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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드러머 Jan 05. 2022

자존심 건 일

2년 전 봄의 일이다. 잘 아는 A사 대표가 거의 숨넘어갈 듯 나에게 연락해왔다. 정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프로젝트 중 팸플릿 만드는 일을 도와달라는 것이다. 유명 작가 다섯 명한테 이미 거절당한 뒤라 시급하게 됐다며 꼭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선뜻 맡기에는 어려운 과제인 거 같아 확답을 미뤘다. 며칠 뒤 외할머니 장례식장에 있을 때 A사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다. 시간이 촉박하니 빨리 확답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하겠다고 대답했다. 장례식이 끝나면 휴일, 주말 다 반납하면 기간 내에 일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A사 대표와 평소 친분도 있고 알바도 필요해 하기로 했다.

내가 맡은 일은 16면짜리 팸플릿에 들어갈 내용을 작성하는 일이다. 단순 정보만 담으면 재미없으니 재밌게 스토리텔링하는 게 과제의 주 내용이다. 관련 지식도 풍부해야 하고, 글도 쓸 줄 알아야 하는 일이다. 자료를 몇 번이고 읽고 이해하면서 시즌 개막한 프로야구와 연관 지어 스토리텔링을 해나갔다. 다행히 원청에서도 좋아했고 A사 대표도 흡족해했다. 팸플릿 원고는 일반 글쓰기하고 다르다. 팸플릿 원고 작성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공공기관에서 숱하게 경험했다. 뒤집어지고 다시 원위치 또 뒤집어지기를 몇 차례 해야 겨우 끝낼 수 있는 일이다.

휴일을 반납하고 저녁 약속도 취소해가면서 원고를 작성했다. 4차례 수정이 있었다. 이런 고생을 감당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돈이다. 외할머니 모시고 서울로 올라 오는 길에 아버지 어머니는 나에게 "우리 집안이 장수 집안이라 네가 고생하겠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했다. 부모님 용돈은 얼마든지 내가 알바해서 드리면 된다. 들어온 알바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둘째, A사 대표의 나에 대한 신뢰다. A사 대표는 일 년 전에도 나에게 급하게 원고를 부탁했었고, 나는 두 명의 기자가 하지 못한 일을 잘 해줘 넘겨준 적이 있었다. A사 대표가 그것을 기억했는지 이번에 또다시 나에게 급한 일을 부탁한 것이다. 나를 믿고 도와달라는데 모른 채 할 수 없었다.

생고생해서 일은 마무리 졌다. A사 대표도 좋아했고 원청 직원도 맘에 들어 했다. 하지만 결국 엎어졌다. 그 당시에 발생한 정치적인 문제 때문이다. 고생해서 만든 건 물거품이 됐다. 글이 좋아서 다음에 활용하자고 하는데 그건 다음 문제다. A사는 급하게 다른 걸로 수정해서 팸플릿 제작을 끝냈다. 남은 문제는 내 보수다. 내가 맡은 일이 원청 기관의 사정상 드롭이 됐지만 내가 만든 것은 다음에 활용하기로 했다면서, 이번에 대금 반을 받거나 다음에 할 때 전부를 받는 것 중에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안 받겠다고 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이번에 드롭된 일을 다음에 잘 살려서 하겠다는 것은 결국 이번 일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됐다는 의미다. 다음에 일을 하게 되면 그건 이번 일과는 또 다른 일일뿐이다. 지금 했으니 다음에 지금 한 노력을 빼고 해도 되는 게 아니라, 그때는 또 전혀 새로운 일일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한 번에 해당하는 비용을 받고 일을 두 번 하는 셈이 된다. 반을 받는 것 또한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난 반만 일한 게 아니라 온전히 전부를 일했다. 반만 받을 이유가 없다. 결국 난 멋져 보였는지는 몰라도 돈 한 푼 받지 못했다.

2년 전과 비슷한 일이 이번에 또 생겼다. 나에게 말했던 것도 지켜지지 않았고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말이 앞서거나 약속이 깨지면 신뢰는 조금씩 금이 가게 마련이다. 비즈니스에서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자존심도 중요하다. 상대가 대우하는 것을 보고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름해 볼 수 있다.     

2년 전에는 내 자존심이 먼저였다. 그래서 돈보다는 내 자존심을 먼저 지켰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무조건 내 자존심만 내세우기에는 내가 가진 게 없다. 그렇다고 지켜지지 않은 약속을 그냥 받아들이기도 힘들다. 애엄마한테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말했지만 그냥 하소연으로 스쳐 들었다. 어릴 때 아버지 생각이 났다. 우리 형제들 대학 등록금 내야 할 때면 아버지는 한숨부터 쉬셨고 그 모습을 본 여동생과 나는 '이것도 못해주냐'라며 되려 아버지를 탓했다. 하지만 아버지 한숨이 그냥 내쉬는 한숨이 아니라 자존심을 건 것이었다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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