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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드러머 Feb 22. 2022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면

분명 내 잘못도 아닌데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랑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볼 때 그렇다. 


얼마 전 운동하러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나랑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한 남자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파란색과 검은색이 들어가 있는 색깔도 그랬고 디자인도 똑같았다. 그래도 어딘가 다른 데가 있을까 해서 봤지만 아무리 봐도 똑같은 옷이었다. 결정적으로 상표까지 같았으니 비슷한 옷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사라졌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빨리 도착하기를 바랐다. 어찌나 긴 시간이었는지... 나의 바람과는 달리 그는 나와 같은 곳을 향해 걸었다. 그도 나와 같은 피트니스 클럽에서 운동하는 회원이었다. 나는 피트니스 클럽 엘리베이터에서 또 그를 마주칠까 두려워 일부러 딴 척을 하다가 그가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본 뒤에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뭐 이런 일이... 이번엔 피트니스 클럽에 또 다른 사람이 나랑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닌가. 

'도대체 이건 뭐지'

재빨리 옷을 벗어 들었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일이다. 그 해는 처음으로 교복 자율화가 시행된 해다. 엄마의 손을 잡고 시장에서 고르고 고른 가장 좋은 옷을 입고 학교를 다녔다. 하! 이런. 나랑 똑같은 옷을 입은 아이가 있다니. 1년 후배였던 그 아이는 1년 가까이 등하교 때마다 만났다. 어찌나 신경을 썼던지 아직도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이 날 정도다. 그 아이와 마주칠 때마다 난감함과 쪽팔림을 느꼈다. 저마다 돌려 입을 옷이 없어 한 벌로 버텨야 했던 우리들은 그 난감함과 쪽팔림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그 아이도 나랑 똑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의 그 난감함과 쪽팔림은 1년 뒤 내가 졸업하면서 끝낼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피트니스 클럽에서 또다시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발견했다. 그 전 날 두 명을 포함해서 3번째 사람이다. 그러니까 나까지 포함해서 무려 4명이나 똑같은 옷을 입었던 것이다. 아마 동네 샵에서 떨이로 팔았고 그들의 와이프들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모양이다.


옷이라는 게 대량으로 생산되는 것이니 똑같은 옷은 수 천, 수 만 벌이 있을 것이다. 똑같은 옷이 있다는 건 당연한 건데 왜 그 옷을 입었다고 창피해지는 걸까? 노트북, 운동화, 아파트, 자동차 같은 건 아무리 똑같아도 창피하기는커녕 동료의식까지 느껴지는데 말이다. 아마도 그건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때문이거나 나의 취향이라는 게 고작 누군가와 비슷하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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