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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군‘위안부’ 발생원인과 배경,2

그것은 이렇습니다 [6-2]

by 임진수

‘위안부’ 발생원인과 배경 6-2

세계 2차 대전을 기점으로 일본군은 조선을 1920년 강제 점령했다. 아시아 피해 국가들은 한국,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이 있다.


일본은 전쟁을 일으켜 온갖 만행을 저질러 약탈하고 아녀자를 겁탈하는 등 성인 남성은 전쟁터로 징용해 죽임을 당했다. 나라 잃은 서러움으로 조선의 아녀자들은 일본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이른바 조선인 ‘위안부’로 전락하여, 극한의 환경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당한 채 몸을 맡겨야만 했다.

또한, 사랑하는 가족들은 생사도 모르고... 혹한의 강추위에 만주로, 시베리아 벌판에서 옷도 먹을 것도 없이 수많은 일본군에 의해 자신의 의지와 달리 몸을 강탈당한 조선의 ’ 위안부’ 실상의 한 단면으로 일본군의 하녀가 되어 이리저리 전쟁터로 끌려 갔다.


그러면서 병들어 죽임을 당하고, 남자는 노역에 강제 동원되어 그나마 벌어들인 돈은 “일본의 미스비시”회사가 챙겨가는 악랄하고 흉악한 참상을 보인 일본의 만행은 계속되었다.


이렇듯 일본군은 도를 지나친 행위로 ‘동물적 욕정’ 남자는 그것을 참지 못한다. 일본군 병사들의 공격이 여성들의 성을 향한 것은 그것이 “적”인 남성에 대한 가장 상징적인 모욕이며, 자기 힘과 과시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심리전을 통하여 전쟁터에서의 군인들을 조정하며 훈련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국 남성에게 격렬한 분노를 불러일으켜 전시효과를 거둔다. 일종에 전시 전략 심리전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그것을 정당화시키려 더욱더 가해를 면책시킨다. 또, 중국이나 필리핀에서 여성 또한 우리와 같은 처지였지만, 상대적으로 ‘조선의 ’ 위안부‘여성은 일본하고 거리상 가까워 피해가 컸음을 알 수 있다.

‘위안부’들의 참상

조선의 여성들은 일본에 의해 36년 동안 온갖 약탈과 성을 먹이 사슬로 이용했고, 온몸을 피투성이가 되어 아픔에 병이 들고 성은 짓밟혀 몸부림치며 울부짖었다.


일본에 의해 저질러진 전후 ‘위안부’ 여성들은 그늘진 곳에서 어떤 한 몸부림도 외침도 없이 삶을 살아야만 했다.


부도덕한 일본은 한국의 ‘위안부’ 여성들의 절규를 외면한 채 OECD 세계경제 대국임을 자임하고 있다. 보상은커녕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변명에 급급하고 적반하장 격으로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삼중의 범죄를 자행하고 있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침묵을 강요하고 돈에 연관시켜 묵살해 왔었다. 여성운동가들의 끊임없는 투쟁해 일본 정부에 ‘정신대’ 문제를 공론화시켰지만 일본은 ‘민간업자’가 한 일이라며 발뺌을 하고 있었다.


‘위안부’ 여성들은 그렇게 잔혹한 역사적 사실이 치욕으로 받아들여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조차 그런 사실을 밝히지 못한 채 기억 저편에 묻어두고 살아왔다.


“일본 남성 들은 전쟁 중에 여성들을 정신대원으로 몰아넣고, 그것을 반성하지 않은 채 이제는 돈으로 기생 여성을 농락하고 있다”고 항의했던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1937년 난징 대학살*강간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 난징 대강 간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에 앞서 중국서는 일본군 병사에 의한 강간이 번번이 일어났다. 여성이 전리품이라는 가부장제의 논리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저작권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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