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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파가 해외에서 살아남는 법

by 헬렌

최애 음식이 뭔가요? 김치찌개, 제육볶음, 나물 반찬, 뼈해장국, 짜장면, 말하자면 하루가 넘어갈 거 같다. 김치 1kg 사면 3일 만에 해치우는 내가 두 달 넘게 김치를 안 먹고 있다. 정확하겐 못 먹는다. 내가 살고 있는 뉴질랜드 남섬 와나카에서는 김치 500g에 $9(7,200원)이라서 감히 사 먹을 수가 없다. 이런 환경에서도 살아남고 싶어서 입맛을 돋울 수 있는, 한식이 아닌 다른 요리를 시작했다.


12시가 넘으면 프랑스 레시피 사이트인 ‘Marmiton’에 들어가서 하나씩 읽어본다. 내가 돈 내고 살고 있는 캠핑장에서는 와이파이도 무료로 쓸 수 없다. 스타링크가 터지는 지역이라 하루 500MB로 제한되어 있다. 유튜브로 레시피 영상 3개만 봐도 금방 네트워크가 끊긴다.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과 글에 의존한다. 겨울에 쉽게 구할 수 있는 당근, 감자, 정어리, 콩, 계란 위주로 찾아본다. 노트에 알 수 없는 프랑스어를 적는다. 그다음 노트를 들고 함께 사는 프랑스 친구 앞으로 가서 “이거 어떻게 읽어?”라고 물어보며 발음을 익히고, 어떻게 요리할 수 있는지, 비슷한 음식은 뭔지, 잘못 해석된 것은 무엇인지 배운다.


- 당근 라페(Carrot Rapées with Mustard)보단 Dijon Vinaigrette [디종 비네그렛]이라고 한다.

- 베샤멜소스(Béchamel sauce)는 밀가루+버터에 우유를 넣어 만든 소스이며, 치즈를 넣으면 Veloute [벨루테]가 된다.

- Vichy Carrots(French glazed carrots)에서 Vichy는 온천이 유명한 지역 이름이다. 미네랄워터로 조리해서 건강하게 여겨졌다. 또한 2차 세계대전과 관계가 깊다.

- Dijon mustard의 Dijon은 Bourgogne에 속한 지역 이름이다. 디종 머스터드에는 식초 대신 화이트 와인이 들어간다.


최근에는 <요리재형> 유튜브에 나온 프랑스식 당근찜을 만들었다. 친구가 먹어보고 “우리 엄마가 해준 게 10점 만점에 10점이라면, 네가 해준 건 6점이야. 먹어보고 프랑스 음식이라고 느꼈어. 축하해! 뉴질랜드는 음식 재료 품질이 좋은 것도 아닌데 이 정도면 아주 잘한 거야.”라고 했다. 레시피에는 당근, 통베이컨, 올리브유, 샬롯(마늘), 야채스톡, 타임/로즈메리가 적혀있는데, 통베이컨 대신 목살, 버터 추가, 야채스톡 대신 치킨스톡을 썼다. 정석대로 하지 않아도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는 것이 흥미롭다. 마치 노래 하나를 재즈풍으로 바꿔서 듣는 것처럼.


이번 주엔 덕팻(오리 기름)에 구운 감자, 디종 비네그렛을 만들었다. 돌아오는 주엔 코코넛 크림을 넣은 카레, 정어리 요리를 해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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