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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드러머 Dec 16. 2021

가격 환산 기준품

몇 년도에 어떤 물품이 얼마라고 말하면 실제 그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기사에서는 물건의 가치를 쌀값으로 치환하여 보도한다. 그렇게 되면 물품의 가치를 쉽게 알 수 있다. 


사람마다 어떤 소비에 대해 그것을 다른 물품의 가격으로 바꾸는 치환의 기준이 되는 물품이 있다. 나는 한때 모든 가격을 LP나 CD로 치환하곤 했었다. 친구들과 회식하면 '이게 LP 몇 장, CD 몇 장인데'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나는 그 돈의 가치를 LP와 CD의 가치로 환원해서 계산했다. 그러면 그게 나에게 얼마만큼의 값어치가 있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고 그 판단에 근거해 소비를 실행할지 말지를 결정했다.


친구 A는 가격 환산 기준품이 막걸리다. 친구들이 어떤 것을 하자라고 제안하면, 이를 테면 여행을 가자, 차를 마시자, 어떤 물품을 사자라고 하면 A는 '그게 막걸리 몇 통인데'라고 응수한다. 어떤 일이 막걸리 몇 통의 값어치 보다 나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한다. 물론 나머지 친구들은 A의 반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호기롭게 가족 외식을 외칠 때 어머니는 그 옆에서 '그게 삼겹살 몇 인분인데'하시며 분위기를 깨곤 하셨다. 그때 그렇게 생각했다. 일 년에 한두 번 할까말까하는 외식과 삼겹살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어머니는 외식 얘기만 나오면 삼겹살을 꺼내실까. 겨우 외식을 하고 와서도 어머니는 '삼겹살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는데' 하시면서 또 분위기를 깨곤 하셨다. 어머니 기준에서는 분위기 좋은 건 아무 소용없고 평소에 잘 먹을 수 없는 고기를 가족들이 실컷 먹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우리 집만 그랬던 건 아닐 테다. 그때 당시 거의 모든 어머니들은 아버지의 호기를 고기로 치환했었다. 지금의 어머니들의 가격 환산 기준품은 분유값, 아이들 옷값, 또는 학원비가 아닐까 싶다. 


금본위제도가 도입될 때 모든 물건 값을 금으로 치환했던 것처럼 가격 환산 기준품은 그 사람에게는 금값인 셈이다. 그것은 가장 소중한 것이고 가치 판단의 기준이다.   


가격 환산을 역으로 이용하는 데도 있다. 광고다. 흔한 광고 카피 중에 하나가 '하루의 커피 한잔 값밖에 안됩니다'다. 이는 커피 한잔 값 정도로 싸다. 그리고 꼭 필요한 것이 아닌 것을 아껴서도 살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커피 한잔 값은 결코 싸지도 않고 꼭 필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커피 한 잔은 4000원 정도 한다. 하루의 잔의 커피값을 아낀다면 한 달에 12만 원이고 일 년이면 144만 원, 5년이면 720만 원이다. 이 돈이 작은 지는 각자 판단할 문제다. 그리고 하루 한잔의 커피를 아낄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차라리 다른 걸 안 하고 커피를 선택할 정도로 요즘 커피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또한 커피는 대화를 위해서 일부러 마셔야 한다. 커피와 차를 마시지 말고 밖에서 서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하루의 커피 한잔 값'이라는 카피는 예전만큼 설득력이 높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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