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는 길에 본 내수면은 어제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어제는 내수면 안으로 난 길을 탐험하듯 걸었다. 내부의 길이기에 내수면을 부분 부분만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내수면 둘레를 걷고 있다. 한 걸음 물러나 관조하며 내수면 전체를 본다. 내수면은 무척 넓었다. 거대한 호수처럼 보였다. 바람 때문인지 물결이 일렁인다. 수면이 일렁이자 다가가기 힘든 쌀쌀맞은 얼굴로 변했다. 어제는 고운 햇살 아래 은은한 미소를 짓던 얼굴이었다. 날씨에 따라 사물의 얼굴은 달라졌다. 아니면 내 마음이 그렇게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렁이는 내수면> 내수면을 지나면 마을 길이다. CU가 보였다. 먹을 수 있는 물품은 텀블러에 있는 물이 전부였다. 혹시 몰라 에너지바 3개와 생수 한 병을 샀다. 이틀밖에 안 됐지만 올레길에서 얻은 경험 중 하나는 챙길 수 있을 때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코스 전체를 통틀어 물품을 보충할 곳이 편의점을 포함하여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CU에 들른 것은 잘한 일이었다. 정말 2코스 종점인 온평 포구까지 물품을 보충할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올레길에서 처음으로 아파트를 보았다. 고개를 높이 쳐들어야 볼 수 있는 높이는 아니다. 주변 주택의 높이를 고려한 것 같았다. 마을 길은 짧았지만 평온했다. 마을을 지난 길은 밭과 집 사이를, 이어서 밭들 사이를 시나브로 지나고 있다. 어느새 대수산봉 입구에 조용히 도착했다.
흐르는 물을 사이에 둔 고성리의 두 개의 오름 중 큰 오름인 ‘큰물뫼’이다. 정상에 서면 1코스 시흥부터 광치기까지 아름다운 제주 동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섭지코지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다.
라고 간세에 적혀있다. 얼마나 좋은 풍경이길래? 대수산봉을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다른 오름들은 계단처럼 어떤 형태로든 오르기 좋게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아니다. 길은 그냥 흙이 노출된 비탈길이었다. 자칫, 미끄러질 수 있다. 특히 눈이 오거나 땅이 살짝 어는 겨울에는 쉽게 미끄러져 다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상이다. 중간지점 스탬프를 찍고 전망대에 올랐다. 주위 풍광을 본다. 이곳은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이 선명하다. 어느 하나 막힘이 없다. 말 그대로 탁 트였다. 그제, 어제 그리고 오늘 새벽에 올랐던 곳도 좋은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장애물이 있어 전체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없었다. 나무나 바위가 있어 볼 수 있는 곳이 한정되었다. 다른 풍경을 보려면 이동해야 했다. 그러나 대수산봉 전망대는 아니었다. 그냥 서서 몸을 돌리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이 보인다. 카메라로 거침없는 파노라마를 찍을 수 있다. 그래서 여러 번 찍었다. 내륙 쪽을 보면 왼쪽은 초록의 호수다. 초록 물결이 잔잔히 퍼지다 희미한 한라산에 이르지 못하고 오름들에서 평온히 부딪히고 만다. 오른쪽은 이번 올레에서 걸었던 모든 곳이 보인다. 초록과 집들과 오름들 그리고 바다와 우도가 혼재해 있다. 그리고 저기에 사람들이 산다. 혼재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표상일지도 모른다. 몸을 돌려 해안 쪽으로 눈을 돌려본다. 왼쪽은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가 명확히 보인다. 바다를 차지하려는 하늘과 육지의 싸움에서 성산일출봉은 육지가 바다를 건너 하늘로 바로 돌격하기 위해 던져진 하나의 디딤돌 같다. 섭지코지는 바다로 향한 교두보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늘은 벌써 파란색으로 바다를 잠식하고 있다. 오른쪽은 하늘에 잠식당한 푸른 바다와 초록의 육지가 경계를 이루며 각자의 영역을 고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육지에는 전초병처럼 마을의 집들이 초록에 숨어 바다를 경계하고 있다. 포구인듯했고, 2, 3코스의 길은 저 전장 어딘가에서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대수산봉에서 내려가는 길 또한 올라올 때만큼 조심해야 했다. 역시 계단은 없었다. 미끄러지지 않게 가마니가 깔린 비탈길이고, 넘어지지 않게 잡을 밧줄이 놓여 있을 뿐이다. 이후부터 길은 숲과 밭 사이로 지루하게 이어졌다. 숲길이고 길은 두꺼운 적막 그 자체였다. 간혹 들리는 새소리는 적막에 작은 생채기를 낼 뿐이었다. 소리가 없으니 이상하게 예민해진다. 예민함은 살아있는 존재에게 묘한 긴장감을 준다. 그래서 사람 없는 길에서 사람을 보면 반갑기보단 작은 두려움이 먼저 엄습해 온다. 커다란 나무가 만든 그늘에서 물을 마시며 쉬고 있었다. 얼마쯤 지나자, 밭담의 모퉁이를 돌아 누군가 걸어왔다. 남녀 두 명이었다. 등산복 차림으로 봐선 올레길을 걷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쉬고 있는 나를 보자 조금 놀란 것 같았다. 잠깐 멈칫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그들이 모퉁이를 돌 때까지 그들은 나를, 나는 그들을 볼 수 없었으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들을 쳐다보지 않고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사이 나도 모르게 물을 다 마셨다. 그들이 지나고 10분 후에 나도 떠났다.
