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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냥갑 Feb 13. 2017

엄마의 일

왜 집안일은 엄마의 몫이라 여겼을까

고백하건대 나는 엄마에게 못된 딸이었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는 말도 잘 들었었는데 커서부터 말을 드럽게 안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못된' 딸의 의미는 엄마 말을 듣고 안 듣고의 문제가 아니다. 엄마가 해주시는 집의 모든 일에 대해 너무나도 '당연시' 해왔던 것에 속죄하고자 한다.


- 엄마가 해준 밥에 투정 부리고 (그것도 매일 메뉴가 다르지 않은 것에 대해 투정 부렸고 심지어 어떤 메뉴로 했으면 좋겠냐고 물어보는 것조차 짜증 냈다. 그런 건 엄마가 알아서 맛있는 것 만들어줘야 하는 건 아니냐고 나도 생각하기 머리 아프다고 말이다)

- 빨래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었고 (입은 옷은 막 벗어두었었고, 옷장에 있는 깨끗한 옷들이 잘 정돈되어있는 건 당연한 줄 알았다)

- 설거지는 어쩌다가 착한 딸 행세를 하기 위한 생색을 내는 도구로 가끔 쓰였고 밥 먹고 밥그릇을 싱크대에 갖다 놓는 것 정도로 개념이 있는 척했었다.

- 밥 먹어라라는 말에 한참 후에나 갔었다(뭐가 그리 급하다고 오라는 건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더 중요했다)

- 음식물 쓰레기 처리는 끔찍이도 싫어했다. 엄마 아빠가 며칠 외출했을 때 가장 고역이었던 게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싫었다.

- 먼지를 닦는다는 건 생각해보지를 않았다. 엄마는 왜 저렇게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데 지겹지도 않을까 신기하기만 했다.

- 청소기 돌리는 소리가 싫었다. 꼭 내가 자고 있는 아침에 돌리면 짜증을 냈었다.

- 냉장고에 썩어가는 음식이 있으면 엄청 잔소리를 했다. 음식 관리를 못한다며 아까울 줄 모른다고 시집살이하듯 엄마를 탓했다.


그러다가 6년 전 혼자 살게 되었다. 내가 살아가는데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그제야 직시하게 되었다. 엄마가 했던 일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도 그때 되어서야 알았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내 행동에 충격을 받았다. 나는 엄마를 거의 가정부 취급을 해왔던 것이다.


스페인에서 어린아이들에게도 집안일을 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한다는 기사를 보고 놀랐다. 하지만 동시에 반드시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등학생 때 시험기간인데 집안일을 내가 왜 해야 해? 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티비에 나오는 다른 집들은 시험기간은 물론 고3 기간에는 아예 상전 모시듯 한다는데 왜 우리 집은 그러지 않는지 불만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고3이라고 상전 모시듯 한 게 잘못된 것이었다. 무슨 시험을 앞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집안에서 밥 먹고 나서 치우고 청소하는 데에 면제 대상이 될 이유는 없다. 누구는 먹기만 하고 누구는 차리기만 하는 그런 관계가 가족 내에서 생겨서는 안 되었었다. 그게 차리는 사람이 너무나도 즐거워 자진해서 하는 일이더라도 다른 한쪽에게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감사함에 무뎌지기 때문이다.


나는 감사함을 모르고 살아왔던 것이다. 당연한 줄 안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항상 해주기만 하는 쪽에게 어떤 때에는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독립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고 해도 이게 끝은 아니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만들어가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남편도 나의 이런 생각들에 동의하고 함께 노력해나가야 할 부분이 있고 아직 7개월밖에 안된 딸아이가 앞으로 커나가면서 배우게 될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그 감사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완벽히 잘하고 있다는 게 아니다. 나는 우리 엄마처럼 묵묵히 그 많은 집안일들을 혼자 할 엄두가 안 났고, 집안일을 함께 하지 않는 가족에게 뭐라고 불만을 토로하지도 않은 엄마처럼 행동하지 못할 뿐이다. 엄마는 어떻게 그 많은 것을 감내했을까. 내가 왜 이것들을 다 해야 하냐. 너네는 먹기만 하냐. 나는 왜 치우기만 하냐. 이런 말들을 왜 안 하셨을까. 가정주부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엄마니까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꾹꾹 눌러 담으셨던 걸까.


매일매일 해도 표가 안나는 집안일들, 맛있게 만들면 평균이고 맛없는 끼니가 되면 전전긍긍하게 되는 상 차리기, 재정낭비를 하지 않으면서 영양가 있는 식단을 만들기 위해 매일 정리하며 뒤적이는 냉장고, 아이가 자라면서 신경 쓸게 한두 가지가 아니니 멘붕 하지 않기 위해 미리미리 정보를 수집하며 공부하는 것, 그 무엇 하나 놓치거나 손 놓게 되면 게으른 주부로 낙인찍히는 거 같아 마음 놓고 보이컷 하지도 못하는 나. 엄마도 나와 같았을까. 이런 고민을 엄마는 아빠와 나눴을까. 아니면 혼자 떠안았을까.


왜 집안일을 하면 엄마를 '도운' 것이 될까. 그건 처음부터 집안일은 엄마만의 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래 내 일이고 해야 할 일인데 돕는다고는 하지 않는다. 집안일은 구성원 모두가 책임이 있다는 걸 왜 나는 독립하고 나서야 알았을까. 그리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도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어떻게 하면 마음 상하지 않게 부탁할까. 어떻게 하면 내가 번 아웃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어차피 해야 할 일인 집안일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 역시 나에게는 마음이 편치 않다. 왜냐하면 '시키는' 것과 같은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모두의 책임이 있다면 누가 시키고 누구는 부탁받고 하는 그런 관계가 없지 않을까. 우리 딸아이와는 이런 얘기를 어릴 때부터 건강한 방법으로 해나가고 싶다. 무슨 중요한 일이 있다고 설거지를 안 해도 되거나 입은 옷을 아무 데나 벗어놔도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걸 알게끔 해주고 싶다.


아니 사실은 어린 나에게 돌아가 말해주고 싶었다. 너무나 당연시했던 엄마의 일들에 감사함을 느끼라고. 네가 누리고 있는 건 당연한 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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