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일본이 보이는 ‘위안부’ 보상과 정치적인 현상 6-3
전후 일본의 정치의 모든 것은 1990년도부터 시작되었다. 지금의 아시아를 둘러싼 일본의 정치는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는 양상을 띠고 있고 있었다.
그리고 국제정치 상황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중국의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정책을 펴며,’ 한층 격화되는 내셔널리즘 항쟁, 우경화되고 보수화 되는 일본 내의 논조, 그 속에 열쇠가 되는 여성의 위치.... “내셔널리즘과 젠더”그리고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를 수십 년 동안 풀지 않은 채로 지나온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전후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논의가 있었다.
'거기에 몇 가지 패러다임이 있다. 특히 ‘제2차 대전 세계대전’ 이전과 이후의 단절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후 개혁을 과대평가한다'는 특징이 있다.
모든 부정적인 것을 과거 탓으로 돌린다는
점에서 ‘억압에서 해방으로’의 발전 사관이라고 볼 수 있다. 전후 단일 민족론이 각각 민족 전통이라고 이름 아래 정당화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콜럼버스 달걀과 같은 발견을 한 것이다.
따라서 역사학 역시 다른 사회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범부의 정치성을 둘러싼 담론 투쟁의 장이다. 푸코가 이야기하는 담론의 ’ 정치’는 계급투쟁 같은 대문자 정치가 아니라 푸코가 이야기하는 담론 범주의 담론 범주와 기술 속에 소문자 정치를 의미한다.
일본 민족이 본래 다른 민족을 화합하는데 뛰어나다고 주장했다. 전후에는 이것이 180도 바뀌어서, ‘만세 일기’ 걸쳐 단일 민족이 유지되었다고 세계 역사를 날조 유조 하였다. 그리고 전후 일본인들은 반세기 전의 과거를 잊은 듯 일본인의 초역사적인 동질성과 집단 지향을 치켜세우기에 이른다.
지배적 이였던 견해를, ‘야마노우치 야스시’는 파시즘 시기를 평가를 둘러싸고 ‘지금까지 일본 현대사의 관한, 파시즘 시대 일본의 역사는 근대사회가 걸어야 할 본래의 성숙 과정에서 벗어나 비정상적인 과정을 거쳤다.
다이쇼(1912~1926)에 진전된 민주화 시대의 파시즘 시대에 이르러 좌절했으며, 이를 대신해 비합리적인 초국가를 이데 오르기로 버팀대로 삼은 강권적 체계가 국민을 일탈 전시 동원하는 궤도로 강제로 몰고 간 것이다.
일본은 1945년 패전과 함께 시작된 전후 개혁은 일본 역사를 ‘다이쇼 데모크라시’ 노선으로 복구시켰다. 1945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역사는 이 전후 개혁을 기점으로 삼고 있다.
근대화의 행위자는 시민사회만이 아니다. 국민국가도 근대화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국민국가는 통합을 위한 여러 가지 장치’뿐 아니라 ‘강력한 이데 오르기’도 공급하고 있다.
‘앤더슨’의 국민국가는 균질적인 ‘국민’ 창출을 통해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내며 그렇게 만들어진 집단 정체성은 문화나 민족 개념의 핵심이 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국가를 젠더 화하는 cngendering the nation-state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으로 여겨졌던 젠더 역시 역사의 변동 속에서 탈자 연화되었다.
젠더의 발견은 가족이라는 '또 하나의 사회’를 발견 하수 있도록 함으로써 공적 세계로부터 ‘신성한 보호구역’이라는 사회적 영역의 신화를 부수고, 가족이 국가나 시장으로부터 조금도 자율적이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프랑스 혁명의 인권선언 시민에는, 여성이 역사의 객체가 아닌 주체라는 ‘페미니즘의’ 패러다임 전환은 여성이 단지 전쟁 피해자가 아닌 능동적인 가해자 이었던 인식을 불러왔다.
여성의 징용에 관해서도 ‘이치 가와’는 정부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1943년 10월 당시 수상이었던 도조‘가 의회에서 “여성 징용은 일본 가족 제도를 파괴시키므로 현시점에서는 실시하지 않는다고 발언에 대해서 비판했다.
일본은 끊임없이... 국가 입장에서 생산력을 늘리는데 여성근로자가 불가피하다고 판단된다면 조금도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게 일본의 속성이다.
(...) 부인 근로에 정부 스스로 확실한 부인 근로 관을 가졌으면 했다. (...) 현재 이런 단계에 이르러 정부를 비롯한 사회 각층의 거의 모든 남성들이 부인에 대한 사고방식이 여전히 봉건사상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유감스럽고 답답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치가와’ 동지였던 ‘야마 다카 시게리’는 주저할 것이 없이 여성을 징용할 것을 더욱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다.
[참고문헌:‘위안부’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다시 쓰는 <내셔널 저널리즘과 젠더> <우에노 지즈코, 이성희 현실 문학, 휴머니스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