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P 110/ 80, BT 37° 바이탈사인 안정적」
종일 쳐다본 주광색 빛이 피로를 가중한다. 가끔, 정말 가끔 눈꺼풀을 깜빡여 빛을 차단한다. 조금은 피로감이 감소한다.
단출한 일상에 검은색 점이 날아든다. 하찮게 보이는 존재도 살기 남기 위한 몸짓을 서슴지 않는다. 검은 점을 쫓다 보면 잠시는 지루함을 잊는다.
좌, 우 최대 볼 수 각도는 130°,
최대 선점 가능 공간 3평.
몸 주위를 둘러싼 온갖 의료 장비들이 생명 신호를 숫자로 치환한다.
소리만이 의미있는 TV에선 세상의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아! 이제 그만 가야 할 건데.’
양가가 쉬지 않고 떠든다. 오늘은 무언가에 심산이 꼬인 것인지 아침부터 말이 길고 거슬린다.
“김 씨 이제 담배 좀 끊어. 냄새나지, 돈 쓰지, 백해무익한 그게 뭐가 좋다고. 이제 건강도 생각해야지.”
연기와 함께 퍼지는 매캐한 냄새가 싫은 것인지 내 건강이 걱정되는지 모를 일이다. 반응 따위를 개의치 않는다. 저세상으로 떠난 부인이 살아 돌아와 옆에 앉은 듯 잔소리를 뱉어낸다. 본인은 담배를 끊고 쾌적하고 건강을 지향하는 삶을 유지한 지 10년이 넘었다고 슬쩍 양가는 끈기와 우위를 자랑삼아 얹는다.
나는 옹골찬 논리로 반박한다.
“양가야!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이 좋은 걸 왜 끊어. 나는 딱 칠순까지 살면 그만이야 그때가 되어도 염라 앞으로 가지 않는다면 난 스스로 갈 생각이네, 더 살 이유도 없고……”
90세도 청춘이라는 세상. 70세면 남보다 20년은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 오래오래 똥칠도 하면서 살아라. 나는 인제 그만 갈 터이니.’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다. 매일 똑같은 하루는 무료하다. 기껏 이리저리 방황하고 다른 길을 돌아봐도 되돌아간 곳은 공원. 그곳에서 시답잖은 정치 이야기와 자식 자랑이 주 화제다. 한바탕 싸움 구경이나 하고, 새우깡 봉지로 모여드는 비둘기 밥이나 주면서 시간 보내기가 하루의 일과다. 기대할 것 하나 없고 간절할 것 하나 없는. 오래는 살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루 어떤 시간도 늙은이를 반기지 않는다.
“언제나 갈라나?”
무심코 읊조리듯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는 몸을 서서히 일으킨다. 발목 밀고 당기기를 몇 번 시도한다.
갑자기 움직여서 오는 쇼크를 방지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다.
그리곤 햇반과 자식들이 사다 놓은 반찬으로 아침을 대략 지운다. 반기는 이도 없지만 당장은 이만한 만족감을 대신할 수 없는 공원으로 출근한다.
항상 먼저 다가와 잔소리를 늘어놓던 양가가 보이지 않는다. 내 흡연을 지적하던 두 살쯤 어린 청년 노인네. 한 무리가 모여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양 가는 자식들이 효도 선물한 가장 최고급 패키지 건강검진에서 폐암이 발견되었단다. 그래서 죽을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신기한 건 폐암이 생긴 걸 알고부터 호흡이 가빠지고 갑자기 상태가 나빠졌다고 한다.
희한하게 몸이 병을 기다린 긴 것처럼.
그날부터 인공호흡기 힘을 빌리지 않으면 이미 이승의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가망이 없는 청년 노인은 호흡을 돕는 장치를 언제 떼어야 할지 결정의 시간이 문제다. 남은 건 가야 할 좋은 날짜를 정하는 것뿐이라고.
좋은 날짜 개념은 남은 자들이 편의를 위해 만든 것이다. 지랄 맞은 날씨도 안되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이동하기 딱 좋은 날씨.
“양가야! 그것 봐라, 세상이 맘대로 된다더냐 다 팔자야 팔자. 먼저 가서 터나 잘 닦아 놓으시게.”
