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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팽은 희망을 싣고 어디로 갈까?

by 초연

“공격받는 것으로 착각했어요. 그거, 그거, 왜 그거 있잖아. 그래, 그래, 그거…… 정. 당. 방. 위 그래, 그거 아 요새는 말이 입에서 맴돌기만 해”

발밑으로 용의자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쓰러졌다. 고의성은 없었다. 미안한 마음이 몰려온다.

나를 공격하려는 것으로 의심했다. 누구나 또 그 상황과 대면했다면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목숨을 보호해야 한다는 방어기제. 본능이니까. 본능을 소유한 인간이니까.

단지 도구를 사용해 반격했다는 것 이외는.

눈이 마주치고 나에게 점점 다가올 때 그 공포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무의식의 반응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양·우산을 집어 들었다. 한 뼘이 조금 넘는 양산 기능을 겸비한 3단 자동 우산의 버튼을 눌렀다. 처음은 방어였고 두 번째는 위협이었고 마지막 카운터펀치는 거리 조절 실패였다. 하필 취향이 강하게 반영된 전체가 네이비색으로 이루어진 흰색 땡땡이 무늬 포인트로 나름 멋을 부린. 나름 심사숙고해서 고른 아끼던 양·우산인데. 중심을 이루는 우산대는 살짝 휘어진 듯하다. 아끼던 나의 양·우산도 제법 피해가 큰 만큼 상대에게 중력가속도를 포함해 전해진 위력이 작지 않은 것 같다. 상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꼼짝하지 않는다.


차량 라이트의 눈부심에 밤과 아침의 구분이 없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쉼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는 어디로 가려는지 그 목적지를 모른 채 계속 반복된 구간을 맴돈다. 맹렬한 속도로.

‘오늘도 최선을, 행복한 내일이 기다립니다.

쿠팽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가보지 않은 내일이 행복한지는 모를 일이다. 여기는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의 개념과 동일한 시간을 가지지 않은 1,200명이 출근하는 일터다. 새벽 통근버스에서 하차와 동시에 상·하차, 분류, 포장, 검수 등으로 인원 분류가 이루어진다. 하루가 바뀌듯 사람도 매일 바뀐다. 간혹 낯이 익은 사람들도 있다. 나는 정해진 인원을 채우고 그날의 할당된 배송량을 처리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길어야 이곳은 11개월이 제공할 수 있는 최대의 노동시간이다. 뻔하지만 쉽게 뱉을 수 없는 이유가 존재한다. 노동의 숙련도가 필요하다고 해도 제한적 근무는 이 회사의 사칙이다. 내가 굳이 나서서 바꿀 이유도, 그렇다고 11개월의 근무가 업무에 큰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단일 근무자가 11개월의 근무자의 숙련도를 넘어서기도 한다.

똑같이 반복되는 일은 단일 근무자라도 하루 30분이면 숙련공의 모습을 뽐내는 것이 충분한 일이다.

그리곤 모두 10분간의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다시 50분의 반복으로 뛰어든다.


“알아서들 하겠지.” 담배 연기와 폐부를 찌른다.

흡연실의 자욱한 연기 속에서도 휴대전화를 들여다볼 뿐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말을 걸거나 하는 일은 흔치 않다. 나 또한 같은 행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일의 마지막은 언제나 ‘수행 완료 명령지’에 당일 수행자의 이름을 표기한다. 만일에 있을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 일은 힘든 편에 속한다는 평가가 이어지지만. 가끔 방송의 극한의 대명사로 소개되는 일도.

대신 1분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근무 50분과, 10분의 휴식 제공을 알리는 종소리, 제한 1시간 30분 만이 존재하는 5첩과 양의 제한이 없는 풍성한 점심 식사, 주휴 수당을 포함한 최저시급을 약간 웃도는 급여, 근무 후 2주마다 단 하루의 일정도 어기지 않는 급여 입금. 단 그것들 때문만이라고 할 순 없지만 일 근무 인원 대략 1,200명을 채우는 것 그리 어렵지 않은 나름대로 인기 있는 일자리다.


내가 이곳에서 이 업무를 한지는 3년쯤 되었다. 주된 업무는 인력을 분류하고 관리하는 일. 복잡하고 사람 많은 강남의 한복판 본사에서 근무한다. 출퇴근 시간도 줄일 겸, 점점 작아지는 나의 존재감에 이곳으로 발령을 신청했다.

