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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드러머 Apr 18. 2022

슬기로운 격리생활을 끝내고

끝물에 걸리지 말자, 조그만 버티자라고 했지만 결국 마지막을 버티지 못했다. 4월 4일의 일이고  4월 5일 266,208명의 확진자 통계에 1을 보태게 됐다. 이로써 나는 대한민국의 14,267,401번째로 확진됐다. 그 후 거짓말처럼 확진자 수는 계속 줄어들어 글을 쓰는 오늘 기준 일일 확진자 수는 5만 명 아래까지 내려갔고 2주 사이에 200만명이 더 확진됐다(누적 확진자 수는 16,353,495명). 정부도 2년 넘게 지속해온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전 해제했다. 마치 내가 걸리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처음에는 왜 내가 걸렸지라는 자책이 들었다. 그리고는 언제 어느 순간 때문이었는지 추적했다. 그리고 알게 된 진실. 그때 조금만 조심했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 순간을 피할 수 없었는지 복했다. 이미 결과를 뒤집을 순 없는 노릇. 격리생활을 잘 끝내는 수밖에.


일주일은 내 인생에 블랭크다. 혹시 내가 100년을 산다해도 일주일의 블랭크는 1/5200다. 짧다면 짧지만 영화  <인타임>에서 처럼 시간을 사고판다면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상당히 긴 시간이다. 난 내 인생의 0.02프로를 허비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도 3차 백신 접종을 맞은 것보다 덜 아팠다. 확진자 선배의 말로는 확진되고 2,3일 내에 엄청난 아픔에 시달릴 거라고 했는데 엄청난 아픔은 없었다. 이 정도 아픔을 가지고 일주일씩이나 격리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재수할때 결핵에 걸렸었는데 격리하진 않았었다. 결핵도 국가에서 관리하는 전염성이 큰 전염병이다.


대신 얇은 감기 기운이 계속해서 날 괴롭혔다. 격리기간이 끝나고 1주일은 더 갔다. 집에서 쉬었던 격리기간보다 더 힘들었다. 출근해서 일까지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도 아픔 총량의 법칙이 적용되는 건가 싶다. 결국 집중해서 아프다 빨리 나을 건지, 아니면 얇게 아프면서 길게 갈 건지의 문제다.


집에서 그것도 한 공간에서 7일을 어떻게 보낼지 막막했다. 나는 하루 이상 집에 있으면 견디지 못하는 체질이다. 하지만 자포자기해버리니 맘은 편했다. 격리기간 중에 히가시노 게이코를 포함해 4권의 책을 읽고 히가시노 게이코 소설을 영화화 한 영화 몇 편을 봤다. 비틀즈의 중기 앨범을 들었다. 그때 마침 프로야구가 개막된 건 나에게 행운이었다. 야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주일치를 온전하게 감상한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책 읽다 지치면 영화를 보고 영화보다 지겨우면 좀 자고 그러다 프로야구가 시작하면 프로야구를 봤다. 격리기간중 내가 응원하는 팀은 단 1패만 했다. 나의 격리생활을 응원해준 것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일주일 내내 가족들이 먹을 것을 챙겨줘 내 평생 3식 3끼를 온전히 먹는 일주일로 기록됐다. 3식 3끼를 온전히 챙겨 먹었던 적은 군대생활이 유일하다.


일주일을 해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오히려 마지막 날은  아쉬움까지 들었다. 0.1프로의 시간은 나름 유용했다. 인생에서 그 어떤 시간도 무의미한 시간은 없다. 일만 없다면 이런 생활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이렇게 휴가처럼 쉴 날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격리생활에 봄햇살과 벚꽃을 보지 못하는 건 고통이었다. SNS에서는 만발한 벚꽃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우리 집 고양이 영심이는 나의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베란다에서 마음껏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영심이가 부러운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격리 전까지는 코트를 입고 다녔는데 격리 해제하고 첫 출근에는 자킷만 입어도 더웠다. 겨우 일주일 사이에 세상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나는 격리 해제하고서 제일 먼저 회사 근처에 있는 공원에 가서 마음껏 햇살을 즐겼고 벚꽃을 지겹도록 감상했다. 햇살은 마치 내 몸 안에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하나하나 죽이는 것 같았고 벚꽃은 시든 내 감성을 일깨워 주는 듯했다. 그날 본 벚꽃이 올해의 마지막이 됐지만 하루만 늦게 격리 해제됐으면 그것도 못 볼 뻔했다.


지인이 나로부터 전염되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다. 확진받기 전 날 밤 모처럼 가족 외식을 했는데 모두 확진되지 않았다. 이건 대단한 행운이다. 가족 중 한 명만 걸려도 온 가족이 걸리는 판인데 우리는 식사까지 같이 했어도 걸리지 않은 것이다.

 

숫자가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확진자는 나오고 있다. 이러다가 결국 사회경제활동 인구의 대부분이 확진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결국 우리는 좀비가 되지 않으려 애쓰다 마지막에 좀비에 물려 좀비가 되고 마는 운명인 것이다. 좀비 영화 볼 때마다 저렇게 고생하느니 초반에 편하게 물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버티고 물리는 게 나을까?


확진자 선배에 의하면 아픔은 몇 주 뒤에 불쑥불쑥 찾아온다고 한다.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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