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여행 가서는 술만 마신다. 남자들이 주도하는 회사 워크숍도 술만 마시기는 비슷하다. 나는 초등학교 동문회에 참석하지는 않은데 여자 동문으로부터 술만 마셔대는 여행이 힘들다는 하소연은 몇 차례 듣곤 했다. 몇 해 전에 어릴 적 친구들과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친구 4명이서 한 번도 여행을 가지 않았으니 이번에 좋은 추억을 만들자면서 가까운 계곡에 놀러 갔었다. 그 후론 우린 다시는 여행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여행을 통해 서로의 스타일과 성격이 대립하는 것을 확인하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쳐도 여행을 가서 술만 마시는 걸 내가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 가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다. 그래서 혼자 하는 여행을 선호한다. 여러 명이서 여행을 가더라도 틈틈이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의외로 혼자 있는 시간이 적지 않다. 조금 일찍 일어나고 조금 늦게 자면 책 읽는 시간을 확보할 수가 있다. 음악은 잠깐잠깐의 휴식시간에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면 대부분의 시간을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다. 그래서 이게 여행인지 아니면 동네 카페에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건지 모를 정도다. 여행을 가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나 자신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위의 두 가지 사례에 대해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틀리다 맞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술만 마셔대는 여행은 조금은 슬프다. 여행을 떠난다는 건 그곳의 문화에 담긴 스토리를 보고 듣고 그곳의 자연을 감상하기 위해서인데 내 또래 남자들은 문화에 대한 소양과 관심이 부족하다 보니 술만 마시는 것이다. 그림이나 건축물, 또는 역사와 문화에 대해 배운 적도 없고 또 먹고살기 바빠 관심을 두지도 못했다. 그들의 여행은 공기 좋은 데에서 맘 편히 술 마시는 데에 의의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나의 여행 방식이 좋다는 말 하는 것은 아니다. 남들 사진 찍고 먹고 마시는 것에 참여하지 못하고 마치 현지인과 여행객의 중간쯤 되는 위치에 어정쩡하게 서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니 그것도 여행을 제대로 즐긴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