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후 합기도 6

by 카인비

2021 6 1


사부님이 날 구석 벽 기둥앞에 세워두더니 골반 틀면서 주먹으로 훅! 치는 법을 알려주고서는 20회 실시! 하고 석찬이에게로 사라졌다.


사부님은 석찬이랑 나는 벽이랑 ^.^ 셋뚜셋뚜

내 파트너가 군말없이 너무 잘 받아줘서 적적하고 참 좋았다…*



2021 6 2


평소처럼 도복에 흰 띠 메고 탈의실을 나왔다. 사부님이 "선우씨 일루와봐요." 하면서 날 불러세우더니 갑자기 내 앞에 무릎 꿇고 내 흰띠를 막 풀어헤친다. (어머, 왜그러세요…) 평소와 다른 시츄에이션에 어리둥절해서 메는 법이 잘못됐나 물어보니 "어, 완전 이상해." 하며 도복 안쪽에 숨겨뒀던 걸 꺼내 내 허리에다 꽉! 메준다. 앗… 이… 이것은…?!


뾰롱! 노란띠가 되었다! (레벨업!)



2021 6 3


'좌측방낙법'을 배우는데 좀 버벅거렸다고 또 엄청 꼽을 준다. 내가 "아니 좀 헷갈릴 수도 있지!" 하고 반박하니까 사부님이 갑자기 옆에 있던 석찬이한테 하소연 시작.


“야, 석찬아. 이 누나 좀 봐라. 이래가지고 내가 제대로 가르칠 수가 있겠니.” 그걸 본 나도 석찬이에게 하소연 시작. “석찬아 배우면서 좀 틀릴수도 있는거지, 이렇게 틀릴때마다 뭐라하면 내가 제대로 배울 수가 있겠니.” 이어지는 사부님의 분개. “아니, 헷갈릴게 따로 있지!!! 이건 초등학생 수준이잖아!! 안그러니 석찬아!!!” 나도 질 수 없다. “아니, 처음 배우는 건데 처음부터 어떻게 잘해!!! 안그러니 석찬아!!!”


덕분에 석찬이는 갈 곳 잃은 시선과 눈웃음으로 한시간을 보냈다.



2021 6 8


멱살 잡혔을 때의 상황만 해도 참 다양하다. 오른손, 왼손, 엄지가 위로, 엄지가 옆으로. 오늘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형사님들이 하는 것처럼 팔을 꺾어서 상대를 제압하는 법을 배웠는데. 팔 하나만 제압해도 등딱지 잡힌 꽃게 신세가 되는게 신기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제압한 상대의 팔에서 가장 연한 부분을 썰어서(?) 아주 아프게 만드는 법을 배웠다. 어떻게 하면 상대를 아프게 만들 수 있을지 정말 오랫동안 치밀하게 고민해서 나온 스킬 같았다. 누가 만든 스킬인지 몰라도 엄청 음침했다.



2021 6 9


"선우씨, 저번에 남성분이 전화로 수업문의 했다고 했지. 오늘 그분이 도장에 찾아왔어. 근데 내가 딱 보니까 그 사람 스파이야. 내가 성인부 시간 알려줬는데 굳이 초등생 수업시간에 찾아온 데다가, 셔틀이 어디까지 가는지를 묻더라고. 보통 27살이라면 어린이들과 봉고차 같이 탈 생각을 잘 안하는데? 촉이 딱 왔지 아 스파이구나! 아니, 차라리 옆 체육관에서 왔다고 밝히던지. 수강생인척 연기하는건 또 뭐야 찌질하게. 안그래요?"


그 말을 듣는데 저번 주말에 모 학교 입학설명회에 수강생인 척 염탐갔던 게 생각나서 조용히 있어야했다 ^.^;



2021 6 10


부동산에 내놨던 작업실이 두 달 만에 나갔다. 이제 이사를 갈 수 있다! 이사 소식을 사부님께 전하니 “어, 이사가면 운동 못 나오는건가. 언제 가는데요” 하고 묻는다. '두 달정도 남았다'고 하니 “아쉬운데.” 한다 … 급 정적.


못들은 척 멋쩍게 스트레칭하고 앉아있으니 돌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일어나!! 집 보러다니려면 하체가 튼실해야지! 런지! 스쿼트! 점프! 실시!” 급 폭풍 하체 단련 시작이다. 그러더니 열심히 운동하는 나한테 대고 “선우씨는 혼자서는 절대로 운동 안하는 스타일이야. 내가 보니까 선우씨는, 혼자서는 절-대 운동 안 해” 그런다.


진짜 아쉬운가 싶은가보다 싶고 이 상황이 웃겨서 낄낄댔더니 “수련생 체력단련 힘들지 말라고 이렇게 옆에서 웃겨주는 이런 좋은 체육관이 또 어딨어. 어 안그래요” 한다.


그러게요. 정말 좋은 체육관인데. 아쉽네!



2021 6 16


근처 초등학교 확진자 발생으로 어제 하루만 문을 닫는다고 카톡하더니만 결국 이번주 내내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부님이 보나마나 혼자서는 운동 안할테니 운동하는 영상 인증샷 찍어 보내라고 했지만 나는 지금 이태원 친구 작업실에 술먹으로 간다 신난다!