지루한 길이 이어졌다. 길의 풍경은 계속 중첩되었다. 반복된 풍경은 내 기억의 시간을 거슬러 먼지 낀 비슷한 풍경에 닿게 했다. 초등학교 때 방학이면 갔던 시골 뒷산에 있는 밭에 이르는 풍경이었다. 그러면서 시골의 전체 풍경이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가 있고, 버스 정거장이 있는 마을 어귀엔 아름드리나무와 마을 이름이 새겨진 커다란 표지석이 있었다. 마을 어귀에서 시작된 길은 마을 깊숙이 들어갈수록 좁아져, 어느새 산길로 변해 어딘가에서 사라졌다. 마을 어귀에서 마을까지 길 양옆으로 논과 밭이 있었다. 논과 밭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집들의 담이 길을 호위하고 있었다. 담 중앙에는 대문이 있어 길에서 집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길은 가지를 쳐서 샛길을 만들고, 샛길은 길에서 벗어난 집들을 이었다. 그래서 마을 어귀에서 시작된 길을 걷다 보면 마을의 모든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불현듯 올레의 의미가 떠 올랐다.
올레를 걷기로 결정했을 때 올레는 무엇이고, 길의 이름을 올레로 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올레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올레는 제주의 방언으로 마을 길에서 집까지 연결된 아주 좁은 골목과 비슷한 길이다. 구조는 마을 길(큰길) - 어귀 - 올레 - 올레목 - 마당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조금 특이했다. 육지에서는 길로 나 있는 대문을 거쳐 바로 집으로 들어가는 구조인데, 제주는 길과 집 사이에 또 다른 작은 길을 만들었다. 제주의 거친 바람으로부터 집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 작은 길이 올레다. 그러나 제주의 둘레를 도는 길을 올레로 부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 적막한 숲길에서 떠 올린 시골 풍경이 길 위에 올레를 드러내 주었다(물론 나만의 이해다. 몰이해일 수 있다). 만약 올레를 그것과 닿은 마을을 가로지르는 큰길까지 연장하면, 올레는 마을의 다양한 풍경을 보여주는 길이 된다. 내 어린 시절의 시골길처럼 말이다. 이것을 제주 전체로 확대하면 올레는 순례자가 제주의 다양한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길이 된다. 풍경 안에는 자연의 그것만 있지 않다. 문화, 역사, 지질, 풍속 등 다양한 것들이 있다. 제주의 모든 것이 올레의 풍경 속에 스며있다. 이로써 올레는 순례자가 제주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를 위해 올레는 때론 쉬운 길을 구부려 돌게 하여 다른 풍경에 다가가게 한다. 1코스 광치기 해변이 그 예다. 해변으로 계속 가면 종점 스탬프에 쉽게 도달할 수 있음에도 갑자기 도로로 빠지는 길을 일부러 만들었다. 그 길을 걸으면 성산에 있었던 비극적인 4.3 사건을 알게 된다. 이렇게 올레는 단순히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켜켜이 쌓인 다층적인 제주의 모습을 보여주는 길이 된다. 세상의 모든 길은 존재의 이유가 있다.