나의 선배들도 거쳐 간 자리다. 이곳에서 대략 앞으로 5년, 길면 7년쯤 똑같은 매일을 보내다. 퇴직금을 정산받고 운이 좋은 해라면 퇴직자 이름이 새겨진 감사패와 금 몇 돈을 받고 나가는 게 순서다. 그러나 요새의 매섭게 치솟은 금값을 보았을 땐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또 다르지 않은 하루의 반복이다. 그래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것일지도.

아침 출근 근로자의 업무를 분담하고, CCTV를 보고 장시간 자리를 비우거나 지나치게 휴대전화 활동을 하거나 하는 불성실 근로자에게 마이크를 사용해 경고하는 것. 경고라고 해봐야 “7번 라인 물품 밀립니다. 계속 이 상태면 오늘 휴식은 없습니다.” 듣는 상대도 믿지 않는 거짓이 경고일 뿐.

간혹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큰일은 10개월 차에 접어드는 이곳에선 장기 근무자에 속하는 근무자들과 면담을 진행하고 한 달 뒤의 고용 해지를 예고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런 행위를 노동의 유연성이라 보고서에 작성한다.

그리고 해지 통보서에 사인과 직인을 남기고 서로의 약속을 반으로 나눈다,

고용노동부의 불법 노동 위법행위를 피하려면 약속의 증표는 반듯이 보관해야만 한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양해는 잊지 않고 한다. 더불어 지금 상황의 유감 표현도 같이.

이미 그들도 오늘의 만남의 안건을 사전에 알고 있다. 회의실에 들어올 때 이미 장기 근무자들은 볼펜을 「딸깍」 거리며 문턱을 넘는다. 이 행위를 이미 몇 번 친 사람들도 있고, 사전에 암묵적으로 합의된 정보가 서로 공유되어 있다. 그런 이유로 큰 다툼이 발생하거나 언쟁이 오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매일매일의 사실을 받아들이고 시간이 흘러가고 또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우고 한 달쯤 지난 뒤에는 같은 사람이 다시 11개월의 근무를 하기도 하고 그런 일의 연속이다.

“… 알아서들 살겠지. 내 코가 석 자다.”


근로 종료 예정 근무자 명단 총 1명

성명:정 O주 주민번호:050311-*******

3월 24일 부로 고용 해지 통보.



이번 달 명단이 인트라넷을 통해 전달되었다. 이름이 낯설지 않다. 그러나 기억 공간을 아무리 뒤져봐도 명확한 정체의 파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제 일도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무슨, 나이는 아들과 같네.” 스스로 기억해 내지 못하는 기억의 한계를 나이 탓으로 돌린다.


담배 하나를 건네준다. 비흡연자라고 한다. 정말이냐고 묻는다. 한 번 더 권해 본다. 정말 괜찮다고 말한다. 담배 한 개비를 손에 들고 권하고 사양하는 모습이 끝나지 않는 굴레에 접어든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정말 괜찮은데 조그맣게 읊조리고 그 고리를 끊어낸다. 안부를 물어보는 것으로.

“한주야 아버지는 잘 계시지?”

얼굴을 확인하고 난 후는 기억 공간들의 퍼즐이 움직인다. 아들의 친구이면서 몇 번 집에서 마주한 적도 있다. 아주 어릴 적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 다니던 시절에는 한주 군의 아버지와 목욕탕에서 마주쳐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바나나맛 우유를 나눠 먹으며 안부를 물은 기억도 있다.

비흡연자라고 말한 이유는. 친구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예의쯤일 것이다. 그렇게 말을 이어간다.

“한주야 너도 잘 알지 여기는 11개월이 네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근무란 것.”

“그럼요 아저씨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퇴사 후는, 군대는, 대학은, 다양한 질문이 목구멍을 넘어 소리의 형태로 나오려 하지만 그냥 삼킨다.

정해진 약속 용지에 사인과, 직인을 날인하고 반씩 나눈다.

그리곤 빼먹으면 안 되는 고용노동부에 책임을 떠넘기는 고지 멘트를 행한다.

