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는 시민들의 3가지 습관 2부 | EP.10
봉사는 나눔이다.
하지만 그 나눔이 지속되고,
구조를 바꾸려면
그건 시민의 책임이자 선택이어야 한다.
1부. 왜 정치를 습관으로 만들어야 하는가(9회)
3부. 관심의 원을 영향력의 원으로 확장하기(8회)
서울시 마포구의 한 재개발 예정지.
도로 한쪽에는 고급 신축 아파트 단지가 서 있고,
반대편에는 아직 허물어지지 않은 낡은 주택들이
철거를 기다리며 버티고 있다.
그곳엔 아직도 몇몇 주민이 살고 있었다.
독거노인,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재개발 보상 대상에서 제외됐거나,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동네에
젊은 청년들이 들어왔다.
매주 주말, 페인트를 들고 와
벽을 칠하고,
창문을 수리하고,
고장 난 전등을 교체했다.
이들의 봉사 활동은
SNS에서 ‘따뜻한 이야기’로 회자됐고,
방송에도 소개됐다.
하지만,
한 인터뷰에서 한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친구들 덕에 따뜻하긴 한데,
나 여기 계속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는 종종 ‘봉사’를
‘좋은 마음’에서 출발하는
자발적 행위로 여긴다.
그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약자의 삶은
따뜻한 마음만으로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봉사는 나눔이다.
하지만 그 나눔이 지속되고,
구조를 바꾸려면
그건 시민의 책임이자 선택이어야 한다.
당신이 하루 2시간
밥을 나눠주는 봉사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매일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선
제도적 연대와 정책적 책임이 필요하다.
봉사자는 ‘선의’로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시민은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프랑스 파리에서 노숙인 쉼터를 운영하는 한 활동가는
이런 말을 남겼다.
“자발적인 친절은 일회성입니다.
시민이 되겠다는 책임이 구조를 바꿉니다.”
이 말은 지금
우리 사회에도 유효하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소외된 이웃이 많다.
독거노인의 50% 이상이
경제적·정서적 고립에 시달리고 있고
발달장애인 보호자의 70%는
“돌봄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청년 홈리스의 수는
지난 5년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 모든 것은
단지 ‘따뜻한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책임의식’이
아직 제도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민이란
단지 권리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책임질 줄 아는 존재다.
그리고 그 책임은
연대라는 이름으로 실천된다.
“봉사, 하고 있습니다.”
“나눔에 동참했어요.”
“좋은 일 하는 분들, 응원합니다.”
우리 사회는
이런 말을 ‘칭찬받을 미덕’으로 여긴다.
당연히 자랑해도 된다.
좋은 일이니까.
하지만 생각해보자.
그 좋은 일,
꼭 ‘좋은 사람’만 해야 하는 걸까?
우리는 종종
‘연대’나 ‘봉사’를
‘마음 따뜻한 사람들’의 몫으로 분리시킨다.
공공기관은 말한다.
“시민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언론은 말한다.
“그의 기부는 감동을 자아냈습니다.”
사회는 말한다.
“착한 사람들 덕에 세상이 돌아간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있다.
왜 이런 일이 ‘착한 사람’에게만 맡겨져야 할까?
왜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만 연대해야 하는가?
연대는 선택일까,
아니면 의무일까?
사실 우리는
이미 서로 연결되어 있다.
당신이 세금을 내는 순간부터,
누군가는 그 세금으로
급식을 먹고,
의료지원을 받고,
집세 일부를 지원받는다.
즉,
연대는 ‘특별한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시민이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할 기본의무다.
덴마크의 한 시민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낸 세금이
내 자녀에게 직접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돈이 누군가의 생존에 쓰이고 있다면,
그게 바로 우리가 함께 산다는 증거니까요.”
이 말은 단지 ‘의식 높은 시민’의 말이 아니다.
그건 그 사회가
연대를 개인의 덕목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조로 제도화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떤가?
자발성에 의존하는 복지 시스템.
공공의 책임을 시민의 선의에 떠넘기는 구조.
그리고 반복되는 복지 사각지대.
이런 구조에서는
‘착한 사람’만 지치고,
‘악한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연대는
‘하면 좋은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이다.
시민이
“선의로 도와줄게요”라고 말하는 순간,
국가는
“그럼 제도는 만들지 않아도 되겠군요.”라고 말할 수 있다.
연대는 선택이 아니다.
시민의 책임이며,
국가가 보장해야 할 의무의 일부다.
이제 우리는
‘착한 사람’이 되는 걸 넘어서
‘책임 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어느 날, 독일 베를린의 한 초등학교 교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물었다.
“우리는 왜 세금을 내야 할까요?”
아이 하나가 손을 들고 대답했다.
“누군가 병원에 가야 할 때,
돈이 없더라도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다른 아이도 말했다.
“엄마 아빠가 일 못 해도
우리 친구는 계속 학교에 나올 수 있어야 하니까요.”
놀랍지 않은가.
이들은 단지 ‘공부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시민의 책임’을 이해하고 있는 시민이다.
이런 생각은
학교에서만 가르쳐진 게 아니다.
사회 전체가
‘연대는 모두의 몫’이라고 말해주는 환경이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 스웨덴, 독일 등은
복지와 연대를 공공 시스템 속에 녹여냈다.
기초생활비 지급은 시민권으로 보장되고,
장애인 이동권은 법으로 보호되며,
교육과 의료는 연대 기금에서 모두 나눠 낸다.
거기엔 “기부 감사합니다” 같은 말이 없다.
대신 “이건 당연한 일”이라는 문화가 있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여전히 ‘쌀 기부’, ‘연탄 나눔’, ‘사랑의 손길’ 같은
개인 중심의 따뜻한 이야기만 부각된다.
