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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날 쓰겠습니다.

배우 김수현의 눈물을 바라보는 혼란스러움. 3월31일

by 초연

훈남의 배우, 팬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불호의 감정이 없는 배우. 그렇게 잘생긴, 건강한 청년 배우가 티브이에서 대성통곡하며 감정을 쏟아낸다. 사건과 이유는 다들 알고 계실 듯하여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티브이 속 장면을 바라보며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함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혹하는 관심 하나의 꼬투리만 있으면 사실을 확인도 전에 앞다투어 퍼 나르고 퍼져나가는 세상, 누가 그랬다더라 정도의 정보만 잡히면 비웃고 조롱이 넘치는 세상, 공격의 대상이 하나 정해지면 갈기갈기 찢어야 하고, 알몸으로 차디찬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야 직성이 풀리고 옥상 난간의 끝까지 내몰고 떨어지기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참으로 무섭다.

인간관계가 얽힌 모든 곳에서 비난과 혼란만이 남아있다. 정치 문화 사회 예술 모든 곳에서 온기가 사라지고 있다. 틀린 것이 아니라고 다른 것이라고 말하고 가르치지만 내게 보이는 대부분 사람의 행동과 말이 일치되지 못해 보인다. 나와 다른 상대는 마주 보고 대치하고, 욕설하고, 비하하고, 조롱하고, 상처를 주는 것이 일상이다. 아군이 아니면 적군이 되어 언제 나에게 총구를 들이밀지 불안함에 상대를 더 잔인하게 도륙하려고 한다.

정치꾼들은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사리사욕으로 이용하고, 유명 인플루언서라는 사람들은 조회 수라는 성과에 미쳐 돌아간다. 아니면 말고, 수습은 누군가 알아서 하겠지. 책임은 없고 재활용도 힘들 것 같은 혼탕 된 마음만이 넘쳐난다.

혼란스럽고 매우 침울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그 방향을 찾기가 어렵다. 홀로 떠 있는 칠흑의 공간에 작은 랜턴의 불빛이라도 보이길 간절히 기도해 보지만 어둠에 잡힌 랜턴의 불빛은 나에게 닿기 전에 사라져 버리고 만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나는 이 혼란에 질문을 던지고 돌아본다.

‘나는 누군가의 가시가 되어 있진 않았는지’ 답할 자신이 없다. 포장지로 잘 감싸 내놓은 나의 답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진솔함으로 적는다면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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