무 아버지를 만만하게 본 것이다. 그렇다. 이제는 전략이 필요했다. 회사생활이나 프로젝트에서만 전략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아버지와의 대화에서도 효율성에 기반한 전략이 필요했던 것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타인을 인터뷰하듯 미리 요점 정리를 하고 통화버튼을 눌렀어야 했고 그 인터뷰도 20분이 채 넘어가면 안 된다는 중요한 제약도 있었다. 20분이란 시간은 아버지께서 대화를 기분 좋게 하시는 최장 시간인 것 같다는 나의 경험에 의한 수치였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대화를 만만하게 봤던 게 큰 오산이었다. 어쩌면 그 어떤 협상보다도 가까운 사람과의 협상이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하고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정신 놓고 이야기하다 보면, 항상 하던 레퍼토리가 반복되는 과오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쳇바퀴 돌듯 비생산적인 얘기만 반복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아버지와의 대화도 아버지의 대한 이해도 지금까지 한 지점에서 멈춰버렸던 것이다.
나는 점점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기' 프로젝트를 진지한 '일'로써 받아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