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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kuen Kim Mar 02. 2018

삼일절날 일본인들과 술자리

오키나와 사람들도 일본 사람이다

"류큐 왕국의 역사를 가져 일본 본토 사람들과는 다른 문화를 가진 오키나와

그러나 어디까지나 오키나와는 일본이고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이다."



오키나와시 이치방가이(一番街)라고 하는 아케이드 상점가 끝자락에 미야기 스토어라고 오래된 슈퍼가 있다. 60년 가까이 운영을 해 온 슈퍼로 오키나와의 옛 상점들 답게 일반 슈퍼에서 팔지 않는 미국 과자들과 오키나와 슈퍼의 인기 메뉴인 각종 도시락류들을 판매하는 곳이다. 이곳이 유명한 것은 슈퍼 한쪽에 7~8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테이블 옆의 냉장고에서 마시고 싶은 술과 음료를 꺼내 테이블 중간에 앉아 있는 주인아저씨에게 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그 자리에서 산 술이나 음료를 테이블을 이용해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윤타쿠(ユンタク;오키나와의 방언으로 수다와 비슷한 의미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말함)의 장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한국 찌개 요리를 맛보고 싶다고 해서 삼계탕과 부대찌개를 준비해서 같이 먹은 적도 있고 저녁에 술자리가 있는데 시간이 애매한 경우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맥주 한잔 냉장고에서 꺼내 먹는 편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삼일절이었던 어제저녁 모아이(계모임, 오키나와는 아직도 계모임이 활성화되어 있다)가 있어 같이 참석을 하는 분을 기다리면서 가볍게 술 한잔 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는데 이미 연세가 있으신 세분의 아저씨들이 술을 마시면서 TV에서 나오는 뉴스에 대해 의견을 나누며 윤타쿠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한국에 대해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뉴스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삼일절 연설을 보여주면서 일본에 대한 역사인식에 대해 강하게 문제의식을 어필하는 내용이 소개되자 자리에 있던 한 아저씨가 "김상 그거 알아? 위안부 있잖아 그거 일본 정부가 한 게 아니고 야쿠자들이 강제로 인신매매해서 시킨 거라고" 나 역시 올 게 왔구나 라는 생각에 "아 그래요, 뭐 여러 가지 말들이 있겠죠..."라며 일부러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식의 표정으로 대꾸를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옆에서 술을 마시던 평소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분께서 다른 테마로 말을 돌려 나에게 질문을 해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럴 때면 왠지 기분이 묘해진다. 오키나와도 어찌 보면 태평양전쟁의 피해자이고 강제징용의 역사를 가진 곳으로 일본 본토를 야마토, 자신들을 우치나-라고 구분해 부를 정도로 역사적으로 아픔이 있는 곳인데 이럴 때면 아~역시 오키나와도 일본이고 여기에 사는 사람들도 일본인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일본의 다른 지역은 잘 모르겠지만 사실 한국사람들에 대해 친근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실제 10년 가까이 살면서 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데 차별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지만 가끔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정치적인 이슈로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하는데 즐겁게 술 한잔 하는 자리에서 굳이 그런 말을 꺼내 분위기를 깨는 언행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실제 모아이(계모임)에서 위안부 합의 파기를 두고 "한국은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약속을 그렇게 쉽게 깨느냐?"는 이야기로 눈살을 찌푸린 적이 있고, 페이스북 친구였던 평화를 노래하던 유명한 뮤지션은 "한국은 정말 말하기도 지겨울 정도로 거짓의 나라"라는 코멘트로 친구 끊기 버튼을 누른 적이 있다.  


오키나와 방언 중에 "이챠리바 쵸데"(イチャリバチョーデー) 라는 말이 있다. 

한번 만난 사람은 누구나 형제라는 의미로 사람과 사람의 만남 자체에 큰 의미를 두는 오키나와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그냥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 많은 오키나와 사람들이 친절하고 낯선 이들에게도 쉽게 다가와주는 모습을 갖고 있어 외국인으로 살아가기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삼일절 날의 술자리가 운이 나빴을 수도 있겠지만 정치적인 이야기는 일본 사람들과는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굳은 신념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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