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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드러머 Dec 03. 2021

라디오 예찬

나는 라디오를 좋아한다. 너무나 좋아해서 중고등학생 때는 라디오를 거의 품고 살았었다. 눈을 뜨자마자 라디오를 켰고 라디오를 켜둔 채 잠을 잤다. 방학 때는 20시간씩 라디오를 듣기도 했다.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시간에 맞추기 위해 놀다가도 집까지 뛰어갔었다. 한 곡이라도 좋은 곡을 놓치고 싶지 않아 88메가헤르츠에서 108메가헤르츠 사이를 다이얼을 돌려가며 들었었다.


말이 적고 좋은 음악이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특히 '황인용의 영팝스'와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좋아했다. 황인용 씨가 운영하는 카메라타를 가끔 찾아가는 이유는 그곳에서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의 우상인 황인용 씨의 흔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전영혁의 음악세계 애청자 동호회 모임도 열심히 나갔었다. 가장 음악을 진지하게 들었던 사람들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고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인다는 것 자체가 좋았었다.


무언가 손에 닿기만 하면 부숴버리고 마는 똥손이지만 라디오를 조립하는 기술 과목 실습 시간은 내 인생 최고로 진지했던 시간이었다. 세운상가에서 트랜지스터를 구해 조립해서 라디오를 만들었고 주파수를 이리저리 옮기면서 방송 주파수를 내 손으로 잡아 낼 때의 감흥은 지금도 생생하다.


라디오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접한 건 나에게 행운이다. 새벽 일찍 출근하시는 아버지는 TV 대신 라디오를 켜셨고 라디오에서 그날의 중요한 뉴스와 생활 정보를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출근하실 때까지 라디오를 들어야 했다.


라디오는 음악의 보고이자 음악 스승이다. 음악을 찾아 들을 수 없었던 시절, 한 달 용돈으로는 서너 장 이상의 음반을 살 수 없었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면 라디오는 최고의 음악의 보고였다. 또한 라디오는 음악의 스승이기도 하다. 최신 유행하는 음악부터 락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까지 음악 전문가가 소개해주는 음악은 나에게는 '수학의 정석'이자 '성문 영어'였다.


라디오가 무엇보다 좋은 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거다. 음질 좋은 홈오디오로 듣는 것도 좋고, 차에서 듣는 것도 좋고, 출퇴근 시간에 버스에서 듣는 것도 좋지만 지찟거리는 잡음이 섞인 낡은 트랜지스터로 음악을 들어도 좋다. 그건 라디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고급 오디오로 LP를 감상할 때 약간 잡음이 있다고 LP를 탓하지 않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도 라디오는 작고 싸다는 장점이 있다. 지금 튜너로 라디오를 듣는 사람은 없지만 튜너가 있어야 라디오를 들을 수 있었던 시대도 있었다. 불과 몇 년 전 이야기다. 하루키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라디오 NEB의 <팝스 텔레폰 리퀘스트>입니다. 라디오를 듣고 계셨나요?"
나는 입 안에 남아 있던 치즈 크래커를 황급히 맥주와 함께 넘겼다.
"라디오요?"
"그렇습니다. 라디오, 문명이 낳은...딸꾹... 최고의 기계지요. 전기 청소기보다 훨씬 정밀하고, 냉장고보다 훨씬 작고, 텔레비젼보다 훨씬 쌉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쯧쯧즛, 그러면 안 되죠. 라디오를 듣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책을 읽어 봤자 고독해질 뿐입니다. 안 그런가요?"
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중


라디오는 따듯하다. 사람의 오감 중에 목소리가 가장 따듯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전파를 타고 날아온 목소리는 분명 많은 사람이 듣는 목소리일텐데 마치 방안에 혼자 듣는 나에게만 전달되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라디오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처럼 느껴진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서 바다 한가운데에서 듣는 라디오가 뱃사람에게 위안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낚시광이었던 헤밍웨이가 낚시할 때 필수품으로 라디오를 챙겼을 듯하다.


"돈 있는 사람은 배 안에서 말을 걸어줄 라디오란 걸 갖고 있지. 야구 얘기를 해주기도 해. 라디오로 야구를 듣는다는 건 얼마나 신나는 일일까"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중


라디오 진행자들은 모두 착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한다. 착한 사람들만이 라디오를 진행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목소리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이다. 글과 표정은 거짓을 보일 수 있지만 목소리는 그렇지 못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SNS에서 화려하고 자기 과시적인 글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고 과장과 거짓이 넘치는 유튜브 채널도 많다. 하지만 목소리는 솔직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라디오 DJ는 한 공간에 혼자서 말을 하는데 이는 마치 연극배우가 독백하는 환경가 비슷하다. 독백은 자기 고백과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진솔해야 한다. 거의 결벽일 정도로 방송을 싫어하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2018년 8월 도쿄FM를 통해 라디오 DJ로 나섰던 것도 라디오의 이러한 진실함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라디오는 느리다. 헤르츠가 전자기파를 발견한 게 1888년이다. 그리고 AM을 이용한 라디오 방송이 시작된 건 1906년부터다. 한 세기가 조금 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디오는 금성사에서 1959년에 만든 금성 A-501이라는 제품으로 김해수(김진주 씨의 아버지)가 개발했다. 60년 남짓됐다. TV이나 인터넷, 영화에 비해 라디오는 기술적으로나 방송형태적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은 유일한 미디어다. 최근 조금 변했다고 하면 보이는 라디오로 스튜디오를 생중계하는 것과 청취자의 사연과 리퀘스트를 앱으로 받는 것 정도다. 이런 사소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라디오는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나는 아직도 라디오를 좋아한다. 땡퇴에 맞춰 듣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가슴을 뛰게 한다. 휴일 아침 93.1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삶의 여유를 느끼게 해준다. 저녁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는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좋다. 무슨 음악이 나올지 모르기때문에 묘한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매력이 있다. 아는 음악이 나오면 반갑고 모르는 음악이 나오면 배울수 있어 좋다. 튜너로 라디오를 들었던 시절, 어느 날 우연히 잡힌 라디오 방송을 듣고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기뻐했었다.그 방송은 양화대교에서나 겨우 잡히는100.7 마포공동체라디오였다(공동체라디오방송은 1와트의 소출력을 원칙으로 하며, 지역 여건에 따라 10와트까지 증강할 수 있는 방송이다. 1와트면 최대 5킬로 내에서 방송이 잡힌다)


아버지 세대나 내 세대나 그리고 그다음 세대에서 라디오는 세상과 소통하는 매체로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TV 없는 삶은 상상이 가지만 라디오 없는 삶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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