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 Wi-Fi 잘 되던데! 왜?
배낭을 둘러매고[B- ]
배낭을 둘러 매고 [B- ]
"무엇을 얻고 무엇을 기억하는지, 시린 봄이 오니 어찌 하오리"
또 봄을 기다리느냐? 응 ?
봄비에 젖은 내 입술
풀잎 바람 되어
봄비 맞은 대지의 풀 바람
흙내음이 Wi-Fi 타고 봄 향기 불어온다.
덜 익어 시린 봄
풀잎 바람이 어깨에 걸쳐
시인의 창으로 들이민다
풀잎 향기 가득 투명한 눈물 흐른다
비바람에 시린 설움 '풀이 눕는다’
작가는 시린 시를 남기고 예기치 못한 곳에서 세상을 등졌다.
그는 휘어진 봄바람 아쉬워 떠났다.
그리움에 지쳐 풀잎은 멍이 들었다
100년을 기다려 쌓고 또 쌓은 봄
민초들의 시름이 가시지 않았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100년을 넘나들어 풀잎에 기대어 본다
서울 도봉구에 자리 잡은 김수영 시인의 문학관을 찾아봤다.
애초 시대적 배경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은 일제의 강점기 1920년 “전후” 정점으로 치닫는 일제의 말살 정치가 통제하던 시기였다.
아울러 독재와 부패의 4.19를 거쳐 근대 중심에 들어선 시인 김수영 그는 절규했다.
민 초들은 자유를 갈망하며 어떠한 외침도 없이 삶에 비애를 안고 살아왔다.
시인 김수영은 시니시즘, 모더니즘에서 리얼리즘, 한 세기를 넘나드는 저항시인으로 알려졌다.
필자는 감히 이렇게 정의 하고싶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천재적인 시인으로 평가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
필자는 시인 김수영 님을 Wi-Fi로 잡아봤다. 그리도 너무 먼 곳이기에 다소 시간이 걸렸다.
시인 김수영은 ‘극한’ 인간의 고뇌와 번뇌의 숨 가쁜 민 초들의 사연을 봄바람이 애써 전해 주었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이 시대를 되짚어보는 시라고 설명해줬다.
그러면서 김수영 시인은 신영복 친구가 생겼다. 그러므로 '신영복 교수는 살아있다!'
이 땅에 그 많던 지식인은 다 어디로 가고 안 보인다고 했더니?
다 죽었다고 전해라….
김수영 시인은 ‘풀이 눕는다’ 신영복 교수는 “더불어 숲” 풀과 숲이라 음~ 뭔가 잘 어울리는 퓨전이 아닐 수 없다.
좌 어머니,여동생,김수영 시인
이내 Wi-Fi는 끊어졌다.
시인 김수영은 176여 편의 시와 구구절절한 사연을 남겼다.
시인은 "풀이 눕는다…" 한 편의 시를 던지고 생을 마감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시인의 프롤로그를 살펴보면, 1968년 유신체제에 반정부 시위가 절정일 때 지어진 유고 시로써 시단에서 해석하는 바람과 풀의 관계는 권력과 민중의 소리를 담아낸 민중 시로 풀이했고, 풀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이해하고 있다.
끝 연에서 발목과 발밑까지 풀이 일어나고 웃는 모습에서 결코, 스러지지 않는 민중의 저항성을 의미론적으로 서술코자 했다는 것이 평론가들의 해석이다.
김수영은 1921년 11월 서울 종로 북한산 자락에서 아버지 김태욱 어머니 안형숙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수영은 박인환 등과 함께 모더니스트로 주목받았다.
시를 살펴보면 거칠고 힘찬 시조가 자기반성 사회 현실에 대한 맹렬한 비판을 통해 현실참여와 사회정의를 부르짖었던 김수영, 하지만 그의 시는 삶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글 쓰는 이는 김수영 시인은 박인환을 격멸한 사람으로 또는 강력한 라이벌로 전해졌다.
박인환 시인의 대표작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목마와 숙녀” 와 얼굴 또한 탤런트처럼 잘생겼다.
또 박인환 시인이 앞선 시가 한둘이 아니었다고 한다.
당연히 맞수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수영은 누구인가?
김수영은 1968년 6월 15일 가까운 문인들과 술을 마신 뒤, 집 근처에서 인도로 돌진한 버스에 치인다.
시인 김수영은 48세의 나이에 민중의 저항시 '풀이 눕는다' 끝으로 세상을 뒤로한 채 풀에 영원히 누워버렸다.
그의 인생은 한편의 역동적인 드라마로, 온몸으로 만든 시에 영혼을 담아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잠시 멈춰 섰다. 뒤집어 보는 의미는 뭘까!'
20세기 후반 '한국 근대 현대 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1960년대 김수영 없었다면 70년대 김지하 시인, 80년대 신경림의 민중 시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김수영은 1950년대 30세 때 부인 김현경을 만나 (서울 여정을 나와) 결혼했다.
시인 김수영은 시를 쓸 때 종이상자를 찢어 뒤에 시를 써서 부인 김현경에게 맡기면 원고지에 옮기는 일을 부인이 도맡아 했다고 한다.
한편, 부인 김현경은 여든의 나이로 얼마 전 자신의 자작시를 펴내며, 경기도 용인시에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K대 연구결과 김수영 시인이 남긴 시 176편에 쓰인 어휘 5,220개를 분석한 결과 부정적인 부분이 70%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는 김수영 시 분석에 들어갔다.
이는 중세 유럽과 미국의 철학적 문학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적 배경을 비춰볼 때 한국의 서정적이고, 수평적인 시가 서양을 능가하는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 또한 김수영 시인의 큰 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2월 13일(토) 오후 봄비 쏟아내리는 서울 명동 성당길 걷다가 거기서 거기 도봉구 방학동에 자리 잡은 김수영 문학관에 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