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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학생A Apr 21. 2023

유럽 여행 3. 런던 둘째 날 1: 낭만의 도시(?)

그냥 여느 유학생A의 그냥 여행 #3

* 이 글은 1월 13일부터 2월 5일까지 런던, 파리, 샤모니, 바르셀로나로 이어진 유럽 여행기입니다. 그날그날 작성한 일기 형식이라서 내용이 다소 두서가 없고 장황할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이 글은 [Beach House - Walk in the Park]를 들으시면서 읽으면 더욱 좋습니다.


Jan 14 AM 6:30



정말 피곤하긴 했나 보다. 10시쯤에 자서 6시에 일어났다. 다행히 푹 자고 일어나니 컨디션은 좋다.


영국에서 만끽하는 첫 (셀프메이드) 밀크 티.


호텔에서 타먹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 첫인상은... “내가 잘 못 탔나...? “


티백에 우유까지 탔는데 그냥 물 맛만 났다. 설탕 두 팩을 탔더니 그나마 좀 ‘티’ 맛이 났다.

그래도 밀크티를 마시니 뭔가 런더너가 된 느낌이랄까. 이른 아침을 차 한 잔으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하다.


호텔에서 보이는 Earl's Court 시티뷰. 나름

처음 도착했을 때는 너무 어두워서 몰랐는데, 생각보다 뷰가 아주 양호하다. 뭔가 내가 생각하던 전형적인 유럽 마을의 느낌. 아기자기하고 고풍스러운 집들이 눈에 띈다.

저 멀리 흐릿하게 더 샤드 (The Shard)도 보인다. 며칠 뒤엔 내가 저 꼭대기 전망대에 있겠지.


나름 열심히 찍어본 호텔 근처 풍경.

첫날부터 비가 온다. 역시 비단 런던뿐만 아니라 유럽의 겨울은 날씨도 꿀꿀하고 바람도 많이 분다. 뭐 걸어 다니면서 구경하는 데 지장이 있는 건 아니니까 상관없긴 하다.


1월 비행기표가 싼 이유가 있다.


날씨 문제를 제외하면, 런던의 첫인상은 꽤나 괜찮았다. 치안 어쩌고 하는 얘기들은 일단 지금까지만 보면 전혀 맞지 않는 것 같다. 거리에 사람들이 많은데 전혀 위험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길을 걸으니, 어젯밤에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마치 <해리포터>에서나 볼 법한 건물들이 그 정취를 색다르게 만들어준다. 새삼 "내가 유럽에 오긴 왔구나"하는 묘한 설렘이 느껴졌다.


Westminster Cemetery.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현지인들의 조깅 히든스팟.

오늘의 첫 행선지는 다름 아닌 '공동묘지'였다. 이름하여 Brompton Cemetery.


'엥?' 싶을 수 있다. 나 역시 사진을 찍고 구경하는 게 꺼림칙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의 중심에 나있는 큰길을 걷다 보면, 현지인들이 운동복을 입고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사실 서양권, 특히 유럽에서는 주택가에 위치한 공동묘지(와 그 옆에 있는 교회 혹은 성당)가 매우 흔하다. 일부는 마치 공원처럼 잘 조성되어 현지인들이 애용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 한국의 공동묘지에 대한 인식은 다소 으스스하거나 스산한 느낌이 짙지 않은가. 각종 괴담 및 공포체험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보니, 호텔 옆에 있던 이 공동묘지도 왠지 그런 고정관념 속 이미지일 것만 같았다. 잎사귀 하나 없는 나무들도 한몫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내 옆으로 남녀 두 분이 조깅을 하면서 지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긴장이 탁 풀렸다. 내게는 생경하고 두려웠던 공간이 이들에겐 그저 일상의 일부분이었던 것이다.


생각이 바뀌니 행동이 더욱 자연스러워졌다. 이후 공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공원의 곳곳에는 각 묘비들의 의미들을 설명해 놓은 안내판들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묫자리에 부서진 기둥이 있다면 그 묘지의 주인은 가장 찬란한 시기에 생을 달리 한 경우를 뜻한다.



20파운드, 한화로 약 32,000원이다.

다음 행선지인 하이드 파크로 가는 길에 TESCO에 들러 심카드를 샀다. 사실 여행 전에 살 수도 있었지만, 현지에 가서 유심을 사는 것도 나름 괜찮다.


3주간 20GB, 가격은 20파운드, 한화로 약 32,000원이다. 근데 영국에서 산 유심은 영국에서만 쓰는 것이 아니라 EU에 가입된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용 가능하다. 덕분에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도 잘 사용했다.


런던에 문을 연 파리바게트. 과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켄싱턴 어딘가로 기억하는데, 길을 걷다가 발견한 파리바게트. 맛이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들어가서 먹어보진 않았다. 과연 영국인들에게도 한국의 빵이 통할까...?



하이드 파크 (Hyde Park)


 

하이드 파크. 유명세에 맞게 그 규모가 엄청났다.

오늘의 첫 행선지인 하이드 파크 (Hyde Park).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그런지 한산했지만 그래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다소 우울할 수 있는 흐린 날씨인데도,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다. 자전거를 타며 해맑게 웃고 있는 사람들, 잔디밭에서 축구를 하던 사람들, 열심히 조깅을 하던 사람들 모두 도시의 삭막함 없이 여유로움이 가득했다.


