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45분. 밤새 잠을 못 잤다. 어제 자전거 라이더가 잤던 침대에서 코 고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리고 있다. 흔한 말로 탱크가 지나가는 소리다. 도미토리에서 룸메이트는 복불복이다. 어제 새벽은 평화로웠고 오늘 새벽은 전쟁터의 혼돈이다. 지난밤 휴게실에서 게스트하우스 여주인과 대화를 나누고 방에 들어왔을 때가 11시쯤이었다. 일행인 룸메이트 2명은 벌써 들어와 자고 있었다. 문을 열 때는 조용했다. 자려고 침대에 눕는 순간부터 일행 중 한 명이 코를 골았다. 코는 정말 쉼 없이 일했다. 일하고 있음을 공표하듯 사방에 알렸다. 그러나 공표한 시간이 잘못되었다. 조용해야 할 야심한 밤이었다. 덕분에 잠은 살얼음이 되었다. 살얼음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깨진다. 코 고는 소리에 잠은 살얼음처럼 가볍게 깼다. 깨진 살얼음 밑으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 보이듯, 깬 잠은 어느 순간 명징한 의식으로 바뀌었다. 이러길 반복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았다. 몸은 무겁고 정신은 멍하다. 약을 먹고 성산일출봉에 다녀오려고 나갈 채비를 했다. 일행 중 다른 사람도 일어났다. 그도 잠을 못 잔 것 같았다. 밤새 그의 뒤척이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가자 그도 따라 나왔다. 어디를 가려는지 물었다. 성산일출봉에 가려 한다고 말했다. 거긴 무척 가파르니 힘들다고 알려준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감정이 없다. 자기 일행 때문에 그도 무척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일출 후 성산일출봉 / 멀리 우도가 보인다(우)> 일출은 놓쳤다. 오르기 전에 성산일출봉에 관한 안내문을 읽었다. 성산일출봉은 5천 년 전, 뜨거운 마그마와 차가운 바닷물이 만나 강력한 폭발을 일으켜 만들어진 수성화산으로, 처음엔 제주도와 떨어진 섬이었으나 바람과 파도에 깎여 제주도와 연결되었다고 한다. 참 신기하다. 바람과 파도만으로 거대한 토목공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무척 긴 시간이 투입되었지만 그 시간은 자연에게 무의미하다. 시간이 짧게 걸리건 오래 걸리건 자연은 상관하지 않는다. 자연은 이것을 설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계하지 않았기에 공사 기간은 염두에 없다. 자연에서 완성은 없다. 끝없이 변하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연은 바람과 파도로 성산일출봉을 미세하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그 결과 언젠가는 성산일출봉이 다시 제주도와 갈라져 섬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성산일출봉 매표소에 있는 입구는 막혔다. 그 너머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입구가 아닌 출구로 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이 시간에 오면 무료로 올라갈 수 있다는 정보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중에서 대부분은 중국인들로, 여기저기 중국어가 들린다. 성산일출봉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가파른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무릎과 컨디션이 안 좋아 천천히 올랐다. 중간중간에 수직으로 솟은 바위들이 보인다. 안내문을 읽었다. 바위들은 비의 작품이었다. 화산 폭발로 화산재가 비스듬히 쌓이고, 이 위로 비가 내려 흐르면서 아래로 침식, 즉 깎였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단단하게 굳은 곳은 침식되지 않아 수직으로 서 있는 형태가 되어, 지금 보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바위가 되었다.
드디어 성산일출봉 정상이다. 그제, 어제 걸었을 때 어디서나 보였던 성산일출봉. 너무 보아서 홀렸는지, 이곳에 오지 않으면 이번 올레는 미완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어외도 여러 언어가 들린다. 많은 관광객이 이른 시간에 이곳에 있다는 것이 놀랍다. 경험상, 여행 중에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다들 아침형 인간인가? 아니면 일출을 보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것인가? 몇몇은 지긋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일출의 아쉬움 때문일까? 해는 벌써 바다 위로 떠서 구름 속으로 숨었다. 빛은 발하여 구름의 이면을 우련하게 보여주고 있다. 분화구는 초록의 이끼로 포근히 덮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보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가시는 것이 느껴진다. 사람이 다닌 흔적은 없다. 나무로 만든 전망대에서 눈으로만 보게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분화구를 거니는 것도 즐거움일 수 있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자연의 날 것을 보는 것도 충분한 즐거움이 된다. 영화 ‘월터의 상상력은 현실이 된다’에 나오는 대사가 떠올랐다. 월터는 유명한 사진가인 숀이 눈표범을 보고도 사진을 찍지 않고 가만히 있자, “왜 안 찍냐?”라고 묻는다. 숀은 대답한다.
