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은 목표가 있을 때 가능하다

한글 교실에서

by one oak

"공부하러 왔는지 떠들려고 왔는지 당최 모르겠네요. 다른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지, 원."


교실 앞줄 오른쪽에 앉아 있던 금자 어머님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마침 '받아쓰기' 10문제를 불러주고, 채점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말에 나도 뒤늦게 고개를 돌렸다.

왼편에 앉은 몇몇 어르신들의 언성이 높아져 있었다.

시끄럽다고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수다 같지는 않았다. 방금 끝낸 '받아쓰기' 정답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는 중이었다.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님들, 조금만 조용히 해 주세요. 다른 분들께 방해됩니다."

잠시 후, 교실은 '소곤소곤' 다시 잦아든 말소리로 채워졌다.

그런데 내 머릿속은 좀 복잡해졌다.


한쪽에서는 "너무 시끄러워서 수업이 안 된다"라고 하고,

또 한 쪽에서는 "공부만 하다 가면 무슨 재미로 다니냐"라며 웃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교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위기를 만드는 흐름이 둘로 나뉜다.

한쪽에는 혼자 조용히 집중하고 싶은 분들이 있고,

다른 쪽에는 어느새 짝꿍이 생기고, 앞뒤로 앉은 분들과 정이 들어 함께 깔깔대며 배우고 싶은 분들이 있다.

문제는, 그 두 부류가 은근히 '무리'를 짓는다는 점이다.

서너 명씩 성향이 비슷한 어르신들이 무리를 지어 앉고,

그 무리들 사이엔 소리 없는 견제, 심지어 질투 섞인 시선도 오간다.

갈등이 차오를 때마다 나는 난감한 처지에 놓일 때가 있다.


"집중하고 싶으셨을 텐데, 마음 불편하셨겠어요."

나는 금자 어머님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공부하러 오셨는데 시끄러우면 속상하죠. 정말 이해돼요."

잠시 어르신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래도 저는 조금 시끄러운 교실이 좋다고 생각해요. 교실이 살아 있는 느낌이 들잖아요. 서로 너무 떠들지만 않는다면요."

그리고 나는 이야기를 하나 덧붙였다.

"엄마는 아무리 시끄러운 시장판에서도 자기 아기 우는소리는 알아듣는다고 해요. 우리 뇌가 듣고 싶은 소리를 골라 들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교실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선생님 말에 집중하고 싶다면, 그 소리만 골라 들을 수 있어요."


이건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이를 '칵테일파티 효과(Cocktail-party effect)'라고 한다. 주변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나에게 중요한 소리, 예를 들어 내 이름, 내 아이의 울음소리는 또렷이 들리는 현상이다. 또 어떤 심리학 실험에서는 생후 7.5개월 된 아기조차 시끄러운 배경 속에서도 엄마의 목소리를 구별해냈다고 한다. 우리 뇌는 그런 중요한 소리에 본능적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니 수업 중 누군가의 웃음소리, 농담, 잡담에 마음이 흐트러지더라도 결국 '내가 귀 기울이고 싶은 것'만 들으면 된다.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 글자를 알고 싶다는 그 목표가 분명하다면

주변의 소음은 그냥 흘러갈 수 있다.

나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목표가 분명하면, 나머지는 다 흘러갑니다.

어쩌면 그게 우리가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일지도 몰라요."


며칠 뒤, 금자 어머님이 왼편으로 슬며시 가더니

"여기는, 공부를 너무 잘해서 떠들 새도 있는가 봐. 허허"

장난스럽게 건넨 말에 어머님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자 몇몇 어머님들이

"아이고, 수준이 다 거기서 거기지요. 다 같이 배우는 거지 뭐."

누군가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웃음이 퍼졌고, 어색하던 공기가 조금씩 풀려갔다.


나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조금 시끄러워도 괜찮다'라고 말했던 내 마음이,

조금은 그분들에게도 닿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