그들의 표정은 도시 안에 큰 공원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환기시켜 줬다. 사실 우리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도시공원'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다. 한국에선, 2020년 도시공원 일몰제 해제 이후 축구장 5만 개에 달하는 면적의 땅이 도시공원 등록에서 해제되었다. 그만큼 '공유재'로서의 공원은 우리나라에서 그 존재감마저 희미하다.


하지만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설계한 조경사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는 현대 뉴욕의 설계자인 로버트 모지스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에는 이만한 크기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다.


빠르게 흐르는 현대 사회의 흐름 속에서 공원은 우리가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이다. 하이드 파크에서 마주친 많은 사람들 역시 현대 사회의 정신없는 삶에서 잠시 벗어나 숨을 돌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한국 사회가 이렇게 삭막하고 여유롭지 못하다고 느끼는 건, 우리가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삶에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로얄 엘버트 홀을 지나가는 길과 그 앞에 위치한 앨버트 메모리얼 (The Albert Memorial)

하이드 파크를 여유롭게 거닐다 갑작스레 만난 비. 어쩐지 날씨가 오락가락하더니만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다. 우산을 챙겨 오지 않은 나는 (외국에서는 비가 와도 우산을 딱히 쓰지 않는다) 공원 근처에 있는 로열 앨버트 홀 처마에서 몸을 피했다.


사실 클래식 음악에는 조예가 깊지 않아 큰 감흥은 없었지만, 나름 유명한 콘서트 홀인 것 같다. 나는 아델의 라이브 앨범인 [Live at the Royal Albert Hall]로서 조금은 익숙한 공간.


하지만 어차피 비를 피하러 온 곳이니 비가 그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지.



웰링턴 아치 (The Wellington Arch)와 그 뒤로 나있는 긴 산책로.

하이드 파크 코너 게이트를 벗어나니 보이는 웰링턴 아치(The Wellington Arch).


사실 그 주변으로 여러 전쟁 기념비들과 추모비들, 수많은 동상들이 세워져 있다. 하나하나 다 설명하자면 이 글이 너무나도 길어질 테니 패스. 요약하자면 제 1,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당한 여러 나라의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조형물들이다.


웰링턴 아치 뒤편으로 나있는 긴 직선도로. 확실히 런던은 산책로 내지는 공원 조성이 너무나 잘 되어있다. 심지어 이 도로 양 옆으로도 그린 파크 (Green Park)와 버킹엄 궁 정원 (Buckingham Palace Garden)이 조성되어 있었다. 전술한 이유로, 잘 조성된 공원들이 내심 부럽다.



버킹엄 궁전 (The Buckingham Palace)



버킹엄 궁전과 빅토리아 메모리얼.

긴 도로를 걷다 보니 나온 오늘의 두 번째 행선지, 버킹엄 궁전과 빅토리아 메모리얼.


뉴스나 책에서나 보던 버킹엄 궁전이 실제로 내 눈앞에 펼쳐지니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진짜 이걸 내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의미로) 꿈만 같았다. 하이드 파크에서 느꼈던 편안함과 여유로움과는 사뭇 다른, 유럽 특유의 웅장함과 화려함이 돋보였다.


나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불리던 대영제국의 왕실이 지내는 관저를 두 눈으로 마주하는 이 순간이 너무 좋았다. 진정한 유럽 여행의 첫 포문을 여는 느낌이랄까.


그 앞에 있던 빅토리아 메모리얼 역시 화려했다. 최고의 국력을 자랑하던 빅토리아 시대 (Victoria Era)를 이끈 여왕을 기리는 초대형 분수 (물론 겨울이라 분수가 작동하지는 않았다). 이 화려한 금빛 대리석 조형물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영국 사람들에게는 빅토리아 여왕이 화려했던 영국의 최전성기를 이끈 수장이겠지만, 달리 말하면 그녀는 여러 나라들을 식민지화하여 희생을 강요한 제국주의의 최선봉장이기도 했다. 영국의 최대 식민지였던 인도를 비롯한 여러 나라를 착취하여 이익을 쥐어짰던 여왕을 기념하는 조형물을, 식민지에서 온 관광객이 구경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 풍경이 묘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사진을 찍고 있던 내 앞에서 인도에서 온 관광객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 풍경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아이러니를 체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특수한 역사성을 지닌 한국의 국민이기 때문에 더 한 것도 있겠다.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역사적 감정은 (정치적 손익관계를 차치하고) 좋을 수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보니, 이런 풍경을 보면 다소 묘해진다.



이 곳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많아 소지품 분실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안전했다. 우선 여왕이 사는 곳이라 그런지 경찰들이 상시 대기를 하고 있어 안전한 느낌이 들었다. 소매치기도 아예 안보였고, 강매꾼들도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 하지만 긴장을 늦추진 않는다.


근엄하게 동상처럼 버킹엄 궁전 주위를 지키는 근위병. 버킹엄 궁전과 마찬가지로, 사진으로만 보던 근위병을 두 눈으로 보니 오히려 (좋은 의미로!) 비현실적이었다.


그리고 근위병이 지나가는 길을 막는 사람에게 외치는 불호령, 'Make way for the Queen's Guard!'를 실제로 들었다. 물론 그 분이 고의로 길을 막은 건 아니었고, 사람이 많아 우왕좌왕하다 얼떨결에 근위병들이 지나는 길에 서있던 것이었다. 만약 고의로 (혹은 장난으로) 근위병을 만지거나 길을 막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제발 그러지 말자. 저들도 사람이고, 현역 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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