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를 생각나게 해준 이것저것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나는 매스미디어 키드였다. TV를 보는 것을 좋아했고 영상뿐만이 아니라 만화책도 엄청 좋아하던 극히 평범한 아이였다. 나는 특별히 어떤 사람이 되겠다라는 구체적인 야망은 없었지만 뭔가 대단한 건(?) 이루고 싶었던 막연함만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물 흘러가는대로 정보와 재미들을 흡수하던 내게 푹 빠지게 된 것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라고 하면 딱히 한 가지 요소로 말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유머의 포용력과 날카로움, 그리고 그 중독성에 매료되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머는 진지함을 녹인다. 유머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에 날카롭게 비수를 꽂아 경각심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유머는 일단 그냥 미친듯이 중독성있다!!!
내가 유머의 세계에 처음 의식하게 된 것은 일본 ‘오와라이’의 세계에 푹 빠지고 나서부터였다. 오와라이는 일본 개그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일본 개그라니 만담같은 걸 말하는 건가 싶겠지만 일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라든지 모든 걸 통틀어서 나는 그 개그 문화에 빠지게 되었다. 문화의 종착지는 개그라고 했던가. 일본 개그에 빠지게 된다면 일본어 실력은 일취월장한다고 장담할 수 있다. 그 빠른 템포나 그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자막만으로는 그 재미를 온전히 느낄 수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이유도 모르고 그저 중독되듯 일본 개그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그치지 않고 함께 일본 개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알게 된 게 지금의 남편몬이다. 덕후 부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친해진 이후로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개그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굳이 할 필요성을 못 느낀 걸수도 있고 그 시기에 일본 개그 붐이 잠잠해진 것도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일본 개그라는 공통점이 우리 두 사람에게 엄청난 가치관 공유를 가져다주었기에 서로 ‘안심’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공유하기 어려운 일본 개그라는 가치관을 동시에 가지게 된 이후로 서로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랄까. 참 설명하기 어렵지만 나는 남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계속해서 일본 개그에 대한 목마름에 시달렸을거라 생각한다. 공통된 취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연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란 흔치 않다. (일본 개그 동호회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내가 푹 빠지지는 않았듯이 말이다.)
유머는 이처럼 그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게 분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어렴풋한 가정을 기정사실화해준 놀라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제니퍼 에이커와 나오미 백도나스의 <유머의 마법>이다.
<생각에 관한 생각>의 저자이자 행동경제학을 창시한 노벨경제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밑에서 공부한 저자라니... 저자 약력에서부터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설마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유머에 관한 비즈니스 강좌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일본에서는 개그를 좀 더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게 일반적이라 유머도 학문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실제로 그런 수업을 비즈니스 쪽에서 만들었다고 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일본 오와라이에서는 콤비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보케(‘허당’같은 의미, 웃기거나 엉뚱한 얘기를 하는 쪽)와 츳코미(보케를 지적하는 쪽)로 이루어진 게 기본이라 할 수 있지만 ‘보케’만 두 명이라거나 새로운 형태의 개그도 엄청 다양하게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의 개그와는 또다르고 미국 스탠업 코메디나 SNL과도 또 다르다. 하지만 어떤 개그가 더 재미있다가 아니라 각 나라마다 문화마다 개그의 차이를 비교 분석하는 것도 재미있는 접근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시 <유머의 마법>으로 돌아오자면 이 책에서는 유머가 우리 삶에서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무기임을 설명해준다. 우리 삶은 하하호호 즐거운 부분보다 그렇지 않은 부분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진지한 것들과 싸우기 위해 우리 스스로 심각하게 진지해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진지함이 재미와 적절한 균형을 이루면 우리 삶은 엄청나게 윤택해질 수 있다. 유머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유머를 소비하는 입장으로써 유머를 만들어내는 전문가들은 항상 ‘실패와 마주하는 힘’에 노출되어 있구나를 알게 되었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만 유머를 소비했었는데 오히려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유머를 일상은 물론이고 일에서도 잘 활용해야겠다고 느꼈다. 그리고 특히 리더야말로 유머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생각했을 때 리더는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누구보다도 심각하게(?) 일을 처리해야하지 않나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어찌보면 유머에 대한 상당히 큰 오해때문에 생긴 선입견이 아닐까 싶다. 유머는 엉뚱한 행동을 하고 깔깔대며 남을 웃기는 게 아니다. 유머에서 중요한 것은 웃겼느냐 여부가 아니다. ‘적절한 상황에 썼느냐’가 웃기는 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 이런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아재 개그의 폐해가 심각한 게 아닐까 싶다. 아재 개그는 상황에 대한 적절성이 빠지고 어떻게든 웃기고픈 아재들의 농담으로 인한 처참한 결과니까 말이다. 한 사람이라도 듣는 사람이 불쾌한 농담은 절대 유머가 아니다. 그러니 같잖은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우려고 하면 오히려 마이너스임을 알아야 한다.
유머 감각은 타고난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는 이런 아재(?)든 유머감각이 제로라 진지함으로 똘똘 뭉쳐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청년이든 모든 이들에게 희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유머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은 우리 모두가 최고의 스포츠 선수가 될 필요는 없지만(될 수도 없지만) 세상을 좀 더 유쾌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운동능력을 기르듯 유머 감각을 기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남을 자지러지게 웃길 코미디언이 될 수도,될 필요도 없다. 대신 우리의 팍팍한 삶을 좀더 유쾌하게 만들 유연한 사고를 기를 필요는 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웃었던 때가 언제입니까?’라는 질문에 머뭇거리게 된다면 이 책을 집어야 한다.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Culture code)>에서는 팀의 성과를 높이려면 팀원들이 ‘나는 이곳에서 안전하다’라는 느낌을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안전하다는 느낌은 내가 실패나 실수를 해도 팀원들이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걸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게 유머의 힘이 아닐까 싶다. 유머는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마크 트웨인이 괜히 ‘인류가 지닌 진짜 효과적인 무기는 단 한가지 뿐이다. 그것은 웃음이다.’라고 한 게 아니다. 우리에게는 진짜 효과적인 무기를 갈고 닦아야할 의무가 있다.
유머는 집중력과 장기기억에도 도움이 되고 유대감 형성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하니 내가 지금까지 유머를 쫓아서 달려온 게 헛짓거리를 한 것만은 아니구나를 느낀다. 내가 마블 스튜디오 작품 중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 역시 병맛 코드때문이다. 병맛과 동료애라는 강력함이 만났으니 나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 수 밖에... (가오갤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모른다...) 이렇게 유머는 나의 진정한 뿌리,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준 고마운 존재다.
존 에이커프의 <피니시>에서도 목표를 마무리하기 위해 ‘즐거움’의 요소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떤 목표를 만들고 도달하기 위해 나아갈 때 ‘너무 진지’하다. 사실 과도하게 진지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말이다. 인생은 장기전이다. 웃지 않고 누가누가 끝까지 버티나를 시합하는 게 아니다. 하하호호 웃을 수 있는 재미난 것만 찾아 하라는 게 아니라, 우리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유머의 강력한 힘을 빌릴 필요가 있다. 어렵고 지난한 과정도 유머로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험난한 육아의 과정을 함께 병맛 코드로 이겨내고 있는 나의 파트너 남편몬에게도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해야겠다. 그리고 비록 쉽지 않지만 그 힘듦 이상으로 강력한 보상을 가져다주는 귀여운 두 아이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 우리의 인생은 고통이 디폴트지만, 유머라는 강력한 무기만 있으면 나는 이 고통을 즐겁게 이겨낼 각오가 되어 있다. 나와 함께 할 든든한 이들이 곁에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