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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소년 Sep 04. 2024

10. 와펜

표선해수욕장-공항 / 와펜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을 더 샀다. 파라솔에 앉아 바로 다 마셨다. 옆 의자에 놓인 배낭을 본다. 희한하다. 그렇게 뛸 때는 배낭의 무게를 느끼지 못했는데 와펜을 사고 나와서야 비로소 배낭의 무게가 등에 얹혔다. 무거운 바위를 등에 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급박한 순간, 의식은 무엇이 더 중요한지 판단하고, 그것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것 같았다. 선택과 집중. 이것을 ‘주의’로 부는다는 것을 어디에서 본 것 같다. 네이버 두산백과에서는  ‘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외부 환경이나 개체 내부로부터의 많은 자극 중 특정한 것을 특히 분명하게 인지(認知)하거나 특정한 것에만 반응하거나 하는 마음의 선택적 ·집중적인 활동 및 상태. (네이버 두산백과)          


 문제가 해소되자, 주의는 마법처럼 풀리고 의식은 모든 자극을 받아들였다. 와펜을 구매하자 의식은 집중을 해제했다. 그리고 남는 건, 그에 상응하는 대가였다. 와펜 구매를 위해 남은 에너지를 달리는 데 다 소비했다. 연소된 에너지는 피곤이라는 찌꺼기를 남겼고, 그 피곤이 지금 온몸을 급습하고 있다. 몸은 더욱 지치고 무거워졌다. 무릎도 조금 삐꺽거린다. 지친 몸을 이끌고 표선 해수욕장으로 갔다. 왔으니 한 번은 봐야겠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해변에 있는 벤치에 앉아 하얀 모래사장을 봤다. 그러나 어떤 느낌도 없다. 지치면 자극이나 감정의 문도 닫히나 보다. 5월이라 그런지, 넓은 해변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황량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일반적인 해수욕장은 해변이 바다를 따라 길게 이어진다. 여기는 아니다. 해변이 큰 호를 그리며 내륙으로 들어가 있다. 고운 하얀 모래가 호를 채우고 있다. 이 모래는 어디서 온 것일까? 대부분의 해변은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이룬다. 태풍과 같은 강풍이 아니라면 바닷물이 육지로 들어올 수 있는 마지노선 같은 곳이 해변이다. 그럼, 바닷물이 여기까지 들어오나? 지금은 썰물 때라 바닷물이 빠져 저렇게 하얀 모래가 드러난 것일까?          


(좌 : 바닷물이 빠진 표선 해수욕장 / 우 : 바닷물이 채워진 표선 해수욕장)

 제주공항으로 가는 버스와 정류장을 찾기 위해 카카오맵을 열었다. 표선 해수욕장이 항공사진으로 보였다. 항공사진에는 표선 해수욕장이 바닷물로 채워져 있다. 바다의 짙은 남색은 해변에 닿아 엷어지며 에메랄드색으로 풀어졌다. 호 안으로 들어간 바닷물은 에메랄드색마저 서서히 뺐다. 그래서 맑고 투명한 밀물에 주름진 바닷물이 호를 채웠다. 무척 아름다웠다. 멋진 남색의 그러데이션이었다. 어느 날 해변이 잘 보이는 카페에서 해변이 바닷물로 채워지고 비워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소소한 즐거움이 될 것 같다.           


 만약 카카오맵을 열지 않았다면 모래사장으로 가득한 지금의 모습을 표선 해수욕장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바닷물이 들어온 아름다운 모습에는 무지했을 것이다. 보는 것은 순간이고, 그 순간이 모든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기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본 것은 많은 면의 일면일 뿐, 이에 대한 자만은 많은 것을 잘못된 이해로 이끌 수 있다. 밀물과 썰물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는 해변에서 내 지식 또한 일면이지 않을까 자문해 본다.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저녁을 먹을까? 몸이 너무 지쳐 밥이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공항에서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제주공항까지 가는 121번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갔다. 다행히 정류장은 가까이 있었다. 10분 정도 기다리고 버스를 탔다. (2024. 5. 24)      



 돌아와서 와펜을 봤다. 와펜의 문양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각 코스의 종착 스탬프에는 코스와 관련된 문양이 새겨져 있다. 그 문양이 무엇인지는 올레 패스포트에 간략히 명시되어 있다. 이 문양을 와펜으로 제작했다. 이번 올레를 걸었던 코스의 와펜 문양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본다.      

 

 1. 21코스는 별방진이다. 별방진은 마을 길과 해변 길이 만나는 하도 포구에 있다. 아래는 별방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다.     


