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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드러머 Feb 17. 2022

일본 문화 선호도에 대하여

좀 오래전 일이다. 판교로 가기 위해 신분당선 전철을 탔다. 한참 음악을 듣고 있는데 업무 관련한 전화가 왔다. 가급적 지하철에서는 전화 통화를 하지 않지만 급한 연락이 와서 전화 통화를 했다. 통화가 끝나고 마침 내 앞자리에 자리가 나서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옆자리에 있던 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기자요?"

그리고는 그분은 나에게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기자면 제발 이걸 기사로 써주세요.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 수준이 낮아요. 제가 어디 어디를 가봤는데 상가도 얼마나 깨끗한지 모릅니다. 시간에 맞춰 물청소를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 상가들은 더럽잖아요. 아무 데나 버립니다. 남자들은 담배 피우고 버리고 여자들은 껌 씹은 거 버리고... 그리고 자동차 클락션 소리 절대 안 냅니다. 우리나라는 앞차가 늦게 달리면 마구 누르잖아요. 일본은 절대 안 눌러요."


그분의 장황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다행히 할머니 한분이 내 앞에 서 계셔서 나는 전혀 고민하지 않고 자리를 바로 양보했다. 그분은 자리에 일어서 있는 나에게 계속해서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일본 문화의 우수성을 증명할 사례는 수없이 그의 입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견디기 힘들어질 때쯤 지하철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어쩜 지하철이 약속 장소에 도착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그쯤에서 내렸을지도 모른다.


장황한 이야기지만 그분의 얘기가 틀린 것은 아니고 또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일본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로 나뉜다. 지인 중에서도 과거사와 상관없이 일본 문화가 좋다는 입장을 가진 부류와 일본이 선진국이라고 해도 우리가 좋아할만한 것은 없다는 입장을 가진 부류로 나뉜다.


전자의 입장을 가진 지인들은 대체로 일본 사람들이 매너 있고 사생활을 간섭하거나 남의 이야기하지 않지 않으며 영화나 소설 등 대중문화에 있어서 좋은 게 많다고 말한다. 지하철에서 나에게 장광설을 늘려놓았던 그분의 이야기와 일치한다. 일정 부분 나도 동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에 간여하는 경우가 많다. 정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불편할 때도 많다. 개인적으로 나는 한국 드라마나 한국 음악에서 자주 등장하는 콘텐츠 구성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스카이캐슬'이나 '아침 막장 드라마'는 너무 감정적이고 너무 극적이다. 발라드나 뽕짝 역시 너무나 뻔한 구성을 가지고 있고 그나마 몇몇 장르밖에 없다. 반면 일본 영화는 어떻게 보면 너무 심심하다 할 정도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잔잔하게 표현하는 방식으로 영상화하는 게 많다. 음악 역시 장르가 다양하다. 몇몇 가지 태도와 콘텐츠에 있어서는 나는 우리나라 콘텐츠보다는 일본 콘텐츠가 좋다. 하지만 너무 일본 문화만을 좋아하는 것도 문제다.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내 지인들의 경우 일본 문화를 광적으로 좋아한다. 특히 우리 세대에 금지된 J팝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반면 일본 문화을 싫어하는 부류도 있다. 일본 문화가 가지고 있는 아기자기하고 지나치게 귀여운 것, 콘텐츠가 너무 심심하고 지루한 점이 그렇다는 것이다. 또 무조건적으로 일본 문화를 싫어하는 부류도 있다. 그것은 일본이 과거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지배한 역사와 관련이 있다. 그렇지만 이것을 동일시한다고 해서 그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문화라는 것은 국민의 태도와 그들이 만든 콘텐츠도 포함되지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역사 인식과 정치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 집을 털었던 강도가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 해도 과거를 잊고 현재만 바라보면서 그를 좋아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조부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일을 하시다 옥고를 치르셨고 그 일은 훗날 돌아가시게 된 원인이 되었었다. 외조부는 강제노역을 가셔서 한쪽 눈을 잃으셨다. 개인적으로도 일본에 대한 원망이 적지 않고 잘못을 사과하지 않은 그들의 태도는 더욱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원한이 있다고 해서 그들에게서 배워야 하는 좋은 문화와 좋은 콘텐츠를 외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난 일정 부분 일본 문화의 좋은 점은 배우고 소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과거에 우리에게 한 짓을 절대 잃지 말아야 한다. 이 두 가지 사실은 서로 연관된 것이기도 하고 상관없는 것이기도 하는데, 이 두 가지 사실에 대한 균형 잡힌 사고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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