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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영 Jun 17. 2016

디어 마이 프렌즈

관계 맺기: 성장을 위한 신의 선물

내 인생의 모든 선택들이 엄마 때문이라는 생각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유치한 형태로 번져갔다. 아주 미세한 스크래치에도 대형사고라도 난 것 마냥 유난스러운 감정 변화를 보였고, 농담을 빙자한 말투엔 더 큰 스크래치를 내고야 말겠다는 날이 서 있었다. 방학인데도 왜 학교에 가느냐며 아무 뜻 없이, 아니 어쩌면 방학인데도 고생이 많다는 위로가 숨겨져 있을지 모를 엄마의 물음에 나는 왜 그토록 비뚤어지고 싶었을까. 방학이어도 마음이 무거우니까 그렇지, 다음 학기에 졸업 시험도 있고, 아직 구체적인 논문 주제도 없고, 라며 투덜거리는 대답 사이로 나도 모르게 자꾸 한숨이 새어 나왔다. 엄마가 공부했던 시절과 지금이 어디 같아? 내가 누구 때문에 공부하는 건데? 하며 따져 묻고 싶은 마음도 어딘가에 못난 모습을 하고 묻어 있었을 것이다.


단단히 꼬여 풀리지 않은 감정의 응어리는 이렇게 일상적인 대화조차 무겁게 만들었다. 결국 입 밖으로 터뜨려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해 보는 데 까지 하다가 안되면 뭐 그만두는 거지, 뭐. 하고 대답했더니 지금까지 고생한 거 아까워서 어떻게 그만두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언제 그만두어도 미련이 생기지 않을 만큼 후회 없이 시간을 보내자 다짐했는데, 왜 그 물음에 또다시 못난 말을 내뱉고 싶어 입술이 옴짝달싹 했던가. 아니, 그저 순간의 마음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기어이 한 마디 거들고 나서야 사태 파악이 되는 이 미련함은 언제쯤 철이 들는지. 내가 그만두면 엄마가 더 아쉬울 테지, 하는 마음의 소리는 결국 수화기 너머로 비명처럼 흘러들어 갔다.



'노희경'이라는 작가에 대한 별다른 배경지식이 없는 내게 이 드라마는 그저 노인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나이 든다는 것과 성장하는 것은 서로 별개의 문제라고 치부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아마도 나는 다를 것이라는, 그래서 나이 듦에 비례하도록 성장하고 성숙해지리라는 기대를 했었는가 보다. 그러나 그때는 보이지 않던 인생의 무게가 어느 순간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나이가 든다'는 것을 머리와 마음으로 실감하는 나이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저 내 한 몸 건사하며 오롯이 홀로 우뚝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무게를 충분히 버티고 있는 훌륭한 '어른'이라는 것을.


나는 아직도 많은 순간 엄마를 찾는다. 부끄럽게도 문득 열무김치가 먹고 싶어 만드는 방법이 궁금해질 때나 한국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을 때처럼 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찾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양심은 얄팍하게나마 있어 가끔 너무 내 필요에 의해서만 찾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민망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무 용건 없이 전화를 걸어 괜스레 안부를 묻고는, 엄마의 대답이 길어지기 전에 쓸데없는 나의 근황들을 쏟아내기에 더 열을 올리지만 말이다.   


나는 엄마를 너무도 사랑하지만 제발 나랑은 상관없이 혼자 알아서 행복해 주었으면 좋겠다.


드라마 속 고현정의 내레이션에 나도 모르게 뜨끔하는 것을 보니, 나 역시도 우리 엄마가 제발 나랑은 상관없이 행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품었던 것 같다. 내가 아닌 누군가를 그토록 사랑하면서도, 그 사람의 행복을 간절히 빌면서도, 그 행복에 나의 노력과 시간은 보태지지 않기를 바라는 이런 이기적인 마음을 무어라 변명할 수 있을까. 아마도 아직 내 마음은 충분히 영글지 않아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방 한 칸 내어줄 여유가 없는가 싶다가도,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그러나 결코 엄마만큼 내 인생에서 중요해질 수 없는 숱한 관계들을 떠올리며 무언가를 단단히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서른다섯을 먹고도 여전히 홀로서기가 힘들다며 고작해야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비슷한 길을 걷는 친구 한 명 겨우 품을까 말까 한 내가, 이 좁은 마음을 가지고 감히 엄마를 품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엄마는 언제부터 그렇게 홀로 설 수 있었을까. 엄마가 홀로 진 당신만의 인생 무게에 남편이며, 자식까지 주렁주렁 얹어져 걷는 걸음에 위로가 될만한 그 무엇이 존재하기는 할까. <디어 마이 프렌즈> 드라마 속 수많은 등장인물의 얽히고설킨 관계 너머로 결국 자기만의 숙제를 풀어나가듯 그렇게 내게도 엄마와의 관계가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다. 문득 당장이라도 달려가 온 세월을 견딘 엄마의 작은 어깨를 뒤에서 말없이 꼭 끌어안고 싶어 지는 날이다.


2016년 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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