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드러머 Dec 25. 2021

상상의 시간

여자는 남자에게 남자는 여자에게 환상을 갖기 마련이다. 특히 얼굴을 모른 상태에서 상대방의 글만 봤거나 목소리만 들었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어렸을 때 라디오는 환상의 세계 그 자체였다. 특히 목소리가 예쁜 여자 DJ는 그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녹여주고도 남았다. 목소리가 예쁜 여자 DJ는 어떻게 생겼을까? 음악이 나간 스튜디오에서는 뭘 할까? 등등을 생각하면서 그 환상은 더욱 커져만 갔다. 요즘엔 그런 환상은 없다.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고 싶다면,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바로 나온다. 아예 보이는 라디오가 성행 중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자료와 문자와 메일을 주고받고 통화한다. 자료에서는 그 사람이 어떤지 제대로 알아내기는 힘들다. 하지만 문자와 메일과 전화통화로 상대가 누구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오랫동안 글을 쓰고 많은 사람의 글을 보다보니 글만 보고도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짐작하는 능력이 생겼다. 목소리에서도 많은 정보가 들어가 있다. 목소리가 또박또박한지 그렇지 않은지, 발음이 정확한지 부정확한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간결하고 정확한지 등에 따라 상대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굳이 그러한 이미지를 그리려고 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이미지가 그려진다. 인간은 태초부터 사람에 대해 경계하고 짝짓기를 하기 위해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려고 하는 게 DNA에 새겨져 있는 것 같다. 꽤 괜찮은 통화를 하고 나면, 상대가 잘 차려입은 오피스룩을 입고 있으며 몇 개의 외국어도 할 줄 알고, 그리고 영화나 음악도 꽤 좋아하는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게 된다. 그리고 그(녀)와 미팅할 때는 괜히 설레고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는 내가 상상한 이미지와 얼마나 맞는지 본다. 대부분 그 환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특히 여자의 경우에는 그렇다. 여자의 경우 문자와 통화 등 간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직접적인 대면보다 나을 때가 많고 남자의 경우에는 그 반대가 많다. 이는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경험이다. 요즘에는 미팅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면 상대의 프로필을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외모뿐만 아니라 취미와 좋아하는 것까지 대충 수 있다.


IT기술의 발전으로 상대의 실체를 보다 빨리 확인해서 좋기는 한데 상대에 대해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시간이 짧아지는 건 조금 아쉽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놀로그의 반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