하늘을 적색 점층으로 물들게 하는 석양과 함께 집 앞 마트에 들렀다. 저녁밥을 대신할 시판용 냉동 피자를 하나 집어 들었다. 자식들이 사다 놓은 반찬의 종류는 무염이거나 건강식 풀 쪼가리 들이다. 평생 먹던 맛을 늙은이가 되면 바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면 하도 이래라저래라 떠들어 대는 의사들 말을 실천하는 것일 수도. 어디에 좋다더라는 문구가 하나쯤 쓰여 있어야 효도한다는 마음의 안식을 가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나는 샐러드보다 피자, 햄버거를 선택할 것이다. 나 죽은 뒤 제사상을 차린다면 내가 좋아하던 것으로 올려달라고 죽기 전에 유서를 남길 참이다.
“홍동백서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고, 좌피 우햄 (좌는 고르곤졸라 치즈 피자, 우는 쉑쉑버거) 당도가 충분한 붉은 띠 콜라와 탕국 대신 에스프레소 한잔이면 충분하다고.”
그렇게 고요한 잠자리에 든다. 유난히 왼쪽 손가락의 거스러미가 신경을 거스른다. 늙어 수분이 빠진 피부는 늘어지고 거스러미의 빈도도 늘었다. 모든 신체 신호가 긍정보다 부정이 늘어 간다.
‘이제 슬슬 가야 하는데…’
그렇게 남은 시간을 알 수 없다.
「삐 비비 삑」 바코드 비프음 소리가 정적을 깬다. 다이소에서나 듣던 흔한 소리지만 이 새벽에 어울릴 소리는 아니다.
“누락 망자 번호 맞고 이름 김. 용. 구.”
그리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바코드 소리를 제외한 의문스러운 소리의 정체는 대략 감이 온다.
“드디어 그날이 온 건가? 이제 진짜 가는 건가.”
기다리던 때가 왔다. 마음을 가다듬고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눈을 뜬다. 눈앞의 모습이 익숙하다.
“아니 이게 누구야 양 씨 아니야? 그새 요단강을 건넌 건가?”
질문이 꼬리를 물고 늘어난다.
“삼도천을 건너면 기억을 잃는다는데 어찌 나를 기억하는가? 49일 동안 일곱 개의 지옥에서 재판을 받던가? 천국과 지옥이 실제로 존재하던가? 자네도 먼저 죽은 부인을 만나고 싶다더니 어떻게, 만났는가?” 묻고 싶었던 사후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지만 당장 기억나는 몇 가지 질문만 했다. 양 씨는 대답 대신 헛웃음을 한번 크게 짓는다. 그러고 보니 양 씨의 신수가 훤하다. 내가 예상했던 갓과 도포를 착용한 저승 차사 옷차림이 아니다. 흰색 클래식 중절모를 시작으로 발끝까지 백구두로 멋을 낸, 착용감이 몸에 딱 맞아떨어지는 맞춤 멋이었다. 가슴 안쪽 주머니에서 순백 종이에 검은 글씨로 쓰인 명함을 꺼내어 내민다.
든든한 후반 인생, 최고의 망자의 길 안내자.
저승차사 양 구득
“미안하지만 다른 질문은 직업상 비밀 유지 위반이라 대답할 수 없네, 막상 가보니 이승의 부인은 찾을 필요가 없었네, 그곳은 새로운 세상이야. 내 옷을 보면 대충 느낌이 올 것 같군.”
그리곤 자신이 호흡기를 떼어내 죽을 날부터 차사가 되기까지 과정을 설명했다. 설명 끝은 나에게 온 목적이었다.
10인치쯤 크기의 세련된 마크가 돋보이는 디지털 패드를 내밀었다. 명함과 같은 로고가 찍힌 디지털 패드를 내미는 것으로 보아 저승도 내가 알던 ‘전설의 고향’의 시절과는 큰 변혁이 있었던 것 같다. 신기하고 황당한 모습에 내민 패드에 시선이 멈춰 있다.
“아! 이 로고는 저승을 대표하는 로고라네. 스티븐 잽스 라는 차사 PM이 만든 로고지 본인이 살아 있을 때 애쁠의 수장이었다나. 최고의 혁신가 중 한 명이었다더군. 그분이 수기로 기록하던 저승 시스템을 전면 자동화 시스템으로 교체했다네. 너무 급하게 만든 시스템이라 오류가 좀 많긴 했지만. 일은 효율적으로 바뀌었지 지금은 그 오류를 수정하는 중이고.”
