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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드러머 Jan 05. 2022

강도들

우리 팀은 작고 밀폐된 방을 A 본부와 이웃하면서 썼다. 작년에 신생팀이 생겼는데 마침 A 본부가 다른 곳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공간 문제는 쉽게 해결되는 듯했다. 하지만 신생팀이 비어있는 사무실 대신 우리가 쓰던 사무실을 원하면서 우리 팀은 방을 빼줘야 했고 A 본부가 쓰던 옆방으로 쫓겨나듯 옮겼다. '강도'가 따로 없다. 

더 이해되지 않은 건 그다음부터다. 
 '강도'는 사무실 입주한 뒤로 바로 우리 방에 와서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A 본부가 썼고 현재 우리 팀이 쓰는 공간은 꽤 넓은데 우리 팀이 사용하는 공간 이외는 비어 있어서 회의하기에 좋다. 하지만 아주 작은 소리도 다 들리는 한 공간이다. 처음엔 '강도'도 미안해하며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밥도 샀다. 그 이후에는 마치 자기 공간이라도 되는 양 마음껏 쓰기 시작했다. '강도떼'의 전체 회의도 우리 방에서 한다. 전체 회의는 회의로 방해받는 직원이 없어 굳이 자기 사무실을 놔두고 다른 곳에서 할 필요가 없다. 듣기 민망스러운 격론이 오가는 회의나 직원을 혼내는 회의도 한다. 남이 말하는 소리는 이상하게 귀에 잘 들어온다. 이젠 '강도'들의 숟가락 젓가락 숫자까지 셀 정도다. '강도'들도 들락날락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팀의 속 사정을 잘 안다. 본의 아니게 이들과 업무나 사적인 것을 일부 공유하게 된 셈이다. 이들의 행태가 싫어 가끔 문을 닫아버릴 때가 있지만 그것도 못할 짓이라 반나절을 못 버티고 문을 다시 열어준다. 

회의는 그래도 낫다. 전화를 우리 사무실에서 하는 건 지나친 일이다. 대개 사적인 전화는 사무실 밖에서 한다. 다른 직원이 일하는데 방해가 될뿐더러 사적인 것을 공유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팀 직원도 사적인 전화는 밖에서 하는데 '강도'들은 우리 방에서 한다. 회의는 앉아서 조용히 하지만 전화는 전화기를 들고 방을 한 바퀴 빙 돌면서 하기 때문에 더욱 많은 것이 공유된다. '강도'은 우리가 안 보이나보다.    

처음에 말했어야 했다. 조금씩 양보하면 어느 날 그게 당연한 것이 된다. K 과장도 그렇다. 한 번 일을 도와줬더니 이제는 그게 내 일이 되어 버렸다. 결국 오늘 난 K 과장에게 한마디 했다. "그걸 지금 나보고 하라는 거예요?"라고. 이제 '강도'들에게 한마디 할 차례다. "전체 회의는 그 방에서 하시고 여기서 회의를 하더라도 조용히 해주세요. 그리고 특히 전화는 자기 사무실에서 하거나 나가서 받으시죠"라고. 하지만 아직 머릿속 밖을 나가진 못 했다.

말을 해야 적정선을 넘어오지 않는 법이다. 근데 이걸 꼭 말로 해야 아나? 기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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