숲길의 끝에 혼인지가 있다. 혼인지에 있는 전통 음식점에서 시원한 감귤주스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주변을 살펴보았다. 하얀 수국이 활짝 피었다. 이곳에서 전통 혼례를 치르기 때문에 혼인지라고 했을까? 올레 리본을 따라 다시 걸었다. 작은 연못이 보였다. 나무테크의 길이 연못을 둘렀다. 커다란 비석이 연못에 우뚝 서 있다. ‘삼공주추원비’, 추원(追遠)은 ‘지나간 옛일을 생각함’이다. 세 명의 공주와 관련된 옛일을 기리는 비라는 의미인데 세 명의 공주는 누구일까? 조금 더 걸으니 ‘혼인지’라는 작은 표지석이 보였다. 이 연못이 ‘혼인지’였다. 철판으로 된 안내문은 혼인지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혼인지는 탐라국의 시조인 삼신인(고을나, 양을나, 부을나)이 지금의 성산읍 온평리 바닷가에 떠밀려온 나무상자 속에서 나온 벽랑국 세 공주를 만나 혼인한 곳으로 알려진 연못이다. 삼신인은 그 나무상자 속에서 나온 망아지, 송아지를 기르고 오곡의 씨앗을 뿌려 태평한 생활을 누렸으며, 이때부터 농경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나무상자가 발견된 해안을 ‘황루알’이라고 부르는데, 지금도 황루알에는 세 공주가 나무상자에서 나와 처음으로 발을 디딘 자국이 암반 위에 남아있다고 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곳이 지금의 제주를 있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인을 통해 후손을 잇고, 이들의 생활을 지탱해 주는 농경까지 이곳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삼공주추원비’가 이해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혼인지는 신성하고 의미 있는 곳이다. 그러나 아쉬웠다. 신성함은 퇴색되고 의미는 지워졌는지, 곳곳에 있는 혼인지를 가리키는 표지판은 관리가 안 된 것처럼 무척 낡았다.
혼인지에서 조금 걸으면 마을이 나온다. 사람들이 일하러 나가서인지 마을은 적막했다. 간혹 보이는 폐가가이 적막에 쓸쓸함을 입혔다. 마을 길의 끝에서 거대한 돌의 장막을 만났다. 비정하게 세상을 가른, 현무암으로 만든 두꺼운 장막 앞에서 갑갑함에 숨이 멎었다. 쓸쓸함은 이 장막으로 인해 바다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혀, 어쩔 수 없이 마을을 떠돌고 있는 것 같았다. 저 너머로 바다가 보일 텐데. 이 장막이 ‘온평 환해장성’이었다. 고려말에 탐라로 피신하려는 삼별초를 막기 위해, 나중에는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석성이다. 밖으로부터의 위협을 막기 위해 쌓은 것이 역으로 밖으로 나가는 것 또한 막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왼쪽으로 돌아 석성을 따라가면 온평 포구가 나온다. 공사하는 인부 몇몇을 빼면 사람이 없다. 쓸쓸하고 고요했다. 이곳에서 종점 스탬프를 찍었다. 2코스는 내수면과 대수산봉에 이르는 길을 제외하면 대부분 숲과 밭으로 된 숲길이다. 숲길이기에 2코스의 색은 초록이다. 초록은 거듭되며 두꺼워졌다. 두꺼워져 무거웠다. 무거움은 모든 것을 고정시켜 정적인 상태로 만든다. 다만, 이 길에서 사람만이 고정을 거부하고 움직이는 동적인 존재가 된다. 이 정적이 끌어당기는 중력에 반하여 앞으로 나가는 일은 힘겹다. 누구는 2코스를 지루하고 힘겨웠던 길이라고 했다.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나 또한 시각적으로 앞을 볼 수 없어 심리적으로 갑갑한 길이었다. 그러나 이런 길의 풍경도 제주의 모습이다. 길에는 항상 탁 트인 아름다운 풍경만 있진 않다. 길이 그려내는 풍경은 때론 갑갑하기도 쓸쓸하기도 우울하기도 하다. 길은 다양한 표정을 감추고 있다. 걷는 이만이 이런 표정을 볼 수 있고, 이 속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자기를 돌아보게 한다. 이것이 올레를 걷는 또 다른 이유일지도 모른다.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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