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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드러머 Mar 16. 2022

장례식 논쟁

중고등학교 국사 시간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된 부분은 일제강점기와 조선시대 예송 논쟁이었다. 일제강점기는 이해가 안 됐다기보다는 안타까움과 분노의 감정이 더 컸다. 예송 논쟁은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효종이 죽자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가 1년 상을 치를 것인가 3년 상을 치를 것인가를 놓고 서인과 남인이 죽자살자 싸웠다. 1년 상을 하자는 쪽은 효종이 장자가 아니라는 근거를 들었던 것이고 3년 상을 하자는 쪽은 효종이 장자는 아니지만 왕위를 이었으니 장자와 같은 지위에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든 것이다. 효종의 형 즉 인조와 자의대비의 장자는 소현세자였고 소현세자가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고 일찍 죽었던 탓에 이미 3년 상을 치렀던 것이다. 두 번째 예송 논쟁도 효종을 장자로 볼 것인가와 관련이 있다. 효종의 비인 인선황후가 죽자 인선황후의 시어머니인 자의대비가 9개월 상을 치를 것인지 1년 상을 치를 것인지 논쟁이 붙었다. 둘째 며느리상은 9개월이고 맏며느리는 1년 상을 치른다. 결국 효종의 아들인 현경이 1년 상을 치르게 했는데 이는 아버지 효종을 장자로 보길 원했기 때문이다.


이런 예송 논쟁을 보고 정말 할 일 없는 사람들이구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몇 해 전에 직접 경험했다.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형제들 사이에 장례식 문제로 논쟁이 오갔었다. 친구는 삼형제 중에 막내이고 큰 형인 장남은 이혼을 하면서 큰 형수에게 아들을 맡기고 재혼해 딸을 낳고 살고 있다. 과연 장손을 그 집안사람으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혼은 했지만 맏아들의 자식이고, 호적도 남아 있으니 맏손자의 역할을 줘야 한다는 의견과 장남이 이혼해서 장손과 같이 생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맏손자로서의 역할을 잃었으니 맏손주로서의 예를 갖추게 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이 문제에 대해 셋째 아들인 내 친구만 전자의 입장 즉 이혼한 맏아들의 맏손주가 이번 어머니 장례식에서 맏손주로서의 역할을 갖게 하자는 의견이었고, 나머지 두 형제들은 같이 생활하지 않은 점을 들어 맏손주로서의 역할을 주지 않는 게 합당하다고 봤다. 


도저히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친구는 이 문제를 우리들에게 물었다. 친구 세 명의 의견은 또 달랐다. 맏손자의 자격 여부부터 인간의 기본적인 도덕에까지 논의가 이어졌다. 다른 친구는 전자의 의견을, 나는 후자의 의견을 편들었다. 장례식이라는 게 죽은 사람에 대한 것보다는 산 사람 간의 관계가 더 중요하며, 향후 그 관계를 공고히 한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관계, 적통, 재산의 문제까지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동네 장례식도 이런 문제가 있는데 권력이 있고 산다 하는 집안의 장례식은 얼마나 복잡할까 싶다. 누구의 장례식장에 누가 갔네 마네 하는 것들이 여전히 중요한 뉴스가 되는 이유이다. 결국 장례식은 살아남은 자들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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