별방진(別防鎭)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 있는 조선 시대 축조된 방어성(防禦城)이자 성곽시설 유적이다. 197443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4호로 지정되었다. 별방진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주목조 및 관방(關防)조에 기술된 바 있다. 조선 중종 5(1510)에 제주 목사 장림(張琳)이 외부인의 침입을 경계할 수 있는 성을 쌓아 지은 뒤 금령(현재 김녕金寧)의 방호소(防護所)와 수전소(水戰所)를 연계해서 이를 별도로 이곳을 가리켜 별방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조선 헌종 14(1848)에 목사 장인식(張寅植)이 보수 및 관리한 바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중에서도 유독 의미가 있는데 일제 강점기 시절 제주도의 환해장성이나 별방진 같은 관아와 도민이 함께 이루어낸 역사(役事)이자 고유한 지리적 영역성을 갖는 역사적인 건축물이 민족의 정체성 그리 단합을 고취시키고 일깨운다고 판단해 1910년 조선총독부의 1호 법률인 조선읍성 훼철령에 따라 읍성들이 대거 철거되고 대부분 훼손되어 제 모습을 잃었던 암울했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그것이다. (나무위키 참조)     


 별방진에 갔을 때 해안 쪽으로만 성벽이 있고 내륙은 사라지고 없어, 개발로 인해 허물어졌나 했다. 그러나 글을 보니, 일제 강점기 때 도민들이 뭉쳐 항일운동으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일제가 강제로 허문 것이었다. 성벽 자체가 아픈 역사적 흔적이었다.

(별방진/ 21코스 와펜)

2. 1코스는 시흥초등학교다. 1코스는 올레 시작 코스이고, 1코스 시작점은 시흥 정류장이다. 시흥 정류장 옆에 시흥초등학교가 있다. 항공사진을 보면 초록이 뒤덮은 곳에 유일하게 흙으로 된 곳이 보인다.     

 

( 원 안이 시흥초등학교다 -사진: 카카오맵/ 1코스 와펜)

3. 1-1코스는 우도 해녀다. 해녀인 이유는 아마 해녀항일운동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우도 천진항에 ‘우도해녀 항일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제주 해녀 항일운동은 성산과 우도, 구좌 해녀들을 중심으로 일제의 생존권 수탈에 항거하여 일으킨 운동이다. 이들은 혁우동맹산하 하도 강습소 1기 졸업생들로서 야학을 통해 민족교육을 받았던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고차동(고순효), 김계석 등의 해녀 대표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 운동은 청년 민족운동가들과 연계하여 제주해녀항일운동을 단순한 생존권 투쟁의 차원에서 항일운동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데 공헌하였다.

(해녀에 의한 제주도 항일운동 /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우도해녀항일운동기념비-사진 :카카오맵 ; https://place.map.kakao.com/8020109 /1-1 코스 와펜)


4. 2코스는 노랑부리저어새다.      

 

가리새라고도 한다. 몸길이 약 86cm이다. 수컷은 겨울깃이 흰색이다. 눈 언저리와 턱밑, 멱의 중앙은 피부가 드러나 있다. 여름깃은 뒷머리에 긴 다발모양 노란 장식깃이 있으며, 목 아랫부분에는 노란빛이 도는 갈색 목테가 있다. 암컷이 수컷보다 약간 작고 뒷목의 장식깃도 없다. 다리는 검다. 부리는 노랗고 끝이 평평한 주걱모양이다. 습지나 넓은 평지 물가, 하구 등지에 내려앉는다. 못이나 습지에 가까운 숲 또는 호숫가 풀밭에 집단으로 번식한다. 한배에 35개의 알을 낳는다. 물고기·개구리·올챙이·조개류·연체동물·곤충 따위의 동물성 먹이와 습지식물 및 그 열매를 먹는다. 한국에서는 낙동강 하구에서 몇 차례 잡혔을 뿐인 희귀한 새이다. 1968531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2012531일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구북구 일원에 분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노랑부리저어새-사진 : 픽사베이 / 2코스 와펜)

 노랑부리저어새는 철새라 겨울을 제주에서 난다고 한다. 겨울에 이곳을 걸을 때 볼 수 있으면 좋겠다.     


5. 3코스는 통오름이다. 통오름은 3-A 코스에 있다. 나는 3-B 코스를 걸어서 보질 못했다. 정상에 오르면 한라산 전경이 잘 보인다고 한다.      


해발 143.1m, 높이 43m인 기생화산으로 분화구는 서쪽으로 벌어진 말굽형의 형태를 띠고 있다. 오름의 모양이 물건을 담는 통과 비슷하다 하여 통오름, 통악(桶岳)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동쪽 사면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체사면이 양탄자와 같은 고운 잔디가 깔려있는 듯하며 5~6개의 크고 낮은 봉우리들이 분화구를 에워싸고 있다. 분화구 안에는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고 출구는 북서쪽으로 나 있다. 분화구의 바깥 등성이는 약 1km 정도로, 이 등성이를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고운 잔디길은 찾는 이들이 많다.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원 안이 통오름-사진 : 카카오맵 / 3코스 와펜)




 이제 올레 1차를 마무리한다. 3일 일정이었고, 5개의 코스였다. 원래는 하루를 1화로, 총 3화를 예상했다. 쓰다 보니 10화가 되었다. 그만큼 할 말이 많았던 것 같다. 그 많은 말이 쓸모없는 말이 아니길 빌어본다. 날씨 이야기도 해야겠다. 흐린 첫날을 제외하고는 날이 너무 좋았다. 날이 좋았기에 생각도 여러 방향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번 올레는 날이 안 좋았으면 한다. 비가 올 듯 말 듯, 어두운 날이어도 좋다. 아니 비가 와도 좋다. 맞고 걷고 싶다. 맑은 날 걸을 때와는 다른 느낌, 감정, 생각들에 젖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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