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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드러머 Feb 09. 2022

뒷북

뒷북치는 A 때문에 씁쓸하다. A의 일이 바빠 조금씩 도와주다 보니, 어느새 그 일은 나의 일이 되었고 일을 넘긴 A는 여유가 생기자 여러 이유로 일을 안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프다는 이유로 빠졌을 때는 아무 말도 못했다. 괜히 말했다가는 인심 잃고 야박(野薄)하다는 말만 듣기 일쑤다. 하지만 자기에게 도움 되는 개인적인 일은 열심히 하고, 정작 조직의 중요한 그 일을 방기하는 건 올바른 태도는 아닌듯싶어 결국 A와 결별하기로 했다. 그런데 결별 이후 A가 뒷북의 정형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그 이후 A는 도울 일이 없는지 여러 차례 묻으며 일에 관심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핑계로 자주 연락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미 정리된 일이라 뒷북일 뿐이다.  

뒷북을 꼭 꼬리처럼 달고 다니는 곳이 있다. 마치 처음부터 한 세트인 양. '뒷북 수사'나 '뒷북 행정'이 대표적인 예다. 꼭 사고가 터진 다음에 '뒷북' 수사팀을 꾸린다, '뒷북' 예산을 편성한다 난리다. 뒷북은 이미 다 끝난 일을 가지고 뒤늦게 설치는 것을 희화한 말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고, 지나간 버스에 손 흔드는 일이다. A와 같은 사람, 우리나라의 수사 당국, 행정부처가 꼭 이렇다.

뒷북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궁금해졌다. 이미 다 끝난 일을 가지고 뒤늦게 설치는 일로 '뒷나팔'이나 '뒷징'과 같은 다른 악기도 많은데 하필 북일까? 추측건대 전쟁에서 적의 침입을 가장 먼저 알리는 게 북이고 아군의 사기를 올리는 것도 북인 걸 보면 다른 악기보다도 북이 중요했던 거 같다. 때 마쳐 치지 않으면 크게 낭패를 보기 때문에 그래서 나온 말이 뒷북이지 않았을까. 낙랑공주가 호동왕자와의 사랑을 위해 조국을 지켜주던 자명고(自鳴鼓)를 찢었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의 이면엔 북이 위험 상황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며, 전쟁에서 북을 치던 병사가 적군에 포위를 당하자 자기는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으니 살려달라고 했을 때 아군의 사기를 올리는 일을 하지 않았냐며 그 병사를 죽였다는 이솝 우화의 이야기도 북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북은 제때에 쳐야 한다. 드러머로써 실감하는 말이다. '앞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북'도 안된다. 미리 쳐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점에서 앞북은 뒷북만큼이나 해악(害惡)하다. 제때에 정확하게 쳐야 하는 건 드럼 연주뿐만 아니다. 이미 일 떠나간 뒤에 열심히 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이 많다. 있을 때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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