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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드러머 Dec 14. 2021

묻지마 데이

예전에 내가 몸 담고 있는 조직에 '묻지마 데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묻지마'라면 '묻지마 관광'이나 '묻지마 투자'처럼 부정적인 것부터 생각나는데 '묻지마 데이'는 훌륭한 제도다. 


'묻지마 데이'는 심신이 지치고 일도 적당히 마무리 되는 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오후 한 때를 쉬는 제도다. 휴가를 내기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괴로운 심신을 참아가며 사무실에서 인터넷 셔핑으로 시간만 축내지 말고 마음껏 쉬게 하자는 취지다. 


그날은 '묻지마 데이'를 쓰고 싶을 정도로 알맞게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그날 출근때의 나의 모습을 보던 한 동료가 '험난한 출근길이었군요'라고 말한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는 적당이 내리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리드미컬한 빗소리를 감상하고 있었고 후배가 커피를 건네 주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의 산지를 물었다. 대체로 산지가 붙은 커피 그러니까 에디오피아나 케냐 등 산지가 붙는 커피는 '봉다리' 커피나 '다방' 커피보다는 우아하고 감상적이며 심지어는 지적인 느낌이 난다. 


오늘 같이 감상하기 좋은 비와 우아하고 지적인 커피를 마실때 R&B 소울이나 포크 블루스의 음악이  있으면 더욱 좋다. 나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제제처럼 머릿속으로 음악을 켰다. 이쯤 되니, 책 한 권 들고 당장이라도 카페로 달려가고 싶어졌다. 이런 날 '묻지마 데이'를 쓰지 않는다면 도대체 언제 쓸 수 있느냔 말인가. 하지만 현실은 나에게 이것저것을 묻고 있다. 


오늘 오후에 있는 미팅은 준비 다 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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