그래도 한주에게는 퇴근 후 오르는 통근버스에 손을 흔들어 주는 하나의 행위를 추가했다. 아들 친구라는 이유로. 퇴근길을 같이 가길 권해볼까 고민했지만, 그 또한 목구멍 안으로 집어삼켰다. 혹시나 “감사합니다” 하고 내 차의 옆자릴 올라탄다면 남은 한 달의 기간을 그렇게 불편한 동거를 해야 할 것이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에어팟을 장착하고 나는 MBC 95.9를 듣게 될 것이다.

뉴스와 세상 재미없는 정치 이야기가 주로 나오는 시간대에 꽉 막힌 퇴근길 도로. 하나의 공간에서 다양한 소리가 존재하는 상황은 달갑지 않다. 그리고 한주가 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없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글로벌 시장의 침체와 휴머노이드의 보급으로

쿠팽은 분골쇄신의 심정으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가족 같은 직원에게 하기 내용을 통보합니다.

희망퇴직신청 예정자 명단 총10명

성명:김한범 주민번호:750917-*******

3월24일 부로 고용종료

희망퇴직신청서를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추후 절차는 인사과의 안내를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남은 아파트 대출, 한주의 친구이자 아들놈의 학비는, 이럴 줄 알았으면 새 차 출고는 하지 않는 건데. 마누라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먼저 나가야 할 돈들이 머릿속으로 계산되었다.

그리곤 내가 받을 퇴직금과 정리해고를 통한 수당들을 꼼꼼하게 계산했다.

“그래 뭐 한 5년 빨리 관둔다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가, 족같은 쿠팽” 심장에서부터 차오르는 울화가 느껴진다. 얼굴이 열이 차오르며 날씨와 상반된 더위가 느껴진다.

담배의 불은 유난히 붉고 연기가 유독 맵다. 목구멍에 걸린 가래침을 한껏 모아 집하장 바닥을 향해 뱉어낸다.

「학, 퉤」

그리고 모른 척 지나간다. 마치 완벽한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이제 제법 태양의 힘이 강하다. 반팔과 반바지로 맨살을 들어낸 무리들이 꽤나 보인다.

중년의 나에겐 아직은 무리인 것 같다. 제법 찬기운이 느껴진다.

출근 정장 복장을 유지하고 근처의 도서관으로 향한다.

특별하게 정해진 목적지가 없다.

나와 같은 복장을 하거나 좀 더 편한 복장을 했거나의 차이가 있을 뿐 도서관 문이 열리자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각자 해야 할 일들을 분주하게 준비한다.

인강을 시청하거나, 꽤 두꺼운 자격증 도서를 뒤적거리거나, 신문을 보거나, 일광욕을 즐기며 춘곤증을 해소하거나. 다들 주어진 시간에 적응하고 무언가 할 일들을 찾은 것 같다.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다.

해가 차고 달이 차고, 해가 지고 달이 지고.

이맘때면 옅은 자줏빛으로 절정을 지나 기한을 다한 벚꽃도. 열기와 한기가 뒤섞인 공기도 그대로다.

그렇게 출근의 거짓을 포장한 복장과 같이 매고 나온 가방에서 새우깡 한 봉지를 꺼낸다.

허기를 달랠 목적과, 심심함을 달랠 목적이 공존한다. 큰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도서관 앞 벤치의 룰을 미처 몰랐던. 서툰 초보자의 실수가 사건의 발단이 된다. 과자 봉지의 바스락 소리를 부주의했다.

그렇게 나와 눈이 마주친 비둘기가 저공비행을 하며 다가온다.

조국의 승리를 외치며 죽음을 강요하던 ‘가미카제’ 특공대를 연상시킨다.

방어와 위협과 실수가 작동한다.

바스락 소리만으로 새우깡의 순한 맛과 매운맛을 구분하는 그들이 점차 포위망을 조여 온다.

매운맛을 꺼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

지원하는 동료들의 숫자가 늘어난다.

모여든다.

한참을 미안함으로 지켜본 그 녀석도 깨어난다. 양·우산의 타격으로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다행히 다시 걷기를 시작한다. 바로 원래 목표의 행동을 다시 시작한다.

새우깡의 집착을 들어낸다.

다행일까?

새우깡 한 줌을 바닥에 던져주고 일어난다.

그렇게 여름이 봄을 밀어내는 환절기다.

그리고 돌아선 공간에 한주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아주 맛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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