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드러머 Mar 29. 2022

옆칸 손님

일 때문에 OO을 방문했다. 미팅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해결하지 못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화장실을 갔다. 남녀 표시를 확인한 뒤에 화장실에 들어섰다.


나는 밥과 잠자리는 가리지 않는다. 아무거나 잘 먹고 아무데서나 잘 잔다. 하지만 화장실은 조금 가린다. 깨끗하고 조용해야 한다. 사람이 있어도 안 된다. 그가 썼던 변기에 내가 앉거나 내가 앉은 변기에 그가 앉는 걸 싫어한다. 그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일지 모르는 상태라면 상관없다. 다행히 화장실은 깨끗했고 또 아무도 없었다. 

 

한참 일을 보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그러니까 나보다 먼저 들어왔는지 나보다 나중에 들어왔는지 옆칸에서도 열심히 일을 보고 있었다. 서로의 소리는 리드미컬했다. 옆칸이나 밖에 누군가가 있으면 평소보다 배에 힘을 주고 조심스럽게 일을 보는 편이다. 


옆 칸에서 맑고 높은 소프라노 소리가 났다. 나도 묵직한 베이스 소리를 냈다. 그도 내가 있는 옅 칸을 의식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서로의 소리를 의식했다. 


그리고 옆 칸에서 일을 다 끝냈는지 부산하게 정리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내는 소리에 따라 장면을 상상했다. 마침내 모든 일을 끝내고 그는 밖으로 나갔다. 


또각또각또각

어 뭐지.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일을 끝내고 나왔다. 손을 씻으려는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화장실 입구에서 확인한 그림은 순간 나를 당황하게 했다. 어깨가 좁은 그림이다. 조금 확실하게 구분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당황하고 있는 순간 청소하는 아줌마가 들어왔다. 그리고는 내게 '남자 화장실은 이쪽인데요'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여자 화장실에서 나와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었다. 처음 가는 곳은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보니 옆칸에서 나와 화음을 맞춘 손님은 여자였던 것이다. 그 아니 그녀는 자기 옆칸의 손님과 화음을 맞춘 사람이 남자인걸 알았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날아간 생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