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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날 쓰겠습니다.

사선의 경험_04월 11일

by 초연

새벽이 부산스럽다. 장에선 아우성을 지른다.

밤새도록 화장실을 들락였다. 저녁부터 음식물이 전달되지 않은 위는 흔치 않은 일에 용트림을 쏟아낸다. 그렇게 나의 2025년 국가건강검진이 시작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검진의 항목도 늘어난다. 더불어 나라에서 지시하는 검진도 늘어난다. 심지어 공짜다. ‘공짜면 양잿물도 먹는다.’ 말도 있지 않은가. 굳이 안 할 이유가 없다.

나라에서 허락해 준 검진에 이것, 저것을 조금 더 보태어 신청하고 대장내시경을 위한 약을 받았다. 처음 해본 검사는 아니라 그렇게 당황스럽지 않다. 도리어 몸을 순백의 모습으로 돌려놓는다는 생각으로, 깨끗해진 혈관을 타고 흐르는 혈액들의 즐거움을 느낀다.

이번 검사는 상복부 초음파라는 항목을 개인 비용을 주고 추가했다.

아내가 작년에 똑같은 검사를 통해 잠복된 병증을 미리 발견했다. 그때 검사를 받지 않았다면…. 지금의 글은 과거의 아내를 회상하는 글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도 검사를 받았다.

“전에 간 검사를 받아 보신 적 있어요?” 검사 담당 선생님의 질문이 어둠을 가로지른다.

“아니요. 왜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자세한 건 원장님이 설명하실 거예요.” 그리곤 초음파 기계는 특정 부위를 오래 관찰한다.

불안감이 몰려온다. 불안감은 후회를 만들어냈다. ‘아! 인생 좀 관리하며 살 걸’ 꼭 이맘때 들면 후회되는 일들이 주마등이 되어 스쳐 간다.

과하게 먹은 술, 맛있는 건 왜 다 살이 찌는지 TV에 나오는 건강 프로의 의사 선생님들의 말을 들어보면 세상 먹을 게 없다. 젠. 장.

정밀 C.T를 찍어보란다.

하얀 통에 입출을 반복하며 갑작스러운 생각들이 솟구쳐 올랐다.

내 삶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면 난 그 짧게 남은 생에 뭘 해야 할까? 나가고 나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대략 재산은 이렇게 저렇게 정리하고, 고통이 나를 허락하는 날까지는 그래도 글을 좀 쓰고, 그리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인연들을 만나 안부하고 내 인생 폭싹 속았수다. 그 정도로 하고 정리를 해야겠지? 대략 큰 틀은 그렇게 정리했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남은 삶을 결정할 30분쯤의 시간이 흘렀다.

그때까지도 발걸음은 무겁지 않았다. 의사와 대면하기 전까지.

“… 흠.”



“간에 혹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지금은 치료도 안 해도 돼요 자주 지켜보세요.

술 좀 줄이시면 좋겠어요.”

그때야 돌아서는 모습의 찰나에서 눈물이 주룩 흐른다. 딱 한 방울.

오늘은 축하의 의미로 와인을 한잔해야겠다. 딱 오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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