“가끔 안 찍을 때도 있어. 정말 멋진 순간에... 나를 위해서... 이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아. 그냥 이 순간에 머물 뿐이야.”
지금이 그 순간인가 보다. 계단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초록의 분화구와 윤슬 같은 구름의 변화를 응시했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린다. 나무가 있는 올레길이면 어디서나 듣었던 소리다. 잠 못 들어 멍한 정신을 깨끗하게 닦아 주고 있다. 내면의 고요한 성안에서 정신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을 때 누군가의 강렬한 사투리가 성문을 마구 흔들었다. 사진을 찍어 주겠다는 이의 포즈에 대한 짧은 강의였다. 돌아보지 않았다. 그냥 듣고만 있었다. 누구나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한다. 사진에 찍히는 행위는 영생불멸이라는 소망의 손쉬운 해결책일지 모른다. 사진에 포착된 순간은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라지지 않고 스마트폰의 갤러리나 PC의 사진 파일로 하드디스크에 저장되어 영생을 얻는다. 그러나 쉽게 얻어서인지 불행하게도 곧 잊힌다. 잊힌 불멸이 나을까? 기억된 필멸이 나을까? 다들 분화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나도 찍었다. 풍경만. 글에 쓰일 사진들이다. 아마 이 중에서 많은 것들은 삭제되어 영생을 얻지 못할 것이다. 다시 풍경을 본다. 그제, 어제 걸었던 곳이 모두 보였다. 21코스 지미봉, 종달바당, 1코스의 알오름과 말미오름, 종달바당에서 성산포항까지의 해안 길, 한도교, 헤일리에서 광치기 해변까지의 길, 1-1코스인 우도, 2코스 내수면, 식산봉. 그리고 오늘 오를 오름인 대수산봉도 보였다. 하나하나 복기하며 기억해 봤다. 느낌도 전해져 왔다. 감각에 새겨져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기억 또한 다른 버전의 사진이라 할 수 있을까?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게 조심조심 내려왔다. 매표소 옆, 들판에 일정한 크기의 돌들이 원형의 형태로 놓여있다. 궁금해서 가봤다. 처음에는 출입 금지 구역인가 했다. 커다란 울타리가 있고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곳곳에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곳만 진공처럼 사람이 없다. 뭔가에 이끌리듯 들어갔다. 자세히 보니 열두 개의 정육면체 돌이 원형으로 놓여있고, 일정한 간격으로 E, N, W, S가 돌에 새겨져 있다. 방위였다. 중앙에는 직사각형의 돌이 세워져 있고 위쪽 중앙엔 구멍이 뚫려있다. 직사각형 돌의 그림자는 어느 돌에 길게 늘어져 있다. 해시계였다. 시각과 방위를 나타냈다. 햇살이 직사각형의 돌머리로 떨어져 반짝이며 눈부실 때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일까? 그 순간, 성산일출봉이 성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들판은 아무도 못 들어오는 신성한 장소 같았다. 마치 삼한시대에 있었던 소도인 듯했다. 여전히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죄인이 아니니 당당히 나왔다. 옆에 있는 동암사라는 작은 절을 둘러보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다. 7시 30분쯤이었다. 룸메이트들은 토스트도 먹지 않고 떠났다. 너무 미안해서일까? 아니면 일정이 있어서 그런가?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룸메이트들은 다들 일찍 떠났다. 짧은 인사도 없이. 길 위의 인연은 존재의 부재만으로도 작별인사가 되나 보다. 코골이로 인해 밤을 새운 시간이 추억으로 담담히 남아있다. 이것이 작별인사였나 보다. 샤워를 하고 떠날 준비를 했다. 휴게실로 가서 여주인이 해준 토스트를 바다를 보며 먹었다. 유리창 위에 문구 하나가 쓰여 있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 나오는 유명한 시구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주인이 좋아하는 시인가? 토스트를 맛있게 먹고 주인의 환대를 받으며 출발했다. 대부분 재미없다는 2, 3코스로. 어떠하길래 재미가 없다는 것일까?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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