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코스(온평-표선)
짧은 ‘연듸모루숲길’을 끝으로 해안 길이 길게 이어진다. 환해장성은 온평에 이어 신산에서도 계속된다. 신산 환해장성이 끊어진 곳 근처에 바다로 난 전망대가 있다. 그곳에서 에메랄드빛 바닷물을 가두고 있는 현무암 돌들로 만들어진 두 개의 원형을 볼 수 있다. 두 원형은 서로 이웃하고 있다. 에메랄드색은 항상 눈길을 끈다. 계속 보고 있으니 뜬금없이 프랙탈이 떠올랐다. 두 원형이 프랙탈에서 유명한 원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만델브로트 집합. 프랙탈은 부분이 전체와 비슷한 기하학적 구조를 가진 형태를 말한다. 끝없는 자기 반복적 구조를 가졌다. 프랙탈 구조에 대한 연상은 브누아 만델브로트에게로 이어졌다. 그는 영국의 해안선을 조사했다. 여기서 축척 척도를 짧게 줄여가면, 해안선의 길이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길게 늘어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75년에 그는 영국의 해안선과 같은 곡선을 프랙탈로 불렀다(복잡성 과학이란 무엇인가/존 카스티/까치 참조). 이 해안선도 전체적으로 보면 프랙탈 구조일지 궁금하다.
길은 ‘신산 포구’, ‘주어동 포구’, ‘신풍 포구’,‘신풍신천바다목장’, ‘배고픈 다리’을 지나 종점인 ‘표선 해수욕장’까지 계속된다. 배의 정박 때문인지 포구는 상대적으로 내륙 안쪽으로 조금 들어갔다. 반면 포구와 포구를 잇는 길은 둥글게 바다로 향했다. 이 형상대로 길은 내륙으로 살짝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육지는 바다를 행해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거듭된 반복이 길을 예상 가능하게 했고 길은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 때문일까? 해안 길은 분명 곡선임에도 심리적으로 직선 같은 느낌을 주었다. 직선의 길은 의외성이 없고 앞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직선의 느낌은 회사 직원과 여행했던 북해도의 어느 길을 생각나게 했다. 철새들이 드나든다는 어느 시골의 호수에 가려 했다. 여러 이유로 오전에 한 대뿐인 버스를 놓쳤다. 고민 끝에 그곳까지 걸어가기로 했다(무척 잘못된 결정이었다). 길은 직선이었고 끝이 보여,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직선의 끝에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소실점이 있었다. 지도를 보고 소실점 어딘가에 그 호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 소실점을 보며 계속 걸었다. 그런데 가도 가도 소실점은 다가오지 않았다. 그대로였다. 가면 사라지고 다시 저기에 그대로 있는 사막의 신기루 같았다. 우린 거의 3시간을 걸었다. 그래도 소실점은 멀리 그대로 있었다. 그때 오스트리아 건축가 훈더트바서가 했다는 ‘직선은 죄악’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당시 나에게 직선은 '죄악'이 아니라 '악’이었고, 그 악을 뼈저리게 느꼈다. 뭔가에 홀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에 갇혀 걷고 있다는 두려운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악은 우리를 호수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게 하고 입구에서 되돌아오게 했다. 호수 입구에 도착했을 때가 12시 40분이었고, 그곳에서 오후에 한 대뿐인 1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느꼈던 직선의 몸서리침을 약하지만 여기서도 받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형태의 반복이 그 직선의 느낌을 주었다.
신산 포구를 지나면 신산리 마을 카페가 있다. 중간 스탬프를 찍는 곳이다. 찍고 계속 걸었다. 주어동 포구, 신풍 포구를 지나면 신풍신천바다목장을 만난다. 반복에서 오는 직선의 느낌에 쉼표를 찍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천천히 걸어야 한다. 아니 들어가면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다. 이곳의 풍경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몸이 그렇게 한다. 걷는 내내 풍광이 가슴속을 탁 트이게 한다. 이 시원함이 나를 기분 좋게 지워버린다. 길 위쪽으로는 초록의 목장이 거대하게 펼쳐져 있다. 바다 쪽으로 세 가지 색이 층위를 이루고 있다. 땅에는 클로버들의 초록, 바다의 짙은 파랑 그리고 하늘의 엷은 푸른색. 마크 로스코의 황금기 그림이 떠올랐다. 공간을 분할하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보는 이와 소통하려는 색 덩어리들.
