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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드러머 Feb 15. 2022

18년 지기와의 이별

누구는 운다고도 했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래도 전화 한통으로 그렇게 일사천리로 끝날 줄 알았다면 뭐라도 할걸 후회했다. 이별의 순간에 로맨스 영화처럼 비가 내렸다. 


무려 17년 8개월을 동고동락했다. 18년을 함께 했던 사람이나 물건은 거의 없다. 직장은 고작 5년이다. 지금 있는 직장이 가장 길지만 10년이 안 된다. 18년이 되려면 10년을 더 다녀야 하지만 그때는 다니고 싶어도 다닐 수가 없다. 아무리 친한 사람도 10년 넘게 만나기란 어렵다. 죽고 못사는 관계여도, 취미나 뜻이 잘 맞는다 해도, 10년 이상 만나기가 힘들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어떻게 사람이 변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10년 넘게 쓴 물건(책이나 CD, LP처럼 반복해서 사용하지 않고 한번 사용하고 저장하는 것은 제외)도 흔치 않다. 노트북, 스마트폰은 아무리 오래 써도 5년이다. 아무리 좋은 옷이나 잡화도 10년 이상 쓰는 건 불가능하다. 헤지거나 지겨워지거나 어딘가 쳐박혀 찾을 수 없거나 혹은 버리거나 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폐차를 결심했다. 가족 여행도 다니지 않고 출퇴근 용으로 쓰지 않게 되면서 차를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체력적인 부담이 있어 장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그렇다보니 가성비가 너무 낮았다. 꼬박꼬박 내야 하는 보험료와 자동차 세 대신에 필요할 때 택시를 타는 게 더 나을 정도였다. 시동을 거의 걸지 않으니 자꾸 방전되는 것도 문제였다. 그때문에 몇 번이나 보험을 불러야 했다. 옆집이 이사라도 하면 주말 아침에 일찍 일어나 차를 빼줘야 했고 조금 늦게 집에 들어오면 주차할 곳이 없어 이리 저리 도는 것도 곤욕이었다.


최근에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가 등장한 것도 차가 없어도 되겠다는 결심을 갖게 했다. 공유 차, 렌트카 플랫폼, 택시콜 서비스, 합승 서비스 등 모빌리티 서비스가 좋아지고 있는데다 항공이나 기차 등 대중 교통도 편리해지고 있다. 앞으로 모빌리티 서비스는 더욱 진화할 것이다. 산업에서는 이것을 하나의 트렌드로 보고 있다. 몇 번 쓰지 않고 방치하는 차는 우리가 소유하는 물건 중에서 가장 가성비가 낮다. 그래서 모빌리티 서비스가 진화하면 차를 소유하지 않을 거라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재력을 자랑하거나 사회적 신분을 과시하는 용으로 차를 사지도 않는다. 


거의 탈 일이 없고 좋은 모빌리티 서비스가 있음에도 지금까지 차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이들때문이다. 아이들이 입시를 준비하면서 학원 라이딩과 수험장까지 라이딩을 해야 했다. 그래도 택시를 타는 것보단 아버지가 라이딩 해주는 게 여러모로 낫겠다 싶었다. 얼마전에 둘째의 입시까지 치르면서 이 역할도 끝났다. 이제 차를 없애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마침 알아서 고장이 났다. 자기 운명을 스스로 알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한 두달 끌지 말지 고민하던 나에게 고민하지 않도록 나를 배려해준 걸까?


대행업체가 모든 일을 끝내고 한 장의 서류를 보내줬다. 2004년 6월 16일부터 2022년 2월 15일까지 123657km를 함께 했음을 서류 한장이 증명해줬다. 18년간 12만 킬로미터를 달렸던 모습을 생각했다. 어쩜  이때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지만 당분간 차 없는 생활을 해야 한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거다. 불편한 것도 있겠지만 또 비운만큼 얻는 것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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