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모먼트의 린 생산방식
원모먼트를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문제의식 중 하나는 소비자들이 필요할 때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꽃다발을 주문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존의 전국 꽃배달 서비스들은 전국에 가맹점을 모아 주문을 받으면 가까운 가맹점에 발주를 넣는 방식을 택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하향 평준화된 디자인을 추구해야 했습니다.
물론 3년 전 당시에도 청담동이나 논현동에 위치한 유학파 출신의 플로리스트들이 운영하는 트렌디한 꽃집들에서 주문을 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다만, 이런 오프라인 꽃집들은 주로 전화나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DM 등을 이용해서 주문을 해야 했고, 배송비는 착불, 결제는 무통장입금으로 진행해야 되는 등 주문과 배송이 상당히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소비자들이 보다 더 쉽게 주문이 가능하도록 하면서, 선물을 받는 분께 감동을 전할만큼 높은 퀄리티의 상품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플로리스트들이 직접 상품을 제작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원모먼트의 컨셉을 좋아해주는 고객들이 많이 있었고, 덕분에 원모먼트의 주문은 매년 2배 가량 늘어났습니다. 저희들의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꽃배달 업종은 특정 기념일에 주문이 몰리는 성수기가 존재합니다. 화이트 데이나 어버이날에는 평소 주문량의 5~10배 가량의 주문이 몰리게 됩니다.
천 개가 넘는 가맹점들이 주문을 지역별로 나눠가지는 형태가 아닌, 주문->제작->배송 까지 판매의 전 과정을 직접 책임져야 하는 원모먼트의 직영 체제에서는 성수기에 순간적으로 생산량을 5배 이상 늘려야 하는 생산 과제가 필연적으로 주어졌습니다. 2018년 화이트데이인 3월 14일 하루에 출고된 전체 상품의 숫자는 약 1,200개에 달했습니다.
이 생산성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다름 아닌 CS 아르바이트로 입사해 지금은 원모먼트의 운영 본부장을 맡고 있는 '박선영'님입니다.
선영님은 CS 아르바이트로 처음 입사하여 어쩌다 보니 원모먼트의 운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CS파트로 입사한 그녀는 왜 원모먼트의 생산과 운영 업무를 맡게 되었을까요?
"처음에는 대표님께서 주문량이 좀 늘어나서 CS를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아르바이트로 원모먼트에 들어왔습니다. 당시에는 회사에 오래 있을 거란 생각보다는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편하게 일을 시작했습니다. 스타트업이라는 곳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도 궁금했고, 기계적인 콜센터 근무라기 보다는 팀의 구성원으로 일한다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다만 들어와서 일을 조금 해보니 단순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할 일이 아니라 완전히 업무에 in-charge 해야 하는 수준의 일들이 쏟아졌습니다.
그렇게 서너달이 지나고, 2017년 화이트데이를 겪고 나서 일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당시에 약 500개가 조금 넘는 꽃이 출고가 되었는데, 플라워팀의 제작 속도가 출고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배송이 3-4시간씩 지연이 되었습니다. 오후 7시까지 배송되기로 약속한 상품들이 오후 10시가 넘어서 들어가는 등 지연으로 인해 배송 조회 문의와 컴플레인 전화로 업무가 완전히 마비가 될 정도의 하루를 겪었습니다.
대부분 퇴근 시간인 6-7시 전까지 꽃이 배송되기를 바라는 고객들의 주문이 3시간 이상 지연이 되면서 저희로 인해 일 년에 한번 뿐인 소중한 기념일을 망쳤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을 때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스스로에게 큰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니 단순히 상담을 통해 고객에게 만족을 주는 애프터케어(AFTER-CARE)보다, 생산이 해결되어야 시즌에도 고객들에게 약속한 상품을 정시에 배송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저희 플라워팀의 제작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회사를 전체적으로 돌아보면서 운영 업무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그녀는 어떻게 원모먼트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게 되었을까요?
2016년까지 원모먼트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상품을 디자인하고 제작했습니다. '대충 이 꽃은 1/3단을 넣는다' 같은 방식으로 레시피를 만들었습니다. 선영님은 꽃의 단위를 '송이' 와 '대'를 기준으로 완전히 세분화한 후에 전체 상품의 레시피를 원모먼트의 단위로 정리해서 다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상품의 규격을 측정이 가능한 형태로 재정의 했습니다. 꽃다발 스파이럴(포장 전 꽃만으로 다발의 형태를 만드는 작업) 헤드(head)의 크기를 가로*세로*높이의 형태로 부피감의 기준을 정한 후, 모형 틀을 제작하여 레시피대로 상품을 제작하면 거의 균일한 크기로 상품이 완성되도록 상품을 디자인하고 교육했습니다.