2021 6 21


사부님이 초6 남자애가 오늘 같이 수련할거라고 예고를 한다. 고3 석찬이 덕분에 뉴페이스 등장에 대한 면역이 좀 생겨서 그러려니 했는데, 등장부터 늠름하게 합기! 안녕하십니까! 하는 뉴페이스의 허리춤에 빨간띠가 딱! 눈에 들어왔다. 오우. 까마득한 선배님 등장에 조금 긴장.


수련 전 다부진 제스쳐로 야무지게 제식?을 착착 해내는 꼬마선배님과 제식따위 호로록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배운탓에 어버버하는 17살 더 오래 산 누나의 차이가 너무 극명했는지. 사부님은 자꾸 나한테 들으란 투로 '이 누나는 뭘 잘 몰라' '네가 잘 챙겨줘야 돼' 하는데. 평소같으면 으르릉하고 대들었겠지만 ‘네’ 하고 대답하는 꼬마선배님이 조그맣고 귀여워서 점잖고 착한 어른인 척 눈웃음만 지었다.


꼬마선배님이 손목 잡혔을 때 호신술 어떻게 하는건지 찬찬히 야무지게 알려줬는데 기특해서 나도 모르게 엄마미소가... 마스크 써서 다행이다.



2021 6 22


오늘 고3석찬이가 수련 내내 기력도 없고 반쯤 얼빠진 표정이었는데 체육관에서 그런 태도는 용납이 안되는 모양이다. 사부님이 석찬이한테 정신차려! 똑바로안해! 호통치고 잔소리하면서 군기를 잡았는데, 내가 그 분위기를 웃음으로 무마시킨게 거슬렸나보다. 덕분에 수련 끝나고 한시간을 또 잔소리 듣는다고 앉아있어야했다.


길고긴 잔소리를 요약하면, 내가 체육관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인건 이해하는데, 둘이 수련할 때는 편하게 하는거 괜찮아도 애기들 한테는 자기가 무거운 사람이라고, 애기들 있을때는 분위기 좀 맞춰달라고, 예전에도 몇번 이런 순간이 있어서 얘기할까말까 고민했는데 내 나이가 30살이라서 얘기하는거라고(?) 한다.


폭포수같았던 잔소리를 다 마쳤는지, 서운한거 있으면 지금 얘기해요(?) 삐지지말고(?) 그러길래 1부터 100까지 다 얘기할 수가 없어서 대충 ‘나이가지고 뭐라하지 말라’했더니


“나이가 이런데 어떡해. 나이에 자격지심 있는거 아니야? 본인이 나이에 비해 동안이라고 생각하고 있나보지? 오케이 알았어요. 몇살로 해줄까.”


(???) 이러니까 내가 어이가 없어서 자꾸 헛웃음이 나오지… 그러는 당신은 몇살이요! 하고 나이배틀 신청했더니 “선우씨보다 한두살 많지는 않아요^^~ 인생선배라니까?” 이딴소리


짜증나가지고 오늘 결제한거 환불해달라고 했더니 “구뤠! 환불훼쥬께! 다른 체육관 가봐라~ 여기보다 죠~은 체육관이 세상에 널~리고 널~렸지! 오디 가서 잘~ 배워보쉐요!” 하나부터 열까지 정말 얄미워서 꿀밤한대 씨게 때려주고 싶다.



2021 6 23


들어서니 사부님이 “어 20대 왔어요?” 그런다. 참나, 뭐래. “안녕히 계세요” 하면서 문닫고 다시 나가니 “알았어 알았어. 소~녀! 소~녀라고 하자.” 하면서 또 웃기지도 않는소리. 아 정말 한대 때리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의도치 않게 기회(?)가 생겼다


수련중에 사부님이 어디선가 죽도를 꺼내왔다. 검을 막는 기술이 합기도에 있다나 뭐라나. 참고로 나는 청소년기에 검도 2단을 땄다. 후후후….내가 이 날만을 기다렸다… 한 대 먹여주마!!


사실 때리고는 싶었지만 세게 때릴 생각은 없었는데… 본의 아니게 허리! 기술이 찰싹! 소리를 내면서 제대로 들어가버렸다. 헐. 때리고나서 내가 더 당황해가지고 자동적으로 히엑!!! 괜찮아요?!! 하고 비명을 질렀다.


한 대 때리면 속시원하고 꼬소할줄 알았는데 사람 때리고 기분이 께름칙한게 별로 좋지가 않다. 아마 많이 맞아본(?) 사람이라서 괜찮겠지 싶긴한데. 자기전에 옆구리 쑤시진 않겠지.



2021 6 29


어제는 아파서 운동을 못했는데 오늘은 몸상태가 괜찮아서 출석을 했다.

그런데 앗차! 출석한다고 미리 연락하는걸 깜빡했다.


수련장에 들어서니 주섬주섬 나갈 채비를 하고있던 사부님이 날 보자마자 잔뜩 실망한 목소리로 “뭐야…” 한다. 딱 봐도 간만에 앗싸리 저녁 술 약속 잡았는데 급작스레 나타난 열정 수련생 덕분에 저녁약속에 못 나가게 되어서 흥이 깨진 모양새였다.


사부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필 오늘… 복싱글러브까지 끼고... 주먹 막는법 가르쳐주시면… 그냥 저 때리려는거잖아요…. 정말 너무하시네 (머리 산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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