망자 명부를 전산으로 교체하며 종이 데이터들을 빅데이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저승 개발자들이 밤을 새워 일을 해도 늘어나는 망자의 숫자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자네는 이미 진작에 저승으로 왔어야 했다네. 자네 같은 사람을 누락자 시스템에 올리고 난 그들과 협상한다네. 자네는 내 친구이기도 했으니 내 특별히 선택지를 주는 거야 반드시 고심해서 선택하게.”
원래 알던 양 가의 모습이 아닌 저승 차사 다운 능숙한 설명이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분명했다.
김용구 고객님께 저승 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아래 항목에 √ 선택하세요.
이승이 낫다 패키지.
□ 저승의 T.O가 날 때까지 이승에서 지낼 수 있습니다.
(단, 기간은 미정이며 눈만 활성화 가능)
다음 인간으로 환생 기대 패키지.
□ 신규 살생부를 작성하고 저승행. (일곱 개의 재판 시 최고의 차사 로펌 선정 보장.)
*환생은 49일 동안 7번의 재판 결과에 따름 (현 인간 환생률 1% 내외.)
선택지라고 준 것이 나를 위한 것인지 매우 의뭉스럽다. 자기네들의 실수를 덮으려고 뻔한 꼼수를 부린 듯한 내용뿐이다. 딱히 선택지에 손이 가지 않는다.
“내가 선택하지 않으면 어찌 되는가?”
“글쎄 현재까지 그런 경우는 없었지만, 무작위로 선택이 되지 않을까? 김 씨 자네가 왜 고민인가? 매일 오늘 내일 가고 싶다고 떠들지 않았나? 고민할 것도 없이 2번을 선택해야지.”
‘허! 양가 이놈 봐라.’
그래도 내가 두 살은 더 살아본 형님으로서, 양가 놈 수가 뻔하게 보인다. 내가 선택하지 않으면 제일 곤란할 놈은 네놈일 것이다.
‘이번 판 주인공은 나다 양가 놈아.’
“그래 가야지. 암, 가고말고.”
과다한 양 빛 때문에 눈이 부시다. 손으로 가려보지만, 이승 빛과는 농도가 다르다.
왜 하필 꾸물거리는 모양으로 만들었을까? 의문이 든다. 천장 흰색 텍스타일 10 여장 주위로 주광색 빛은 하루살이 생명을 유혹한다. 그리고 하루밖에 안 되는 생명 단축을 재촉한다. 손가락 거스러미가 거슬리지만 내 능력 밖의 일이 되어 버렸다.
“얼마나 사실 수 있나요?”
“글쎄요 뇌 영역을 제외한 신체 능력은 살아 계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사시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
공감 능력이라곤 1%도 갖추지 못한 의사 놈이 대답하지 않는다. 속에 있는 말을 뱉었다가 되돌아올 책임 늪에 빠지길 거부하는 연륜이 묻어난 최선을 다한 대답이다.
이승 흔적인 자식놈들이 상의를 시작한다. 서로의 눈치를 볼 뿐 마음의 소리가 표정에 쓰여있다.
“의사도 그렇게 말하잖아. 이렇게 사는 게 뭐 의미 있어? 병원비도 그렇고….”
막내놈이 먼저 마음에 있던 소리를 끄집어내어 놓는다. 공평하게 유산을 분배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죽어가는 늙은이에게 기대할 게 남아 있다는 것으로 존재감을 완전히 지우지 않았다.
돌아온 세상에서는 나의 선택이 반갑지 않은 눈치다.
이승에선 짐이 되었고, 저승에선 누락자가 되었다.
130°의 시야에서 며칠을 지켜본 하루살이는 신기하게도 하루를 살지 않았다.
주광색 빛 근처를 크게 벗어나지도 않았다. 곧 죽을 것을 알면서도 떠나지 않았다.
세상을 볼 용기가 없든, 선택지가 없든.
그렇게 TV 속에선 전두엽을 자극하는 안락사 합법 소식이 들려온다.
“아! 정말 언제나 갈라나.” 마음에 없는 거짓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