이렇게 하자, 꽃다발 포장지에도 규격을 정해 미리 재단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꽃다발을 만들 때마다 다발 크기에 맞춰 포장지를 다시 자르는 작업이 필요했는데, 미리 규격에 맞게 재단된 포장지를 꺼내어 바로 포장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포장 작업 시간이 엄청나게 단축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꽃집들은 대표 플로리스트 아래서 도제식으로 교육이 진행됩니다. 꽃 사입 보조라거나, 구입한 꽃을 컨디셔닝하고 정리하는 업무들을 하면서 천천히 사장님이나 실장급 플로리스트들이 작업하는 것을 보면서 업무를 익히게 됩니다.
원모먼트는 이런 방식이 아니라, 주간 별로 업무 교육 목표를 정하고 이론과 실무 교육을 병행하여 6주 가량의 교육 매뉴얼을 만들어두고 막 화훼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신입 플로리스트도 1~2달 안에 원모먼트의 품질 기준에 부합하는 상품 제작이 가능하도록 하여 업무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교육이 필요했던 또다른 이유는 플로리스트마다 배운 곳에 따라 다른 방식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는데, 꽃이라는 상품이 정량적으로 측정이 되지 않는 상품이라 '예쁜 꽃다발'에 대한 기준이 사람마다 제각각이었습니다. 원모먼트의 고객이 기대하는 퀄리티의 꽃다발이 균일하게 출고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작하는 플로리스트들에게 원모먼트만의 '품질기준'을 인식시키는 교육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했습니다.
보통의 꽃집에서는 한 명의 플로리스트가 꽃을 가져와 다듬고, 스파이럴을 만들고, 꽃다발을 포장하는 일련의 과정을 혼자서 진행합니다. 선영님은 원모먼트처럼 많은 양의 꽃다발을 제작하게 되면 제작 과정 사이사이에 동선이 늘어나고 작업의 전환 과정에서 낭비되는 시간이 많이 발생한다는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선영님은 개발팀과 상의하여 스마트폰으로 출고 시간대별로 제작해야 하는 상품리스트를 조회할 수 있는 대시보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플로리스트들의 업무를 '스파이럴'과 '포장'작업으로 분업화를 시도했습니다. 출고 시간대별로 제작해야 하는 상품 리스트를 확인한 후 한 번에 재료를 가져와서 스파이럴만 제작하는 플로리스트와 완성된 스파이럴을 인계받아 포장 작업만 하는 플로리스트로 업무는 분업화 시킨 겁니다.
이렇게 하자 매번 필요한 꽃을 가져와야 하는 시간과 스파이럴을 하나 만들고 포장지를 가져와서 포장을 하는 동선이 줄어들며 플로리스트 1인당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반드시 정규 플로리스트가 하지 않아도 비숙련 아르바이트가 가능한 작업에는 적극적으로 자동화 장비를 도입하였습니다.
이렇게 생긴 제거기로 장미 가시를 한 줄기씩 손으로 훓어 내리던 작업 방식을 버리고,
이렇게 자동화 장비를 사용해서 6명이 하루 종일 걸릴 양이던 15,000송이의 장미를 4명의 아르바이트가 4시간 만에 끝내버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2017년 화이트데이에 500여개의 상품을 출고하는데 투입된 아르바이트의 총 근로시간은 324시간, 정규직 플로리스트 7명의 총 추가 근무시간이 153시간이었으나, 2018년 화이트데이 1,200개 상품을 출고하는데 투입된 아르바이트의 총 근로 시간은 118시간, 정규직 플로리스트 6명의 총 추가 근무 시간 89시간으로 투입되는 근무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시간당 생산성 기준으로 5.5배 가량의 개선 효과를 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개선된 생산성을 기반으로 원모먼트는 2018년 하반기에 비로소 흑자 전환이 가능한 Unit Economics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영님이 이 작업을 하는데 3-4개월간 굉장한 마음 고생과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무엇이 그녀에게 잘 알지 못하는 업무에 매진하도록 했냐고 물어보니, 너무 힘들고 괴로운 순간에 대표님이 보여준 스타벅스의 업무 매뉴얼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스타벅스의 매뉴얼에는 브랜드의 미션과 정신, 업무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비전들이 모두 적혀있었습니다. 그리고 스타벅스 파트너(바리스타)에게 기대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표현되어 있는 부분들이 너무 멋있었고, 원모먼트도 그런 체계와 시스템을 갖춘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면서 힘든 과정에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이제는 2018년 빼빼로데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작은(?) 성수기에는 정시퇴근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생산예측이 가능해졌습니다.
돌이켜보니 원모먼트의 생산성이 이렇게나 큰 폭으로 개선이 되었지만, 단순히 한 두개의 프로젝트가 맞아떨어지면서 일시에 개선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작업 과정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작은 낭비를 찾아 없애고, 작업 동선을 줄이고 장시간의 근무 속에서 조금이라도 편하고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작업 테이블의 높이를 몇cm 조절하는 등의 작은 디테일들이 쌓여 5.5배의 생산성 향상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속에서 스스로가 원모먼트를 너무 소중하고 아끼게 되었다고 하는 선영님. 당장의 경력 몇 년보다 그저 지각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며, 열의에 찬 플로리스트들과 자신이 사랑하는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키워나가고 싶다는 그녀의 진정성이 원모먼트는 점점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