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양육자 조부모님께 잠시나마 쉼을 드리자, 다시 첫째의 곁으로 가자 !
워킹맘으로 보내는 날들이 4개월쯤 될 무렵, 우리 부부보다 두 손 두 발을 먼저 든 분들은 손녀의 주양육을 담당해주고 계신 친정 부모님이었다. 평생을 교직에 계셔왔던 두 분은 어쩌다 보니 손녀 때문에 이른 퇴직을 하셨고, 손녀만의 선생님이 되어주셨다. 육아휴직이라곤 없던 시절에 태어난 나는 엄마가 출산 후 한 달 만에 학교로 돌아가셔야 하셔서 생이별을 겪었다고 했다. 그거에 대한 미안함이 평생 남으신 까닭일까, 엄마는 내가 복직을 남겨둔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쿨하게 본인이 퇴직 후 아가를 도맡아 주시겠다고 하셨고, 덩달아 아빠까지 퇴직을 시키시겠다고(?) 하셨다. 아빠는 무슨 죄일까,,, 하하
시댁이 지방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의 육아를 도와주실 조부모님은 우리 친정부모님이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게 현실로 다가오니 마음이 무거워지는 쪽은 오히려 나였다. 두 분의 결정이 감사했지만 많이 미안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두 분에게 남은 정년퇴직 연수가 맘에 걸렸고, 심지어 아빠는 교장선생님의 자리를 내려놓고 퇴직을 하시게 되는 거였다. 이 마음의 빚, 물질의 빚은 언제쯤 어떻게 갚아나갈 수 있는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경제적인 요소만 생각한다면, 두 분이 교직에 남아계시고 내가 퇴직하는 게 지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당시의 나는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내 자리가 없어질 것에 대한 불안함이라기보다는, 그때 돌아가지 않으면 나는 영영 전업의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함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죄송한 마음을 뒤로한 채 꾸역꾸역 돌아갔고, 하루하루의 미안함이 쌓여갔다. 어떤 날은 아침 일찍 우리 출근시간에 맞춰 도착한 엄마의 피로한 표정에서, 어떤 날은 서재방에 틀어박혀 무료하게 시간을 달래고 계시는 아빠의 모습에서, 예상보다 퇴근이 늦어질 때쯤 전화를 하면 지쳐있는 두 분의 목소리에서였다. 시시때때로 그런 힘드신 모습들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 안의 죄스러움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아빠엄마에게 짧은 휴식의 시간을 드리기로 했고, 두 분은 급히 여행을 계획하셔서 발리랑 치앙마이로 열흘 남짓 떠나시게 되었다. 그 기간 동안 우리 부부는 번갈아가며 연차를 썼고, 며칠간은 함께 쉬기로 하여 아이와 함께 우리끼리 짧은 휴가를 다녀오기도 했다. 복직 후 가족이 이렇게 함께 오랫동안 있게 된 건 꼬박 4개월 만이었다. 내내 싱글싱글 웃으며 좋아하는 아이의 얼굴, 보다 안정감이 생긴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게 행복하면서도 짠했고, 통화를 할 때마다 한 톤 높아진 친정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얼마나 좋으신 걸까 싶어 뿌듯하기도 했다.
당시의 짧은 여행에서 우리 부부는 서로가 있어야 할 자리가 무엇일지, 이렇게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가에게 함께해 주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한 얘기를 끊임없이 나누었고 결국 가족계획을 다시 하기로 했다. 회사 안에서 손꼽히는 야망캐릭터였던 내가, 그 모든 것보다도 우선순위를 오로지 가족으로 놓게 되었다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도 기막힌 변화였다.
그래, 우리에게 더 이상의 피임은 없다. 또 한 번 휴직을 통해 다시 아이의 곁으로 가자, 그리고 부모님께 잠시나마 쉼을 드리자,,,! 조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만약 둘째가 생긴다면 그대로 낳는 거야,,,! 라는 무모한(!) 계획은 이때 어렴풋이 세워졌고, 우린 정말 몰랐다.
그게 1달도 채 안되어서 현실이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