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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드러머 Feb 18. 2022

거풍하다

얼마 전부터 의류 스타일러가 인기를 끌고 있다. 스타일러를 사용하는 가정이 늘고 있고 호텔이나 행사장에 스타일러가 있는 곳도 많다. 스타일러는 옷의 묻은 세균을 제거해주고 탈취 효과가 있을뿐만 아니라 습기도 제거해주고 구김도 펴준다. 의류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매일 빨래한 듯 새 옷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스타일러의 인기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나는 행사장에서 스타일러를 한번 써봤다. 정말 좋았다. 마치 새 옷을 입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집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타일러의 작동원리는 간단하다. 운동 기능이 있어 마치 옷을 터는 듯이 이물질을 털어내고 수분을 분사해 냄새를 잡아주고 이물질을 털어낸다. 그리고 저온건조 기술로 습기를 잡아주며 구김도 펴준다.

 

우리 집에도 스타일러가 있다. 정확히 말해서 스타일러와 똑같은 기능을 하는 자연 스타일러가 있다. 나는 집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그날 입었던 옷을 베란다 빨래 건조대에 걸어 놓는다.(한 겨울철은 제외). 남방은 옷걸이로 걸어 놓고, 바지는 거꾸로 집어 걸어놓는다. 


처음엔 난 스타일러 기능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이렇게 했다. 옷 걸어둘 데가 여의치 않아 그냥 빨래건조대에 휙휙 걸어둔 것이다. 귀찮은 성격 탓에 꼼꼼하게 옷을 개어 넣는걸 못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걸어두면 구김만 펴지는 것뿐만 아니라 새 옷처럼 깨끗해지고 냄새도 없어지며 옷이 뽀송해진다.


이런 방식을 거풍(擧風)하다라고 말한다. 거풍이란 쌓아 두었거나 바람이 안 통하는 곳에 두었던 물건을 바람에 쐬는 걸 말한다. 그러니까 스타일러의 무빙 기능, 수분 분사 기능, 저온건조 기술을 바람과 햇빛이 대신해주는 거다. 스타일러는 결국 바람과 햇빛을 스타일러 안에 구현한 것 뿐이다. 내 생각에는 거풍이 스타일러보다 더 효과가 좋다고 생각한다. 베란다에 두면 훨씬 많은 바람과 햇빛을 받고 그만큼 더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루종일 말이다. 뿐만 아니라 거풍은 옷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는다. 스타일러를 자주 사용하는 의류가 줄어든다고 한다.


이불은 거풍했던 기억이 많다. 특히 봄이 오면 겨울내내 묵여 있던 이불을 털털 털어 하루 동안 햇볕에 말리는데 이렇게 하면 이불은 뽀송해질뿐만 아니라 습기도 잡아주고 세균도 잡아준다. 그래서 군대에서는 주말마다 이불을 이렇게 털어 널었었다. 아마도 세탁기는 고사하고 스타일러도 없던 과거에는 의류를 대부분 거풍으로 세탁을 대신했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과거엔 세탁기가 없기 때문에 깨끗한 옷을 입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거풍이 세탁보다 옷을 더 깨끗하게 한다는 실험 연구 결과도 있다. 다만 과거에는 옷이 많지 않고 옷에 이물질이 묻는 노동환경에 더 자주 있었고 지금처럼 의류에 신경을 쓰지 못했을 뿐이다. 


바람과 햇볕은 옷과 이불뿐만 아니라 사람도 깨끗하게 만들어준다. 팔을 벌리고 적당한 바람을 쐬고 적당한 햇볕을 쪼이면 기분이 뽀송해진다. 나는 가끔 이렇게 내 몸을 거풍하곤 한다. 믿기 어렵다면 한번 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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