시스템은 약하고,
사각지대는 많고,
시민은 지쳐간다.
이 차이는
‘사회의 메시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은 말한다.
“좋은 시민은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유럽은 말한다.
“좋은 시민은 구조를 함께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스웨덴은 초등학교에서
매주 ‘공동체 회의’를 연다.
학생들은 학교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표결을 통해 결정을 내린다.
프랑스는 중학교 시절부터
‘시민윤리 수업’을 통해
세금, 복지, 공동체 연대의 개념을 가르친다.
이런 교육을 받은 시민은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함께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
다행히 한국도 변하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청소년의회를 운영하고,
공공기관의 시민참여 예산제가 정착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연대’는 일부 시민의 따뜻한 선택으로만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제
다른 시민 문화를 꿈꿔야 한다.
연대가 선의가 아닌
‘시민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사회.
그 시작은
작은 제도 하나,
짧은 교육 하나,
시민의 한 마디 행동 하나에서부터 만들어진다.
연대는 마음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제도라는 토대 위에서 자라야
지속 가능해진다.
서울시 성동구에는
‘무장애 마을 만들기 조례’가 있다.
이 조례가 통과되자,
휠체어 접근이 어려웠던 보도블록이 정비되고
공공시설 안내문에 점자와 음성 안내가 추가되었다.
이 변화는
누군가의 선의가 아니라,
시민의 요구로 만들어진 제도에서 시작됐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거다.
시민이 요구하지 않으면,
국가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렇다.
우리는 선의로 움직이는 개인이 아니라
‘제도에 참여하고 영향을 미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시민이 시정 질의에 의견을 내고
지역 정책 예산에 참여하며
공공기관을 감시하는 ‘주체’가 될 때
그 연대는 단단한 구조가 된다.
민원을 넣는다
청원을 올린다
의회 방청을 신청한다
공청회에 참석한다
정책 공모에 제안을 낸다
시민단체의 일원이 된다
SNS로 제도를 감시한다
이 모든 것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 ‘시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정책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건
그 정책을 감시하고 실현하는 시민이 누구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시민은 투표로 대표를 뽑고,
민원과 감시로 제도를 관리하며,
참여와 행동으로 구조를 바꾼다.
‘시민성’이란
마음을 쓰는 것을 넘어
제도에 참여하고 책임을 나누는 태도다.
그럴 때,
연대는 일회적 따뜻함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책임의 문화로 자리 잡는다.
당신은 혼자라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연대는
한 사람의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시민으로서의 연대는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아파트 엘리베이터 장애인을 위한 거울이 없다면,
→ 시청에 민원을 넣어본다.
자치단체의 예산 편성 계획을 보면,
→ 어떤 분야에 가장 많은 예산이 배정되는지 들여다본다.
동네에 경사로가 부족하다면,
→ 장애인 접근성 관련 제안서를 주민센터에 제출해본다.
지역구 의원의 SNS를 팔로우하고
→ 장애인, 노인, 소외계층 관련 입법이력을 살펴본다.
지역 언론 기사를 읽고
→ 댓글로 내 의견을 남긴다.
국회나 시의회 청원 플랫폼에 들어가
→ 연대 가능한 사안에 동의표를 누른다.
동네 엄마들과
→ 학습권 사각지대 아동 지원 논의를 시작한다.
직장 동료들과
→ 한 달에 5천 원씩 모아 지역아동센터 후원을 시작한다.
대학 동아리나 동문회에서
→ ‘사회적 의제’에 대한 월간 토론을 진행해본다.
뉴스에서 소외계층 사연을 접했을 때
→ ‘마음 아프다’에서 그치지 않고, 구조를 검색해본다.
특정 시기에만 집중되는 기부(연말연시 등)에
→ 정기적 관심과 연결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감동을 주는 사람’의 이야기를 볼 때
→ 그 사람이 해결하려는 구조적 문제에도 관심을 가진다.
연대는 거창하지 않다.
연대는 거창해서는 안 된다.
연대는 익숙하고, 일상적이며, 반복 가능해야 한다.
시민의 연대란,
내가 손을 내밀지 않아도 되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이고,
그 손을 매일 내밀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실천이다.
� “나는 내 권리만큼,
타인의 권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당신은 세금도 내고, 투표도 하고,
나름대로 착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가 가진 것’을
누구와 나누고 있는가를
늘 점검해야 합니다.
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누군가의 권리를 위해
나의 시간을, 시선을, 책임을 사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
당신이 사용하는 시간 10분이
어떤 연대를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보세요.
1) “세금, 누구에게 걷어서 어떻게 쓸 것인가” –인권으로 읽는 세상, 2024.08.09.
2) "서울시 성동구 무장애 도시 조례 시행 사례"– 서울시의회, 2022.09.14.
3) "프랑스 ‘학교 민주시민교육’에서 배울 점"– 한겨레온, 2024.01.07.
4) "'장애인 이동권 20년 시위' 왜, 어떻게 진행됐나" - NEWSTOP. 2022.04.07
5) "당신은 착한 시민입니까? 좋은 시민입니까?" - 에이블뉴스. 2019.03.19
『성공하는 시민들의 3가지 습관』
� 21화: 시민의 윤리를 습관으로 만들기
에서는 선택의 기준, 행동의 원칙, 공동체의 책임감을
어떻게 시민적 윤리로 내면화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합니다.
봉사나 연대, 참여가 일시적인 활동이 아닌
삶의 일상적 습관이 될 때,
우리는 더 강하고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음 회차에서는 시민의 실천이 윤리로 정착되는 과정을 살펴봅니다.