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폭싹 속았수다. 04월 12일
최애의 드라마가 경신되었다. 임상춘 작가의 ‘폭싹 속았수다.’ 전부터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드라마의 매력에서 당분간은 헤어 나오긴 힘들 것 같다.
제주를 배경으로 했을 뿐, 그냥 우리 사는 이야기인데. 눈물 나게 대사를 쓸 수 있었을까. 베일에 가려진 작가이지만 대략 나이는 40대 초반쯤 됐을 거라는 추측만 있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 작가 양반이 과거 시대상의 감정을 저렇게 명확하게 그려 내는지 놀랄 뿐이다.
글을 쓰겠다고 이것, 저것을 시도해 보고 있는 나에게는 부러움에 더해 시기와 질투도 동시에 일어난다. 내 평생 비슷하게라도 쓰고 죽을 수 있을까? 나에게 저런 재능이 있는지조차도 의문이다. 드라마는 그 장면들의 재미에 빠져 감정이 넘치거나 재미있는 부분이 밈으로 회자하는 정도가 아니면 대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사 하나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소리의 파도가 되어 나의 고막을 자극한다. ‘엄마를 찌르면 내 가슴에도 똑같은 가시가 와서 박혔다.’, ‘그 돌 아드님 가슴에 내려놓는 거예요.’
시기와 질투는 어찌 보면 작가님의 노력보다 원래 천재야 라고 치부해 버려야, 천재성을 타고나지 않은 나의 형편없는 글을 변명할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도 난 또 오늘도 쓴다. 왜 쓰냐고? 그냥 절망도 희망도 없이 쓴다.
쓰는 게 내가 존재하는 이유니까.
임상춘은 되지 못할 것이다. 오르지 못할 나무임이 분명하다.
쓸데없는 희망에 시간은 허비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오르지 못할 나무.
그래서 오늘도 쓴다. 왜 하필 글이냐고?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다. 누가 뭐라 해도 글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다.
달도 보내보고, 뒤집어도 보고, 사랑도 시켜보고 살인자도 만들어보고 나는 제우스처럼 전능한 신이 된다.
그래서 쓴다. 누가 뭐라 해도 써야겠다.
이 기세가 언제 꺾일지는 당장은 모르겠다.
그래도 내 글도 ‘폭싹 속았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