그 그림을 응시한다면 마치 음악이 그런 것처럼 당신은 그 색이 될 것이고, 전적으로 그 색에 젖어들게 될 것이다. -마크 로스코-
나는 바다 가까이 걸어가 세 가지 색의 풍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바다를 응시했다. 내가 좋아하는 파랑에 젖어보고 싶었다. 언제부터 파랑을 좋아했을까?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파랑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알고 있다. 이유는 단순했다. blue에 우울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영어사전에서 그것을 발견했을 때부터 파랑에 끌렸다. 영어사전이라니, 영어를 처음으로 배운 중학교 때부터 파랑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반에서 눈에 띄지 않은 조용하고 소심한 평범한 아이였지만 우울하지는 않았다. 다만 우울이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 주로 읽고 좋아했던 작가, 헤르만 헤세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본 헤세의 청소년 시절은 우울함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좋은 작가가 된 헤세였기에 그에게 우울은 성장의 자양분이었고, 그래서 우울은 통과의례이고 멋진 훈장 같은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 엉터리 훈장에 끌려 그것이 스민 색이라는 이유만으로 파랑을 좋아하게 됐다. 그리고 이 바다에서 풋내기 시절의 치기 어린 감정에 끌린 파랑을 여전히 보고 있다. 지금은 파랑에서 우울이 증발하여 색과 색에 다가가는 끌림만 남았다. 조금 더 걸으니 초록의 끝에 두 개의 의자가 보였다. 하나는 하얀 우산을 쓰고 있다.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가족인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가 지나왔던 풍경 속으로 행복하게 들어가고 있다. 여기서 인간은 인간이 아닌 풍경, 자연이 된다. 이런 합일이 마크 로스코가 원했던 것일지 모른다.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을 그 자리에서 다 마셨다. 그러자 뭔가 생각이 났다. 와펜. 올레는 각 코스의 종점스탬프 그림을 와펜으로 제작했다. 21코스에서 시작할 때 21코스 와펜만 샀다. 나머지는 각 코스에서 사려고 했다. 그런데 와펜은 공식스토어에서만 판매하고, 공식스토어는 모든 코스에 있지 않다. 지정된 몇 곳에만 있다. 지도를 보니 살 수 있는 곳은 3코스 종점에 있었다. 문 닫는 시간은 5시. 지금은 4시 10분. 와펜을 잊고 있던 것에 대한 후회가 통증처럼 밀려왔다. 편의점을 나오자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배고픈 다리(고픈 배처럼 밑으로 쑥 꺼진 다리)'쯤부터는 뛰었다. 무릎은 걱정되지 않았다. 와펜을 구매하지 않으면 이번 올레는 미완성이라는 생각이 다급히 들었다. 멀리 해수욕장이 보였다. 표선해수욕장이었다. 내륙으로 큰 호를 그린 해수욕장 둘레를 달렸다. 해수욕장이 끝나고 시내로 들어섰는데 어디가 종점인지 알 수 없었다. 간세가 보이지 않았다. 계속 달렸다. 달리다 이상 느낌이 들었다. 시내를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간세는 시내에 있다. 카카오맵을 보니 나는 4코스에 있었다. 해비치호텔 앤 리조트였다. 지나친 것이다. 너무 조급해서 간세를 못 본 것이다. 시간은 4시 50분. 고민했다. 다시 뛸지, 아니면 포기할지. 10분 안에 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맥이 풀려 피곤이 갑자기 밀려왔다. 몸은 너무 무거웠다. 순간 망설였지만 뛰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못 살 수 있지만 그래도 뛰어보기로 했다. 카카오 맵을 보면 뛰었다. 보였다. CU 편의점 옆, 파란 컨테이너가. 정각 5시에 도착했다. 문은 반쯤 닫혀있고, 들어가니 직원은 퇴근하려고 가방을 메고 있었다. 죄송하다고, 와펜을 사려한다고 말했다. 직원은 내 몰골을 보더니 우선 물드시며 기다리라고 정수기를 가리켰다. 땀이 비 오듯 했다.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